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섬 외달도

4.

by 루카

우리는 분주히 움직이지 않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므로 여유롭게 아침을 맞이하고 아이들이 뛰는 것을 보고는 조식을 먹으러 올라갔다가 섬으로 들어가는 배의 시간에 맞춰 숙소에서 택시를 타고 여객선장으로 나왔다.

우리가 타야 하는 배는 ‘사랑호’ 이름도 예쁘게 사랑호였다. 배에는 차도 실렸다. 그것도 신기했다. 나는 바닷가에 사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배를 이동수단으로 이용하는 광경이 신기했다. 마을 사람들이 실제로 오가는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신기해서 잠시 바라보았다. 사람들은 이 배를 타고 목포로 왔다가 섬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이다. 이건 정말 답도 없는 수단이었다. 시간은 칼같이 맞을지 모르지만 놓치면 걸어서 나올 수도 없는 구조니 말이다. 이래서 섬에서 배가 끊기는 설정이 드라마에 많이 나오는구나, 싶었다.

외달도는 섬을 두 개를 거쳐서 가는 마지막 종착지였다. 마음은 섬마다 내려서 구경하고 싶었지만 아이들을 데리고는 무리라고 판단해서 우리는 외달도만 가기로 했다. 이름은 외달도여서 어감이 되게 외로운 섬처럼 느껴졌는데 그렇지 않았다. 사랑의 섬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 의외였는데 아마도 나의 느낌은 ‘외’ 자에 가 있었나 보다. 외로움의 ‘외’. 어쨌든 왜 사랑의 섬인데 이름을 외로운 어감으로 붙였을지 한참을 생각하면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바다를 바다 사이의 섬을.

‘사람은 홀로 섬..’

내가 좋아하는 노래 가사에 나오는 말이다. 니체의 말에도 나온다. 사람은 섬이라는 말. 비유도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다들 같은 섬처럼 보이지만 겉의 외형도든 가지고 있는 자원이든 모두 다른, 그런 섬들. 그 섬을 연결하는 바다. 그리고 바다를 이동하는 배. 연결된 듯 아니고 아는 듯 모르는 서로라는 사람들. 나는 과연 어떤 섬일까를 멍하니 생각하면서 섬 두 개를 거쳤다.

도착한 외달도는 지나친 두 섬에 비해 굉장히 작았다. 한 시간이면 섬의 끝에서 끝을 돌고도 남는 곳이어서 신기하면서도 약간은 구경거리가 적다는 생각에 실망도 했다. 그래도 바다는 참 예뻤다. 그리고 섬들이 많이 보이는 점이 참 신기했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많은 섬이 있었구나, 를 지리책이 아니라 눈으로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엄마 물에 들어가도 돼요?”

역시 아이들은 물을 좋아한다. 나는 바다에 절대 들어가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 중에 하나이다. 바다 안에 뭐가 있을지 몰라서 무섭다. 하지만 아이들의 호기심과 즐거움에는 미지의 바다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눈앞에 보이는 것에 충실하는 면이 크다. 그러니 겁도 없이 성큼성큼 들어간다고 하는 것이겠지. 어쩌면 어릴 때 물에 빠졌던 경험 때문에 더 무서워하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딸까지 그렇게 키우고 싶지는 않아서 준비도 하나도 안 해왔으면서 물에 들어가는 걸 허락했다. 발목까지만. 물론, 돌발 상황이 생길 것은, 염두 해 두고서 말이다.

“엄마!”

라고 생각하자마자 아이가 철퍼덕 물에 엉덩이까지 젖었다. 옷이며 속옷이며 하나도 없는데. 순간 짜증이 났지만 이미 벌어진 일을 어쩌랴.

“그래, 놀아.”

아이는 자신이 젖어서 엄마가 화낼 것을 미안해하는 것이지 자기가 빠졌다고 나를 부른 것은 절대 아니었다. 알기 때문에 젖은 김에 더 신나게 놀라고 내버려 뒀다. 아이들은 조개껍질을 모으는데 열중했다. 아마 딸도 조개껍질을 따라 움직이다가 젖은 모양이다. 생각해보면 조개껍질이 뭐라고 저렇게 집중을 하는지. 우리가 말하는 몰입이란 아이들 식으로 말하면 이런 것이 아닐까? 조개껍질 줍느라 발이 미끄러져 넘어지고 옷이 젖는 것도 주의를 하지 못할 만큼의 것들. 이런 것을 하지 못하게 하면서 공부에는 몰입하기를 바라는 것도 과욕이다 싶다. 일단 몰입하는 것이 뭔지를 가르쳐야 할 텐데 말이다.

라고 내 마음을 다스렸다. 그렇지 않고서는 짜증이 가라앉지 않고 포기가 안 될 거 같아서였다. 그런 짜증은 아이에게 곧장 날아가게 되어 있으니, 화를 내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아이에게 화를 잘 안 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어쩐지 어리고 약하기 때문에 쉽게 화내는 기분이 들어서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화를 잘 내는 사람이 아닌데 유독 아이에게 그렇게 하는 것은 이 아이가 나에게 만만하고 쉽기 때문은 아닌가, 아이를 무시하는 것은 아닌가를 늘 경계하고 있기 때문에 화가 나기는 해도 되도록 참는다. 남편은 아이가 버릇이 없어진다고 말하지만, 화를 낼 때 폭력이 아닌지 생각하다 보면 대부분은 너무 폭력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버릇을 안 가르치겠다는 말도 아니고 아이에게 통하지 않으면 기를 팍 꺾어 버리는 무서운 엄마이기는 하다. 그래도, 10번 중에 두어 번만 화내자는 게 아이가 6살이던 목포 여행에서의 나의 생각이었다. 8살이 된 지금은, 상황이 좀 다르다.

어쨌든 아이들은 아무도 없는 외달도 해변에서 신나게 놀았다. 모래를 씻어내고 젖은 옷을 말리는 것은 순전히 엄마의 일이었지만.

‘너희들이 즐거우면 됐어.’

우리는 바닷가에서 놀던 걸 정리하고 이동했다. 배가 고프기도 해서 유명하다는 한옥집으로 향했다. 한옥집 펜션과 붙어 있는 곳이라 식당이라도 있을 줄 알았다. 하다못해 편의점 김밥이라도. 그런데 비수기인 데다 아르바이트 학생이 휴가를 가서 김밥조차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라면도 없고. 우리는 주린 배로 절망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배 타면 분명히 배고프다고 할 텐데.”

엄마의 걱정은 아이의 주린 배일뿐이다. 결국 앉아서 돌아다니며 살피다가 배 시간을 1시간 남기고 음식점을 찾아냈다.

“전복죽이랑 전복라면 주세요.”

별로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시간에 쫓기듯 들어가서 대충 허기만 채우고 나올 생각이었다. 우리는 웬 단 칸 방 같은 곳에 이불이 쌓인, 마치 단체 엠티 방 같은 룸으로 안내를 받았고 자리에 털퍼덕 앉아서 음식을 기다리며 시계를 자꾸 확인했다. 초조했다. 배를 놓치면 다음 배까지 시간이 너무 길었다. 그리고 그 마저도 놓치면 이 곳에서 숙박을 해야 되는데 여기는 지금 비수기도 너무 비수기라서 마을 사람들도 안 보일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음식은 시간이 임박해서 나왔다. 우리는 허겁지겁 죽을 식혀서 한 입, 어라...?

“맛있다.”

시장이 반찬이었기도 했겠지만 전복죽과 전복라면의 맛이 상당히 괜찮았다. 아이들도 라면을 그렇게 잘 먹었다. 물론 라면은 그냥 먹여도 잘 먹었겠지만. 어쨌든 인스턴트가 아닌 건강한 라면을 먹이는 기분에 양심이 좀 덜 찔렸다.

그리고 남은 배 시간 10분.

“얘들아 달려!”

우리는 그래도 배가 들어오는 중에 도착해서 무사히 배를 탈 수 있었다. 배 안에서도 음식 이야기를 했는데 목포에 와서 그때까지 맛없는 음식은 없었다. 심지어 라면에 전복하나 넣었다고 그렇게 맛있다니. 다시 돌아온 천안에서도 가끔 생각나는 맛이었다.

이전 03화첫날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