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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잰 May 11. 2023

[루잰 수필] 둘째 23살에 도시락 싸기

도시락 '싸 본' 엄마

나는 딸 셋 엄마다. ! 


갑자기 웬 정체성 주장인가 싶지만 사실 자기 반성에 가까운 마음으로 속으로 해 보는 말이다. 


주변인들은 '딸이 셋이니 얼마나 예쁘게 키웠을까?'라고 말하곤 하지만 막상 딸 셋 엄마(일명 '삼정이 엄마')인 나는 주변인들의 생각과는 많이 달랐다. 공부보다는 인성이 먼저라는 교육 가치관으로 엄격하고 약속과 규칙을 만들어 함께 지켜 나가며 아이들을 키워 왔었다.  


그리고 NPO 대표로서, 태권도장 경영자로서 늘 바쁘게 살다 보니 삼시 세 끼 식사도 세심하게 케어하기 보다는 전투적으로 먹거나 외식도 자주 했다. 정말 시간이 없을 때는 삼정이들이 준비했던 적도 많이 있었다. 

(첫째,둘째,셋째가 고맙게도 함께 만들어 준 달걀찜과 달걀말이는 정말 많이 먹었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날 문득 '나는 어릴 때 엄마가 해주셨던 집밥이 생각나곤 하는데... 우리 삼정이들은 집밥에 대한 추억이 없겠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밥에 대한 추억이 없다는 건 소울푸드가 없다는 것과도 똑같지 않을까? 이건 너무나 비극적이고 슬픈 일이 아닌가!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예전보다 시간적 여유도 생겼으니 조금씩이라도 내가 만든 음식을 아이들에게(이젠 다 컸지만) 먹여 주려고 도토리묵, 올갱이묵, 복숭아병조림, 김장 외 다양한 저장 음식 등 여러 가지 슬로우 푸드를 만들기 시작했던 것이 말이다.  


그런데 올초! 기회는 갑자기 찾아 왔다. 


둘째가 대학교 4학년 방학을 맞아 매일 출근하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2주 정도를 남겨 두고 "엄마, 내일 도시락 싸주실 수 있어요?" 하는 것이 아닌가. 체중 조절이 필요해서 밖의 음식보다는 간단히 도시락을 싸 가고 싶다는 것이다. 


나는 "당연하지. 싸줄께"라고 화끈하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2주일만인데도 굳이 새로운 도시락 용기와 맞춤틀(하트, 꽃무늬 등을 찍어 내는)을 구입했다. 아이는 하루만 싸 달라는 말이었지만 나는 내친 김에 2주일을 싸 주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던 것이다. 


그리고선 정말 재밌게 열심히 2주간의 도시락 싸주기를 수행했다. "가만 있자. 5대 영양소가 뭐뭐였더라? 무슨 반찬을 싸 줄까? 어떻게 데코레이션 하면 더 예쁠까? " 즐거운 고민들이 이어졌고 또 그 도시락은 사진으로 남겨 서로의 기록으로 아이와 공유했다. 아이는 아이대로 "맛있었어요. 그리고 메뉴 걱정 안 해도 되고 요즘 점심값도 비싼데 아주 좋아요." 라며 도시락을 다 비워 왔는데 다 비운 도시락과 아이 얼굴을 보는 것이 참 좋았다. 

서투르지만 정성 들인 도시락

둘째가 올해 23살이다. 23년만에 둘째의 도시락을 이렇게 정성 들여 싸 보게 되다니 그 2주간은 매일 매일이 즐거운 날이었다. SNS를 보면 정말 예쁘게 도시락 싸시는 분들이 많다. 그런 분들에 비하면 나는 조족지혈 수준이지만 2주간이라도 매일 하니 데코레이션 스킬도 조금씩 늘어 나서 사진 찍을 체면도 섰던 것 같다. 


또 언제 이런 기회가 올지 모르겠지만 그 때에도 열심히 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제라도 집밥으로 체면치레를 해야겠다. !! 


** 인생은 총량의 법칙이라는 말이 있다. 

    거기에는 하지 않았던 일들은 죽기 전 언젠가는 꼭 해보게 된다는 의미도 있는데 

    이런 기회라면 땡큐!  아이들이 이렇게 커서도 '도시락'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함께 나눌 수 있는 일들이 

    작게라도 생긴 다는 것이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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