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공모전이 때때로 열린다. 주로 엽서시문학공모전이라는 사이트에 들어가서 공모전을 확인한다. 그중에서 마음에 드는 공모전이 있으면 캡처를 해둔다. 그런데 문제는 낼 소설이 아직 써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글을 쓰는 작업은 쉬우면서도 꽤 어려운 일이다. 그냥 쓰는 거라고 말하는 유명 작가들이 얄미워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나는 그냥 쓰면 진짜 그냥 쓴 글이 나오는데 말이다. 특히 첫 문장을 쓰고 다음 문장을 쓰고 이것을 반복한다던 일본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말을 보면 좀 재수 없다. 물론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은 한다. 일 년에도 몇 편의 장편 소설을 뚝딱 지어내니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재능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뚝딱 같은 일은 하지 못한다.
한 자 한 자 적어가는 것도 때로는 버거울 때가 있는데 그냥 적으면 된다니. 부럽다. 그래, 솔직히 너무 부럽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차고 넘치는데 그중에 나는 없다. 그 사실이 얼마나 샘이 나던지.
그렇다고 글을 포기하는 건 아니다. 그것과 관계없이 나는 또 내 글을 열심히 써 나갈 거니까. 그리고 언젠가는 내 글도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오늘도 그런 생각으로 글을 적는다.
어제는 무기력이 나를 괴롭혔다. 그럼에도 우울하다고 노트북 앞에 앉은 나는 칭찬할만하다. 매일 무언가 적는다는 일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아픈 와중에도 그 일을 해냈다. 나를 칭찬하자.
사실 무기력한 나를 칭찬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씻는 것조차 겨우 해내면서 씻어서 잘했다고 칭찬할 때의 그 괴리. 실은 씻었다고 그렇게 자랑스럽지 않다. 칭찬받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게 우울증에 걸린 남의 이야기였으면 공감하고 정말 힘들었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어쩌면 나는 나를 특별히 여기는 모양이다. 남들 하는 만큼 하는 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는데 지금은 남들 하는 만큼도 못하고 있으니 괴로울 뿐.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나를 칭찬해야 된다는 걸, 이론으로는 알고 있다. 그래서 이론서를 따라 나를 칭찬해본다. 씻느라 고생했다. 잘했다. 힘든데도 글을 썼구나. 대단하다. 이런 속이 텅 빈 칭찬이라도 해보는 중이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 진심이 되고 그 진심이 나의 자존감을 높여주어서 이 병의 치료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
그 희망이 사람을 움직인다.
오늘도 아직 낫지 않은 손목의 상처가 키보드에 쓸려서 더 아플까 걱정을 하며 글을 쓴다. 사람은 참 모순적이다. 그 당시에 내가 왜 그랬는지도 모르겠지만 자해를 하고도 후에 상처에 아파하며 덧날까 걱정하다니.
그래도 상처를 보면서 '다음에는 안 그래야지. 그러기 전에 약부터 먹어야지' 하고 생각한다. 그래, 나아지면 다행인 것이다. 그것을 인지하고 행동까지 옮기면 더 나아진 것이고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는 생이 온다면 치료가 완료된 것이겠지.
어쨌든 오늘도 나는 이래저래 글을 쓴다. 그것이 수필이든 소설이든 적어내고 있다. 이 적어내는 행위가 나에게는 위로이자 희망이다. 그거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