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우울증이래.”
그렇게 말했을 때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
“다들 그렇게 살아.”
나는 늘 이 말에 주눅 들어서 살았고 지금도 그렇다. 남들도 나처럼 살고 있다는 건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아는 것인데 사람들은 다시 나에게 그 사실을 상기시켜줬다. 결혼, 육아, 경력의 단절... 모든 것이 복잡하게 얽혀서 무엇 때문에 아프다고 할 수는 없는 상태였다. 또한 우울증은 정신력의 문제가 아니라 그저 뇌의 시그널 문제였기 때문에 환경만 탓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그런데 전적으로 환경을 들먹이며 ‘남들도 다 그렇게 산다.’니.
물론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사는 것은 어쩌면 보통 범주의 평범한 일일지 모른다. 다들 그렇게, 그냥 그렇게 살고 있는데 나만 유난스럽게 같은 상황에서 아프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같은 처지라도 팔 부러진 사람을 보며 환경, 정신력 탓을 하지는 않지 않나? 그냥 다친 건데.
그래, 나는 뇌를 다쳤다. 그런데 어떻게 남들처럼 사는 게 쉬울 수 있겠는가? 다리가 부러지면 계단을 오르내리는 불편이 생기고 남들처럼 편하고 익숙하게 걸을 수 없는 게 당연한 일 아닐까?
나는 뇌가 아프다고 말한다. 그래도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너만 힘든 거 아니야. 남들도 다 똑같이 힘들어.”
라고 말한다. 어떻게 똑같이 아플 수 있는지 의문이 생기지만 그런 말을 시작한 사람에게 아무리 시그널에 대해 설명해도 소용없다는 사실을 안다. 아픈 사람만 아픈 사람을 이해한다고 정신, 그러니까 뇌의 시그널 문제로 힘들어 본 사람은 이것이 마음으로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걸 이해하는 정도이다.
그리고 환경만 보면 나는 정말 핑계를 댈 것이 아무것도 없다. 남들이 말하는 남들처럼 사는 것이니까. 그래서 내가 약하다고 생각하면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다리 부러진 사람이 노력해서 남들만큼 달린다면 그건 강한 거지 약한 게 아니다.
나의 평범한 인생은 나열하기도 입이 아플 정도이다. 결혼을 하기 전에는 다들 하는 공부를 해서 취직을 하고 직장을 다니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결혼을 해도 계속 일을 하는 사람일 거라 막연하게 생각하기도 했다. 시대가 결혼을 해도 일을 하는 여성이 당연해졌으니까. 하지만 내가 29년을 살던 서울을 떠나 직장을 그만두는 사태가 결혼과 동시에 벌어졌다. 나한테는 무척이나 큰 충격이었지만 그래, 다들 이렇게 사는 거지, 하는 범위 안에서 나는 사건을 겪고 있었다.
그렇게 결혼을 했고 집안일이라고는 하나도 모르는 내가 ‘뭐 별거 있겠어?’라고 생각하며 남들도 다 하는 거 나라고 못하겠냐고 우습게 봤던 것도 사실이다. 물론 주변에서도 내 생각과 똑같이 말했다. ‘너는 뭐든 하면 잘하니까.’, ‘남들도 다 하는 거 너도 하면 하지.’그 말에 속았다.
그렇게 나에게만 파격적인 변화로 느껴지는 집안일이 시작되었다. 엄마가 해주는 밥 먹으면서 공부하고 회사만 다니던 내가 이제는 엄마처럼 남편 회사 보내려고 밥하고 빨래하고 설거지하고 청소를 해야 했다. 부끄러운 이야기기도 하지만 나는 결혼해서 하는 집안일이 처음이었다. 자취를 해본 것도 아니니 더 그랬다. 딸 역할만 29년을 하면서 나를 공주처럼 키우는 엄마 밑에서 내 책상 정리나 겨우 하고 살다가 결혼을 하니 눈앞에 일들이 너무나 새로웠다.
새로워서 즐거웠냐 묻는다면, 아니었다. 새로우니까 더 힘들었다. 노동이라는 것이 특히 새로울수록 힘든 일이라는 걸 그때는 왜 몰랐을까? 혼자 힘으로 다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자만했는지 모른다.
“다들 그래. 너만 그런 거 아니야.”
이제는 너무도 잘 안다. 우리 옆집도, 그 옆집도, 윗집도, 아랫집도 다들 비슷하게 살고 있다는 걸. 그런데 왜 나만 유별나게 우울증일까? 엄마 말대로 정말 내가 오냐오냐 커서일까? 그럼 나보다 더 공주처럼 자란 사람은 더 심하게 우울증이 오는 게 맞지 않나?
나는 억울했다.
엄마가 아무리 공주처럼 키웠어도 비교를 하자면 나보다 나은 생활을 하는 친구들은 널리고 널렸는데 왜 나만 우울증이란 말인가? 그리고 나약하다는 소리를 듣는 것도 너무 싫었다. 남들 하는 거 못한다는 사실이 분했는지도 모른다. 그것도 노력하면 되는 일을 안 하는 게으름뱅이라고 스스로를 자책했다.
거기다가 출발선도 달랐다. 가사도 재능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서였다. 나는 집안일 하나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아주 엉망은 아니었고, 서툴렀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이다. 자책은 늘어가고 집안일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나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해서 자존감은 낮아져 갔고 그럴수록 모든 것들이 나를 누르기 시작했다. 그 모든 것은 걷잡을 수 없이 나의 뇌를 망가트리고 있었다.
좋은 생각을 하면 뇌에 좋은 호르몬이 분비된다는 말을 들었다. 웃으면 엔도르핀이 나오고 하는 과학적인 이야기들. 그런데 나쁜 생각을 하면? 나를 계속 공격하는 생각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마음이 병든다. 근데 마음만 병드는 것이 아니라 뇌도 공격을 받는다. 그래서 뇌가 아프다고 자꾸 이상 신호를 보내는데 그걸 자력으로 이겨내겠다고 덤비다가 오히려 힘을 다 빼앗기고 말았다. 자연치유도 어느 정도 가능하지 계속해서 공격당하면 지치기 마련이다.
나는 지침의 단계에 드러누웠고 자연치유, 내 힘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걸 의지 나약과 연약함이라고 말한다면 나는 좀 억울하다. 지금도 주변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말한다.
“뇌에 신호 체계가 조금 고장 나서 수리하려면 약을 먹어야 합니다.”
약은 한마디로 부품을 갈아 끼우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렇게 간단하게 설명해도, 엄마 역시나,
“너는 왜 우울증이야? 너보다 못 사는 사람도 많은데.”
라고 말씀하셨다. 그 날 나는 엄마에게 처음으로 잔뜩 화가 났다.
“그럼 부자들은, 나보다 나은 환경의 사람들은 우울증 안 걸려? 내가 약한 게 아니라고. 강하니까 이렇게 병이랑 싸우고 버티는 거야.”
그렇게 말하고 나서도 씩씩댔다. 물론 그리고 다음 날부터 엄마한테 심하게 말해서 미안했다. 그런데 화는 내도 사과는 못하는 딸은 이 지면을 빌어서, 엄마 조금 더 차분하게 말할 수 있었는데 공격적으로 말해서 미안하다, 고 전하고 싶다.
가까운 사람들도 이해 못하는 병이 우울증이다. 너는 뭐가 모자라고 힘들고 유별나고 예민하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니까 ‘남들도’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백 번을 설명해도 다시 원점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팔이 부러져보지 않은 사람이 팔 부러져서 머리도 깨끗이 감지 못하는 사람의 심정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그래도 나는 자꾸만 설명하고 싶어 진다. 이제는 대한민국에도 정신질환, 즉 뇌질환의 인식이 바뀔 때가 되었다. 코로나가 오고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 만약에 이것을 그저 정신력, 개인의 생각의 문제라고 치부한다면 병을 방치하게 되고 병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고장 난 기계를 계속 정상일 때처럼 가동하려고 하면 무리하게 되어서 병만 키우는 꼴이다.
“남들도 다 그러고 살아.”
이 말이 너무 무섭다. 남들은 그런 상황에서도 다들 애써 살고 있는데 나만 견디지 못하는 나약하고 게을러빠진 사람 같아서 그렇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도 그 말을 자중하게 되었다. 나도 힘겨운데 듣는 사람인들 그 말이 위안이 될 리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남들처럼 살아야 한다는 강요적인 말은 힘들기도 하지만 나로 살고 싶은, 내 이름 석 자로 살고 싶은, 자의식이 강한 사람에게는 더욱 버거운 말이었다.
나는 남들처럼, 이 아니고 나처럼 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