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엄마
평범함이란 무엇일까? 어떤 특별한 기준에 도달하면 평범함을 넘어서는 일일까? 결론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평범함의 기준은 각기 달라서 이 사람의 평범함이 저 사람의 특이점이 되곤 한다. 그런 이력을 따지면 세상에 평범한 사람은 없다. 평범한 사람만 있으려면 다 같은 사람만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우리는 모난 돌이 되어 정 맞기 전에 알아서 모난 부분을 감추고 덮은 것뿐이지 않을까? 내가 평범함에 대해 이렇게 길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찔리는 게 많은 범상치 않은 나라는 인간 때문이다.
일단 나는 글을 쓴다. 쓰는 엄마가 많아도 범주는 추려진다. 유튜브 좀 보라고 애원하는 엄마, 이것도 그리 흔하지 않을 테지. 그리고 아이를 기다리며 늘 같은 카페에서 뭘 마실지 고민하다가 토마토 주스를 마시는 엄마도 흔하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나는 나만의 독특한 아이덴티티를 가진다. 사람은 작은 범주 안에서 같은 사람이 없다. 그러니 나한테 평범함을 논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문제는 내가 나에게 그 평범함의 기준을 만들어 들이댄다는 것이다.
‘평범한’, ‘보통’ 엄마는 자기 시간이 필요하다며 아이의 손에 폰을 쥐어주지는 않겠지,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스스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잣대인 것이다. 나는 평범해지고 싶은 걸까? 아니면 그냥 나로 살아도 좋은 걸까? 그 답도 아직은 모르겠다.
얼마 전에는 전화를 받았다. 보험 가입 권유였다. 평소라면 그냥 끊었을 텐데 배스킨라빈스 상품권을 준다기에 혹해서 전화기를 잡고 있었다. 마침 시간도 있었다. 이 모든 우주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은 기분. 그런데 문제는 이 전화가 건강보험 전화라는 것이었다.
나의 평범치 않은 이력 중 하나는 현재 우울증 약을 먹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보험이라니. 절대 심사 통과가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요즘은 흔하게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있음에도 환자들은 보험에 가입할 수 없다. 의료 혜택도 거의 없는 F코드. 정신과 병력은 코드 중에 F코드로 분류된다. 이 F코드가 붙으면 보험 가입이 안 된다. 그래서 아쉽게도 나는 더 이상 통화를 이어가지 못하고 “저 정신과 약 먹는데요.”라고 말했다. 말하면서 내가 되게 이상한 사람인 기분에 사로잡혔다. 사람이 우울증일 수도 있다고 받아들인 지 오래인데 아직도 내가 이로 인해 보험 가입 거절이 된다는 것은 좀 낯설었다. F코드가 뭐라고.
우울증이라고 해서 굉장히 무기력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건 아픔이 심할 때이고 평소에는 또 그럭저럭 생활을 유지한다. 우울증이라고 다 자살하지는 않는다. 그냥 좀 더 자살을 염두 해 두는 것뿐인데도 그럴지도 모른다는 위험부담 때문에 보험 가입이 안 된다. 그리고 약을 먹지 않아도 보험 가입 2년 안의 자살에 의한 사망은 보험금이 나오지 않는다. 아니 도대체 자살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갑자기 죽는 건 누구나 똑같다. 자살이냐 타살이냐, 로 갈리는 것 아닐까? 그리고 우울증에 의한 자살은 나는 병사라고 생각한다. 약 먹고 주변의 도움도 받고 스스로 관리를 잘하면 평생 우울증을 앓으며 살다가 다른 병으로 자연사할 수도 있다. 그런데 자살이면 무슨 큰 결함이 되는 것처럼 소수로 취급된다. 과연 우울증 환자가 소수일까도 의심스럽고 경증에서 중증까지 다 하면 우리나라의 경쟁적인 환경으로 보아 대부분 우울증이라는 무기력감을 지나가 보지 않았을까 하는 의견이다.
특히 출산 후 우울증이나 번아웃 등 많이 겪으며 지나간다. 나는 언제부터 시작된 건지는 모르지만 그저 다 빠져나오지 못한 것 빼고는 그리 다를 것 없는 삶이다. 약을 혈압 약처럼 챙겨 먹는 건 뇌질환이라 아프니까 먹는 거다. 그런데 나조차도 이런 엄마인 내가 ‘보통’, ‘평범한’의 범주에서는 벗어나 있다고 생각하면서 나를 대한다. 그리고 이 때문에 소수의 손을 들어줘야겠다고 생각한다. 내가 소수고 약자이기 때문이다. 프레임이 갇힌 나, 나를 가두는 프레임. 이 사이의 갈등은 계속된다.
어쨌든 이 F코드는 몇 년째 나를 따라다니는 친구이다. 그래서 더욱 딸에게 미안하다. 엄마가 아프지 않았더라면...으로 시작하는 죄책감들이 늘 내 몸에 들러붙는다. 스스로 붙이고 있을 때도 있고 남이 붙여줄 때도 있다. 나도 이미 아는 사실을 남이 붙여주면 상황은 더 심각해진다. 나와 내 가족을 제일 걱정하는 것은 나일 텐데 “그래서 애가 외로움을 많이 타는구나.”라는 말을 하거나 “그래서 애가 저렇게 눈치가 빠르구나.”라는 말을 한다. 내가 우울증이라고 말하지 않으면 같은 말을 하면서 ‘외동이라 그렇구나.’가 된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을 해봤다. 아이가 엄마를 좋아하고 매달리고 따라다니고 눈치 있게 구는 일은 외동이어서 일까, 엄마가 아파서 일까? 정답은 둘 다 아니다. 우리 아이는 그냥 그런 성향인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나의 약점을 잡아서 그것이 나의 불행의 이유라도 되는 것처럼 말한다. 근데 그 불행이라는 것도 나는 모르겠다. 아이가 외로움 타는 것과 눈치가 빠른 건 개인의 정도 차이와 성향이지 내가 만든 것도 아닐뿐더러 나는 그게 그렇게 안타까운 일인 줄도 잘 모르겠다. 우리 아이는 잘 크고 있는데 왜 갑자기 결함 있는 아이로 만드는 걸까?
이래서 뭐든 그냥 얘기 안 하는 편이 더 좋은가 생각하다가도 나는 결국 내 입으로 “우울증입니다. 둘째 생각은 없습니다.”하고 말하고 만다. 다들 그냥 가치관이 다른 것뿐인데 차별을 받을 이유가 없다. 그리고 내가 아프면 힘들 때 도움의 손길을 뻗으면 되고 외동인 아이가 외로워 보이면 동네 친구를 사귀면 될 일이다. 그도 아니면 친구 같은 엄마가 되어주면 아이가 부족하게 자랄 이유가 무엇인가 싶다.
그래서 나는 평범함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한다. 내 기준에 맞지 않아도 그냥 살면 되는 것 아닐까? 세상에 똑같은 건 없은데 왜 기준을 정하고 거기에 맞춰 똑같아지려고 하는지. 그렇게 하라고 강요하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놈의 F코드 딱지 때문에 배스킨라빈스 상품권이 날아간 건 너무 아깝다. 나는 특히 슈팅스타를 좋아해서 혼자 커다란 박스를 비울 수 있을 정도인데 내가 우울증이라는 이유가 아이스크림을 못 먹는-물론 상품권을 못 받았을 뿐이지만- 이유라는 것이 너무 서럽다. 병을 내가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더욱 그렇다.
질병이나 자연재해는 일정 수준 이상으로는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가 없다. 대책을 세울 수 있을지 몰라도 맘먹고 달려들면 인간은 그저 나약한 지구의 먼지일 뿐이다. 나는 보통 엄마, 평범한 엄마는 아니다. 하지만 그 이하가 있다면 그 이하로 떨어지는 이상한 엄마도 아니다. 이상하기는 해도 꽤 괜찮은 엄마이다. 물론 딸의 의견도 들어봐야겠지만 그리 나쁘게 평가될만한 일은 그 무엇도 하지 않았다.
우리 아이는 심리 검사에서도 자존감과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아이라고 선생님이 그러셨다. 안 그래도 나의 병력이 아이에게 영향이 갈지 제일 걱정되는 것은 나여서 검사도 받았다. 그랬더니 전문가가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다. 아이가 자기 하고픈 거 다하고 사는 중이라고 오히려 조금 자제시켜야 한다고 했다. 그럼 된 거 아닐까? 아닌가?
엄마가 완벽하게 평범할 수는 없다. 엄마도 사람이고 인간인데 그런 일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냥 내가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아이와 블록 만들 듯이 만들고 맞추고 조정해가면 되는 것 아닐까 한다.
어쨌든 나 역시 보통 엄마는 아니다. 비범한 사람이라 남들이 감당 못할 것이다-이것은 농담이다- 그러니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살 거다. 내가 F코드고 아이가 외동이거나 말거나 모두들 더 생산적인 일로 조언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할 말이 없다면 그냥 수고했다는 한마디라도.... 인생에 중요한 건 남 걱정보다는 위로가 아닐까? 다들 이렇게 빡세게 살고 있는데...
내가 이렇게 공개하는 이유가 궁금할지도 모르겠다. 그냥 그 얘길 해주고 싶어서이다. 우울증은 생각보다 흔하고 나처럼 약 먹으며 조절하고 살아가는 게 가능하다는 걸 알리고 싶다. 딱히 숨기고 부끄러워할 이유도 없지 않나? 그냥 아픈 건데. 이게 평범하고 말고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인식이 더 많이 퍼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