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기차는 천안에서 목포까지 총 두 시간을 달리게 되어 있었다. 같이 가기로 한 언니가 워낙 준비가 철저해서 기차에서 점심으로 먹을 빵까지 사 온다는 말에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이모는 언제 와?”
준비를 안 하는 만큼 적당히 일찍 도착할 수 있었던 나와 딸은 언니네 식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언니는 아이가 둘이니 당연히 훨씬 힘들 것을 예상할 수 있었기에 도와주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어디부터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고 언니가 이러면 불편할지 편할지, 원하는지 아닌지도 판단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은 오히려 아무런 행동도 못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눈치를 보며 양립하는 생각들 사이를 헤매다 보면 일이 정리되기 때문이다. 그런 경험이 다수인 나는 이번에도 눈치만 보며 언니를 천안아산역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언니는 유모차를 끌고 아이 둘을 데리고 나타났다. 그런 언니에게 점심까지 사 오게 한 것이 잘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도 그제야 들었다.
“왔어요?”
우리는 얼마 남지 않은 기차 시간에 쫓겨 얼른 승강장으로 올라갔다.
좌석은 앞뒤로 나누어 앉았는데 올 때는 마주 앉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나누었다. 하지만 나는 사실, 앞 뒷자리도 편했다. 여행을 같이 하는 것은 처음이라서 약간의 눈치가 보이기도 했고 딸아이와 둘이 나란히 앉아... 별 걸 하지는 않았지만 그냥 그 자체로 좋았으니까.
아이에게는 스마트폰을 쥐어주며,
“조용히 해야 돼.”
라고 공공예절을 가르쳤지만 아이는 스마트폰 때문에 조용했지 절대 예절을 배운 것 같지는 않았다. 어쨌든, 조용했으니까 엄마는 만족한다.
언니가 사 온 맛있는 샌드위치를 우적 거리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우와...”
어쩐지 날이 맑고 하늘이 예뻤다. 감탄사가 나오는 하늘이었다.
나는 맑고 뭉게구름이 있는 하늘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그런 하늘을 보면 가만히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데 거기에 여행을 가는 중이라니. 이 상황이 나쁠 리 없다.
“너무 예쁘다.”
사진을 찍어서 남기고는 거기에 기분이 좋아진 덕으로 딸과 기차 안 사진을 찍었다. 언제나 당연하게 어른인 내 얼굴이 크게 나오는 것이 조금 불만이었다. 한 편으로는 그런 미의 기준을 가진 나에게 불만이었고 이 나라의 외모지상주의 비판까지 가려다가 옆에 앉은 한 분이 딸에게 말을 거는 바람에 나는 어색한 목례를 하며 그 생각을 지웠다.
“어디 가?”
“엄마랑 목포 가요.”
그렇게 큰 소리로 행선지를 말할 필요는 없는데. 괜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나는 개인정보에 민감한 사람이라서인지 누가 듣고 우리를 따라올 것 같은 불안에 잠시 시달렸다. 그리고 그분에게는 죄송하게도 나는 낯선 이를 경계해야 한다는 기초에 충실하며 핸드폰을 보는 척 아이와의 대화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물론 내 아이가 무례할까 봐 걱정도 포함된 행동이었다.
평소에는 내가 다 들어주는 식의 교육을 하다 보니 아이가 과연 타인과의 관계를 어떻게 이끌어갈지에 대해서는 미지수였다. 불안했다.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싫어하는 성품이 아이에게도 당연하게 요구되었다. 아이가 잘못하면 내 잘못 같아서 아이를 다그치기도 했다. 그러니 이번에도 비슷한 맥락으로 아이의 행동을 열린 귀와 힐끗거리는 눈으로 관찰했다.
“아빠는?”
“아빠는 회사 갔어요.”
역시. 뭔가 식상하면서도 당연한 관례였다. 엄마가 아이만 데리고 다니는 여행이 이상하게 보이지는 않을 텐데 우리는 왜 가족의 안부를 묻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느끼는 걸까. 세포 어딘가에 한 민족의 오지랖 정서가 새겨져 있는 것은 아닌가 고민했다. 물론 그분이 잘못했다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물어봐서 기분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왜 통상적으로 가족의 안부를 묻는 것인지가 궁금했다. 그리고 애초에 가족의 구성이 어떨지도 모르는,... 까지 생각했을 때,
“동생은 없어?”
하고 호구조사가 시작되었다. 도대체 이 나라는...
“네. 동생은 없어요.”
“동생 있으면 같이 놀고 안 심심할 텐데.”
이건 정말 나 들으라고 하는 얘기였다. 동생 하나 더 낳으라는 말을 왜 낯선 사람한테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우리 집 가족계획을 생판 모르는 사람이 해주다니. 나는 예서 하나만 기를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런 질문을 들을 때마다 그냥, ‘역시나’ 싶다.
“그러게요.”
와중에 그렇게 가식적인 대답을 하며 웃고 있는 나도 싫다. 그리고 그런 것에 에너지를 쏟는 것이 무척이나 귀찮았지만, 가는 내내 불편한 것보다는 이렇게 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갑자기 그분은 나라와 이 민족에 대한 걱정을 시작하셨고 나는 적당히 웃었다.
“요새는 다들 애를 안 낳아서..”
그렇게 시작하는 말을 적당히 끊으며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는 것으로 차단했다. 그냥 의미 없는 대화에 에너지 쏟는 것이 귀찮은 것이지 그 어르신이 싫은 건 아니었다. 그리고 나도 이 나라의 미래를 걱정은 하지만, 내가 애를 낳는다고 나라의 미래까지 나아지는 것은 아니니까.
그렇게 기차는 두 시간을 달렸고, 아이와 나는 내내 핸드폰을 봤다. 생각보다 짧아서 놀란 기찻길. 서울에 가는 시간 정도를 할애해서 우리는 목포역에 도착했다.
햇살이 무척이나 강하게 내 눈에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