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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잰 Sep 13. 2023

[길:제주 올레 올래?] 코스 01 (2)

- 종달리 ~ 한치로드 ~ 광치기해변 -

  점심을 참 맛나게 먹었다. 종달리의 심야식당 분위기를 물씬 풍겼던 식당  '괜찮은 술책'.

  술과 관련한 무슨 비책이 있나 했더니 그건 아니고 술과 책이 있는 공간이라는 뜻이라는 것 같다. 암튼 좋은 식당을 하나 알게 된 것 같아서 즐거운 식사시간이었다. (다음에도 종달리를 오게 되면 밤에 한번 더 와보고 싶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현지에서 맛집을 섭외하는 소소한 즐거움이 있는 것도 잘 설계된 정제된 일탈 중 하나였다. ^^ (협찬 뭐 이런 거 전혀 아님^^ )


  식사를 마치고 종달리 마을로 본격적으로 걸어간다. 종달리 초등학교옆에 게시되어 있는 종달리의 유래도 한번 읽어 본다. 종달리를 자주 지나쳤음에도 종달리의 지명과 유래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 본적은 처음이다. '제주도의 동쪽 끝 마을'. 이름이 좀 낭만적이다. 어드벤처에 자주 등장하는 지명 느낌.


  종달초등학교를 오른편에 두고 왼쪽 골목으로 나아간다. 담벼락에는 화려하지 않고 소박하게 칠들이 되어 있어 알록달록하고 작은 책/약/방도 있다. 골목을 탐험하는 느낌이 아주 잠깐 지속된다.

  책/약/방 골목을 지나오면 제주 최초의 염전을 일구었던 '종달염전'의 가마터?가 나온다. 세상에나...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존재는 비단 전깃줄을 타고 올라가는 식물뿐만이 아니었다. 모래에서 소금을 만들어낸 제주도민, 제주여성의 생명력과 생존력 그리고 부지런함은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특히 이 종달리 소금의 품질이 아주 뛰어나서 임금님께도 진상했다고 한다. 종달염전 이후 하도와 시흥리 등에도 염전이 생겨났단다.

종달염전 !

  이렇게 두 발로 조용히 길을 걸으면 오름, 바다, 그냥 길도 있지만 마을의 유래나 역사들을 읽어보고 갈 수 있어서 참 좋다. 차로 다니거나 예전에 자전거로 제주도 일주할 때는 못 보고 그냥 지나쳤던 것들.. 좀 더 깊이 제주도와 종달리를 알게 되어 참 좋다...


  이제 해안가로 진입한다. 일명 '한치로드'라고 내가 명명한, 한치가 널려 있고 또 매우 중요한 중간 스탬프가 위치한 그곳으로 걸어간다. 이렇게 성산을 바라보며 해변길로 들어서는데 여기서부터 바다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파래 냄새인가 했는데 아무래도 냄새가 매생이인 것 같다. 매생이들이 해변에 엄청나다.

종달리 해변으로 들어선다.  

  드디어 '한치로드' 진입.

해풍에 잘 마르고 있는 한치가 아주 먹음직스럽다. 생각같아선 한치 좀 씹으면서 시원한 맥주 한잔..갈길이 멀어 마음으로만 맛을 보았다.

  그리고 중간 스탬프가 있는 올레쉼터에 도착했다. 어서 도장 찍고 인증샷도 찍고 또 부지런히 출발한다.

  이제는 계속 걷는다. 슬슬 발바닥이 아파오고 너무나 뜨거운 태양에 조금씩 지쳐간다. 그래서 속도를 조금씩 늦추어 본다. 욕심대로 빠르게 걸을 일이 없겠다 싶어서 마음을 내려놓고 지금부터는 힘들면 조금씩 앉아서 쉬기도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걷는다.

얼굴과 온 전신이 땀이다. 그래도 성산까지 들어왔다. 성산일출봉의 동굴진지를 옆에서 보면서 역사의 현장을 지나간다.

  이제 성산갑문, 성산포항을 지나 일출봉입구까지 들어왔다. 피로와 지침에 사진이 점점 없어진다. ㅠㅠ 그래도 힘내어 광치기 해변까지 가는데 이 경로에서는 제주역사의 큰 아픔인 일제 동굴진지와 43 유적지를 지나가게 된다.


  패망 직전 일본은 제주도에 무려 448개의 동굴 진지를 팠다고 한다. 일본 본토 수호를 위해 제주도 전역을 요새화하고 해안에 동굴거점을 만들었다. 규모는 소형 함정과 어뢰들을 숨길 수 있는 규모...https://www.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332416 성산일출봉도 유사시에 폭파를 위해 진지를 만들어 놓고 거점화되었던 곳이다. 성산은 이렇게 인간들에 의한 아픔을 감내하면서 묵묵히 아름다운 일출을 선사해주고 있다. 4.3은 우리나라 근대사의 큰 비극이고 아픔이다.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51439  https://jeju43peace.or.kr/ 조용히 묵념하고 마음속으로 기도를 올리며 지나간다. 말로는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감정들. 부디 후대에는 이런 아픔과 비극이 절대 없기를... 특히 우리 민족 간에는 더더욱...


  4.3 유적지에서 왼쪽으로 걸어 들어가면 광치기 해변이 펼쳐진다. 끝까지 걸어가면...

    제주 올레 1코스 종점이다.

제주 올레 1코스 종료. 종점 스탬프 찍고 시간 인증. 밥도 먹고 쉬엄 쉬엄 잘 걸어 왔다.

  하나도 비장하지 않은데 비장하게 연출.

  광치기 해변에서 발 담그며 잠시 맨발로 힐링..넘 시원해.♡

 

  기분 좋다.

  혼자 걸으며 자연을 보고 듣고 느꼈다.

  또 마음껏 힐링하고 오라는 지인들의 마음을 받았다.

  조심해서 잘 다녀오라는 가족들의 격려를 받았다.

  행복하고 자유롭다.


   잠시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1코스의 여운을 느껴 본다. 그렇게 머무르다가 이젠 숙소 체크인해야지 싶어 다시 성산일출봉 주차장 쪽으로 되돌아 가는데 시장기도 돌고 발바닥이... (도톰한 양말을 신고 올걸 후회막급) 성산일출봉 입구로 들어가서 역시 어디가 맛있는 집일까 딱 기운을 살피다가 '선미식당'이라는 곳이 눈에 띄어 들어갔다. 사실 오분자기 뚝배기 러버라서 그 메뉴를 보고 들어 갔는데 처음 가는 집이라 보수적으로 전복뚝배기로 주문했다.  벽을 둘러보니 역시나 유명인들이 사인이 붙어 있는데 그래도 맛을 봐야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법.


  밑반찬이 7종 그리고 전복뚝배기. 오~ 국물이.. 정말 얼큰하고 시원하다. 여기도 괜찮은 집을 나름 고른 것 같아 기분 좋게 저녁식사 했다. 이슬 한 병 마시려다가 그동안 금주했던 날들이 아까워 어렵사리 패스하고 국물로 대신 입맛을 다셨다. 밑반찬들도 맛이 깔끔해서 나름 괜찮았던 식당이라고 생각된다.  


  이제 진짜 숙소로 들어가야지..

  당초 계획은 체크인하고 나와서 성산일출봉에 일몰을 보려 올라가려고 했으나... 계획은 계획일 뿐.. 들어가서 쉬는 것이 상책이라 편의점에서 캔맥주 하나(이것은 음료이지 술이 아니므로.. 딱 하나만...)와 커피, 약간의 과일을 사서 드디어 숙소 체크인했다.

 

  디럭스 원베드룸으로 예약했는데 뷰가 좋다. 통창은 아니지만 성산이 한눈에 들어오는 성산뷰~ 객실과 침구도 깔끔하고 가성비가 좋아서 만족스러웠다. 개운하게 샤워하고 TV 틀어 보니 벌거벗은 세계사 프로그램이 나온다. 즐겨보는 프로그램이라 채널 고정하고 침대에 앉아 오늘 하루를 되새겨 본다.

격자창문형^^ 성산뷰
수고한 두 발 . Thank you^^ 그리고 코스 01 스탬프 인증!


  휴식이다.

  뜨거운 날 무거운 배낭과 함께 열심히 걸어 준 두 발이 고맙고 이런 나만의 힐링타임을 갖게 해 준 가족에게 고맙고 괜스레 모두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은 시간...


  맥주 한잔 마시고 TV 보면서 그냥 잠들어야지...


(부록 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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