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단순하게 수학이 풀고 싶을 때가 있다. 그 집중을, 몰입을 느끼고 싶거나 문제를 풀었을 때의 쾌감이라든가 혹은 잡다한 생각을 하기 싫을 때.
수학을 푼다고 해봤자 중학교 문제집 중에도 비교적 쉬운 걸 고른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부분은 기하학이다.
아, 참... “제 전공은 수학과입니다.”를 먼저 말해야 이상하지 않으려나...?
우리나라는 유독 수학을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서 즐겁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다. 입시를 위한 수학에서 즐거움을 느끼기는 무리일지 모른다. 그런데 나는 어릴 때부터 그냥 수학이 좋았고 열심히 하다 보니 선생님 칭찬도 받고 하다가 결국 전공까지 수학이 되었다. 수학과 나온 사람이라고 모두 수학이 좋은 건 아닐지 모르지만 여하튼 나는 수학이 좋다.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풀어내기 위해 머리 굴리길 좋아한다. -아, 지금 수학 얘기에 뒤로 버튼을 누르실 분들이 보여서 말씀드리는데 이 페이지에서 수학을 하라고 설득할 생각은 전혀 없음을 밝힌다. 그러니 끝까지 읽어주시면 감사합니다.-
여하튼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어느 날 너무 심심하고 머리를 굴리는 퀴즈를 풀고 싶어서 서점에 들러서 가로세로 낱말 퀴즈나 스도쿠를 뒤적거렸다. 그러다가 그냥 중학 수학 문제집이 눈에 들어와서 요즘은 어떤 식으로 배우는지 궁금해졌고 문제집 한 권을 사서 풀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람? 글 쓸 때처럼 시간 순삭을 경험했다. -이해가 안 가신다고 해도 저는 그런 사람입니다.-
오랜만에 풀어보는 숫자놀이는 꽤 재밌었다.
거기에는 내가 아는 것도 있고 모르는 것도 있다. 오래된 기억을 살려서 낑낑대며 풀거나 예문을 뒤적거리면서 대입한다. 어차피 나는 시험을 볼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행위 자체가 즐겁다. 혹시 머리 복잡한 일이 있으시면 추천해본다. 정말 다른 생각은 할 수가 없다. 물론 수학을 싫어한다면 문제를 보는 순간부터 짜증이 날 수는 있다. 거기까지 책임져 드리기엔 내가 책임질 일이 많으니 그 부분은 추천으로 끝내겠다.
어쨌든 그 날은 그런 날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집중하고 싶은 날, 그래서 나는 수학을 풀었다. 중 고등학교 때도 자주 수학을 풀며 시간을 보내더니 습관이란 무서운 일이다. 어쨌든 이 무언가를 푼다는 행위를 통해 머리를 정리한다.
생각을 버리는 방법으로 뇌를 단순화하는 법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나한테는 문제 풀기이다.
요즘 보는 드라마에서 어떤 사람은 화가 나면 뜨개질을 한다는 사람이 있었다. 그 밖에도 모 가수는 화가 나면 앞구르기를 한다는 일화를 알고 있다. 나한테는 수학이 그런 전환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뇌가 더 복잡한 문제를 생각하게 함으로 다른 일을 생각 못하게 하는 것이다.
생각을 멈추는 법도 각양각색이다. 나는 여러분이 생각이 많을 때는 어떻게 멈추는지도 궁금하다. 나처럼 수학을 풀거나 누군가처럼 걷거나 뛰거나 뜨개질을 하는 것 등 말고 얼마나 다양한 것이 있을까? 사람의 방식은 하나로 결론지어지지 않고 모두 다르다. 머리를 식히는 건 같은데 방법이 다 다른 것이다. 그러니 누구에게 내 방법을 권할 수는 있어도 그것을 강요하거나 채택되지 않는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나는 내 방법을 누군가에게 많이 권하지도 않지만 그것은 행위를 하는 사람의 결정이므로 기대... 솔직히 방법을 알려주면 한 번은 해보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한다. 해보고 버려지면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채택이고 뭐고 기껏 말해주니 한 귀로 흘렸다는 걸 알면 그 사람에게 내가 별로 중요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 어릴 때 이러한 생각은 더 심했던 거 같다. 지금은 그래도 들을 때부터 스타일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이해하지만 어릴 때는, 그러니까 아주 어릴 때는-이렇게라도 나의 소치를 외면해보겠다는 의지이다- 조언을 구했으면 해 봐야 된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것은 반대의 상황에도 적용되어서 누군가 나에게 조언을 하면 그것이 나의 생각과 다름에도 일단은 받아들였다.
지금은 내 시간 역시 귀해서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려고 애는 쓴다.
물론 아직까지 굳어진 습관이 있어서 남의 권유대로 행동을 하는 나를 상상해보는 정도까지는 하지만 행위로 옮기는 건 후차적인 문제이다. 아마 이러한 나를 적응하는 데에도 역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러니까 여러분도 내가 여기서 말한 수학 풀기를 할 필요는 없다. 나도 순전히 재밌으려고 한 일이니까. 이번 소개를 통해서 그냥 그런 사람도 있구나 하고 다 큰 어른이 어린이 문제집을 풀더라도 이상하다는 눈빛만 안 하시면 된다. 그것이 서로를 향한 예의 아닐까?
나중에 딸에게 그런 얘기는 해줄 수 있다. “너를 기다리면서 수많은 글을 쓴 만큼 수많은 문제도 풀었다. 심심할 때 엄마는 수학을 푸는 게 재미있더라. 너는 뭐가 재밌니?”하고.
그래서 생각나는 게 있는데 나의 딸은 자주 “심심해.”라고 한다. 그러다가도 갑자기 그림을 그리거나 게임, 유튜브 시청에 집중해서 조용해지기도 하는 걸 본다.
“네가 말하는 심심함의 정체도 모르겠지만 몰두한 일에 즐거움도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딸은 분명히 재밌어서 하는 일인데 내 입장에서는 그 일들이 재미와는 거리가 멀다. 나는 수학이 좋은데 딸의 현재는 게임이나 다른 무언가가 좋음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모녀지간에 심심함을 보내는 방법도 다른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인이 같은 무언가를 같은 행위에서 느낀다는 건 거의 기적이 아닐까? 타인의 즐거움을 쉽게 재단하면 안 되겠다고 수학을 풀던 나는 갑자기 생각한다.
수학, 진짜 재밌는데... 딸은 별로 재밌지 않은 모양이다. 그냥 마인크래프트, 어몽 어스 같은 게임 이야기를 한다. 그게 제일 재미있으니까 그 얘기를 엄마한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취미 영역의 대화는 각자 취미가 같은 사람을 찾아 대화하는 편이 낫겠다고 지금의 나는 생각한다. 나중에도 다르면 더더욱 취미가 같은 사람을 찾아서 이야기하는 편이 나을 거 같다.
‘그래도 어느 정도 클 때까지는 내가 엄마니까 아이의 취미도 같이 즐겨주어야 하는 거겠지.’ 생각하며 아이가 좋아하는 캐릭터 옷을 산다. 그리고 기뻐하는 모습을 행복해한다. 접점을 찾아가는 나의 방식이다.
우리는 접점을 찾아야만 하는 관계이다.
물론 엄마와 딸도 다르고 각자의 생을 살겠지만 일단 당분간은 동거인의 취향이라든지 같이 대화할 거리가 있어야 덜 지겹지 않을까?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하는 선택들이다. 내가 하는 선택은 그 이상의 의미도 없다. 기왕이면 능숙한 엄마가 먼저 움직이는 것, 이렇게 해두면 훗날 아이가 나의 느린 행동에 접점을 만들려고 애쓰는 때도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내 생각이 다 옳다는 건 아니고 그저 가정이다. 가정을 하고 증명을 시작하는 것이 수학에서는 중요한,... 어쨌든 그렇다.
결과 값이 없더라도 이런 맞춰가는 과정마저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수학 좋아하는 엄마는 오늘은 글을 쓴다. 글을 쓰며 수학을 생각한다. 수학을 푸는 나를 생각한다. 누군가는 이 글을 보고 중학교 수학 문제집을 살지도 모른다. 아무리 우리나라가 수포자가 많더라도 ‘절대 없다’고 장담은 이르다. 수포자가 많고 싫어하는 사람이 다수일 뿐이지 소수의 누군가는 소수의 의견을 가지고 살아가니 말이다. 수학을 좋아하는 또 다른 소수의 누군가를 찾아서 오늘도 나는 물병에 편지를 써 던지는 심정으로 이 글을 쓴다. 공감... 부탁합니다.
이렇게 오늘 분량의 토마토 주스도 다 먹었고 볼펜의 잉크도 조금씩 바닥을 향해 간다. 내가 더 할 수 있는 말을 생각한다. 이번에는 수학을 푸는 것이 아닌 소수가 옹호받아야 하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소수는 소수인 채 적은 인원이라는 희소성의 가치에 의해서라도 보호받아야 한다. 그런 생각들을 해본다.
수학을 좋아하는 나는 소수자이다.
그러니 돌보다는 따뜻한 손길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 또한 어떤 소수자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이 되고 싶다. 수학을 푸는 소수자인 내가 다른 어떤 이를 이해할 때 이 시간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언젠가 나와 다른 소수를 이해할 때 몇 번의 수고를 거치더라도 그들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