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소확행

by 루카

커피 한 잔을 마신다. 어제는 흐리더니 오늘은 날이 개었다. 다행인가.


누군가에게는 흐리고 비 오는 날이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비 오는 걸 미워하며 추욱 쳐져 있던 게 조금은 미안해진다. 그렇다고 맑은 날이 반갑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아침부터 병원에 다녀왔다. 오늘은 정신과가 아니고 내과이다. 이렇게 말하면 어디 성한 곳이 없어 보이기는 하지만 나는 빈혈에 고지혈증이 있다. 오늘 들은 바로는 A형 간염 주사도 맞아야 된다는데. 병원에 가면 뭐 이렇게 할 일이 많은가 싶다. 이제 그만큼 나이를 먹었다는 말일까.


내 몸 하나 관리를 못해서 병원에 의지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이럴 때 조심해야 한다. 자칫하면 자기 비하로 낙하하기 때문이다.


뭐, 아플 수도 있지.


그래, 몸이 약하고 아플 수 있지 그것이 내 탓은 아니다. 오히려 모르고 지낼 수 있는 병을 미리 알게 되어서 다행이라 여겨야지. 그게 마음이 편하다. 아무것도 모르고 대처하지 못하다 죽는 것보다는 병원에서 약을 받으며 조금이라도 사는 것이 낫다.


근데 정말 나은가? 내 삶이 이렇게 연명할 만큼의 가치가 있던가?


이런 상념들이 나를 사로잡으려고 한다. 결코 좋은 생각은 아니다. 나를 자꾸만 끌어내리는 생각들이 요즘 들어 나를 자꾸 지배하려 든다. 거기에 지면 안된다. 나의 가치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요즘 읽고 있는 책이 있다.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이다. 아직 앞부분 밖에 보지 못했지만 요약하자면 기분은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병들을 겪으면서 나는 왜 이렇게 아프기만 한가 생각하는 것도 내 선택이고, 미리 알아서 다행이다 고쳐나가면 되는 거지 생각하는 것도 내 선택이라는 것이 요지이다.


몰라서 못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다시 한번 나의 기분이 나의 선택에 따라 나뉜다는 것을 상기해본다. 물이 반이나 남은 것과 반 밖에 남지 않은 것에 대해 떠올리며 말이다. 애써 아직은 그래도 살만하구나, 건강하구나 생각해보려 한다. 우울증의 증세가 있는 중에 쉽지 않은 생각의 흐름이지만 억지로라도 생각을 돌린다.


하지만 억지 생각은 결국 나를 비웃게 된다. 그렇게 생각해서 병이 나아지나? 하지만 부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병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결국 그냥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심각할 필요도 긍정적일 필요도 없는 일이다.


사는 일은 이렇게 복잡 다단하다.


그저 오늘 하루 커피를 마시며 피를 무사히 뽑고 왔고, 날씨가 맑다는 것에 내 즐거움을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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