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왜 맨날 아파?"
"엄마도 아플 수 있지, … 있는데. 엄마가 언제 맨날 아팠어…?"
우울증 약을 먹은 지 3년, 조울증 약을 먹은 지 10개월. 딸아이가 나에게 날린 묵직한 한 마디에 나는 순간 멍해졌다. 식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여름의 일이었다. 그것은 아이에게 가장 남기고 싶지 않은 엄마의 모습이었다.
치유로 가는 대답을 찾고 싶어 졌다. 나는 아프고, 나는 왜 아프고, 나는 왜 이러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나을 수 있지?’, ‘어떻게 하면 되는 거지?’, ‘나는 달라질 수 없나?’에 대한 물음들이 생겼다. 아픔을 핑계 대는 나는 그만 없애고 싶어 졌다. 그 모든 것의 시작은 딸이었다.
29살에 결혼해서 30살에 낳은 아이를 두고도 나는 기뻐한 적이 없었다. 언제나 우울했고 모든 것이 내 발목을 잡고 있다고 생각했다. 남편도, 아이도, 거추장스러운 무엇이었다. ‘혼자 살았으면’이라는 생각을 끝없이 했다. 그리고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져 갔다. 아픔은 내 가족을 등지도록 만들었다.
우울증으로 판정을 받기까지 나는 밥을 먹는 것도 씻는 것도 아이를 데리고 문 밖을 나서는 것도 힘든 3년 반을 보냈다. 남편 하고는 점점 멀어졌고 그에게 원망만 가득 품었다. 그것은 독이 되어 나의 안에 퍼져갔고 나는 그렇게 주저앉았다.
어지러움이 가시지 않는 3주를 보내고 신경과를 찾았더니 이상이 없다며 정신과를 추천받았다.
“되도록 빨리 가보세요.”
신경과 의사는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위태해 보였나? 생각해보면 나는 그때도 웃고 있었다. 몸이 아프긴 해도 정신은 멀쩡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고작 종이 검사지 하나로 의사는 왜 나를 심각하게 보았을까. 알 수 없었다.
중증 우울증. 그런 거 남들한테만 오는 건 줄 알았는데 나한테도 왔다. 더 살고 싶지 않은 그 감정의 끝에, ‘죽지 못해 사는 건 이런 거구나.’를 매 순간 느끼는 것이 우울증이라 했다.
지나가는 일이겠거니, 금방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며 3개월을 약을 먹었다. 왜 아직도 아픈가, 의문을 품고 6개월을 먹었다. 이제는 괜찮은 거 같은데, 하면서 1년이 지나 있었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께 물었다.
“저 언제까지 와요?”
“계속 오셔야 될 거 같은데요.”
그렇게 2년쯤 지나, 정말 좋아진 거 같아서 들떠있는 순간에 선생님은 내가 우울증이 아니라 조울증은 아닌지 의심하셨다. 그렇게 또 다른 병을 달고 1년 이상의 시간을 더 보내며.
내 옆에 있는 딸에게 미안해서, 나는 울었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다시는 잊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을 누군가에게 괜찮을 거라고, 말하기 위해서. 희망과 산책하고 싶어서.
스스로도 감당하지 못하는 자신을 무서워하며 어딘가에 있을, 가족들과 살고 있는 누군가에게 바늘만한 숨구멍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