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면 복이 와요.”
과거 개그 프로그램의 제목으로 쓰일 만큼 유명한 문장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웃음, 행복, 긍정적인 생각에 대한 강박이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을 정도로 밝음을 강조하고 그런 말을 쉽게 한다. 웃는 얼굴에는 침도 못 뱉는다고 하지 않는가.
아빠는 어릴 적 내려간 내 입꼬리를 걱정하시기도 했다. 그래서 그 말을 들은 어린 나는 열심히 웃었다. 내려간 입꼬리를 보완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한 행동이었다. 미소를 지었고 더 환하게 웃었다. 과학적으로도 억지로라도 웃으면 뇌에서 엔도르핀이 나온다는데.
‘돈도 안 드는 거, 열심히 라도 웃어야지.’
그렇게 생각했다.
이제는 사람들이 웃고 있는 내 얼굴을 편하게 여기고 좋아한다. 그리고 노력의 결과인지 입꼬리도 올라갔다. 어린 날 스치듯 한 아빠의 걱정은 이제 해결된 셈이다. 가만히 있어도 웃는 상으로 바뀌었으니 말이다.
웃는 표정이 기본이 되니 마냥 좋을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따지자면 80~90프로는 좋긴 하다. 웃는 얼굴이 호감이어서 음료수도 종종 얻어먹고 아르바이트할 때도 인상 덕분에 예쁨을 많이 받았으니까. 하지만 이 웃는 얼굴 때문에 귀찮은 일도 생긴다.
“네가 나 좋아하는 줄 알았어.”
이런 오해를 받기도 한다. 웃는다고 사랑을 하는 건 아닌데도 말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인 일은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 하셨던 이야기다.
“그렇게 계속 웃기만 하면 바보 같아.”
물론 지금은 선생님의 마음을 조금은 헤아릴 수 있다. 고3이 되어서도 실실 웃고 다니는 대한민국 수험생은 드물 테니까. 그리고 웃고만 있는 내가 고민도 없어 보이고 경각심이 부족해 보여서 선생님 나름의 조언을 하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웃는다고 그렇게까지 부정적인 말을 들은 건 처음이어서 충격이 컸다. 여전히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그 말을 기억하는 걸 보면 어지간히 상처였던 모양이다. 물론 그런 소리를 들었어도 선생님들에게 착하다고 문제집도 많이 얻었고 친구들도 많았으므로 웃는 내 얼굴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그 당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아빠가 좋아하는 웃는 얼굴을 바꾸고 싶지는 않았다는 사실도 한몫했다. 그리고 지금은 의식하지 않아도 얼굴이 이미 앞서서 웃고 있다. 웃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사람들에게도 스스로에게도 참 긍정적이라는 평가를 내릴 수 있을 정도로 밝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습관이 우울증이라는 병증이 시작되면서는 조금 이상해져 버렸다. 얼굴은 분명 웃고 있는데 속은 실제로 웃는 것이 아닌 텅 빈 미소. 가면을 쓰고 있는 것 같은 괴리감에 점점 괴로웠다.
웃고 있으니까 사람들은 내가 가정에 문제도 없고 아이도 잘 키우면서 행복하게 잘, 그림 같은 삶을 살고 있다고 오해했다. 사실은 나도 다른 집들처럼 남편과의 문제가 있었고 아이를 키우는 게 힘들어서 끙끙거렸는데도 말이다. 지금도 그때의 나를 아는 사람은 얘기한다.
“나는 아이가 조금만 힘들게 해도 힘들다고 하는데 너는 항상 의연해서 그렇게 힘들 거라고 생각 못했어.”
지금은 그 사람에게 내가 그때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래서 지금 왜 약을 먹어야 하는지 설명을 한 후니까 위로를 받지만 당시에 내 닫아둔 심정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의 웃음이라는 가면, 겉은 멀쩡해 보이는 기술은 병원에서도 빛을 발했다. 의사 선생님이 나를 보고 하셨던 말씀 하셨다.
“얼굴만 봐서는 우울증이 심각해 보이지 않으시는데.”
정신과 의사 선생님도 속일 정도로 단련된 스킬을 가졌다는 점에 뿌듯해야 할지 잠시 망설이기도 했지만 역시 감정이 너무 드러나지 않는 것은 정신 건강에 나쁘다. 쇼펜하우어가 “침묵의 나무는 평화라는 열매를 맺는다.”라고 했다지만 심리학적으로는 오히려 침묵은 스스로에게 독이 된다고 말한다. 전체를 평화롭게 하기 위해 나에게 독을 먹이거나 평화를 깨야하는 거라면 나는 그 중간쯤 하고 싶다. 생각을 모두 드러내는 것도 발가벗은 것 같고 그렇다고 꽁꽁 숨기는 것도 너무 힘이 든다.
의사 선생님의 진단은 그러했다. 감정을 누르고 살다 보니 정제해서 내보내는데 탁월하다고. 그리고 그 감정들 중에 특히 관계를 불편하게 하는 감정들을 너무 누르고 있어서 본인까지도 속이게 되었다고.
의사 선생님께 진료비가 아닌 복채를 내놓을 뻔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에는 분명한 의견이 있었지만, 그 마저도 남의 의견에 맞춰서 움직였고 싫어하는 감정에 대해서는 내가 그걸 좋아한다고 착각하면서 살 정도로 유능했다. 원래 사기를 치려면 본인을 속여야 된다는데, 딱 나에게 해당되는 말이었다. 싫은데도 좋은 척을 하려니까 좋아하는 것으로 확신해버리는 것.
예를 들어 최근에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나는 갓 지은 밥을 좋아하고 그게 아니면 거의 입에 대지 않을 정도이지만 29년이나 나의 식사를 신경 쓰신 엄마도 최근에, 그것도 내가 말해서 취향을 아셨다. 나는 찬밥도 좋아한다고 여기셨던 것이다. 물론 나도 그냥 주는 대로 좋아하면서 먹었으니까 엄마의 잘못은 아니다. 그저 그 정도로 사람들을, 나를 속이는데 익숙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웃는 얼굴을 보고 모든 사람들이 나의 병증 고백에 놀란다.
“네가 우울증이라고?”
거기에 심하면 믿을 수 없다며 상황까지 끌고 온다.
“네가 뭐가 부족해서? 신랑이 돈 잘 벌어다 주겠다. 애도 저렇게 말도 잘 듣고.”
일단, 신랑은 그냥 평범하게 벌어다 준다. 우리 집이나 다른 집이나, 도긴개긴이고, 세상에 순한 아이는 없다. 내가 그동안 힘들다는 내색을 하나도 안 해서 하는 오해이다. 그리고 그 모들 걸 떠나서 우울증이 상황에서도 오지만 그렇지 않기도 하다. 감기가 꼭 밖에 나가 뛰놀아야 걸리는 건 아니니까.
여러 가지 심리 검사를 했다. 그리고 그 결과지를 보고 매주 상담하면서 내 이야기를 듣는 의사 선생님은 표정만 봐서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 것 같지 않다고 하셨다. 주부가 아니라 연기자가 되었어야 하나, 아주 잠깐 고민을 할 정도로. 물론 웃는 표정 하나로는 연기를 할 수 없지만 말이다. 특히 내가 잘 못하는 것이 부정적인 감정, 눈물 연기인데 그것 못하는 연기자라니. 발연기의 달인이 될 게 아니라면 일찌감치 그런 생각은 접는 것이 났다.
사람들이 흔히 우울증이 우울하고 슬픈 감정만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나의 경우는 그보다 무감정한, 무기력한 것이 대부분을 차치했다. 모두 귀찮고 게을러지는 상태라고 말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이렇게 심각하게 감정이 메말라서 웃을 기력도 없었지만 30년을 그렇게 살아와서 잠시나마 연기자까지 생각해본 나에게는 웃는 표정이 무표정과 같은 일이었다.
우울증을 겪으면서 웃는 표정이 조금 줄기는 했어도 티가 많이 나는 정도는 아니었다. 평소에 남들보다 과하게 웃고 다니는 얼굴이었으므로 웃는 모습이 남들만큼으로 내려왔을 뿐이었다.
이렇게 게으르고 무기력한 중에도 나는 아주 가끔 끙끙대며 어렵게 모임에 나가서 웃고 떠들었다. 사람들도 간헐적으로 만났다. 물론 병증이 아주 심한 때는 일주일 이상 아무도 만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보자는 사람들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하고 나갔다. 그리고 웃었다. 진짜 즐겁고 행복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그럴 때마다 떠오르는 노래가 있었다. 리쌍의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라는 제목의 노래. 정말 어디에서도 나는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다. 물론 그 노래의 가사는 이별 후의 슬픔을 노래하는 거지만, 제목은 나의 상황과 딱 들어맞아서 한동안 열심히 들었다.
주부이지만 나는 직장인처럼 가족들에게까지 사회생활을 했다. 웃어야 해서 웃는 거지 즐거워서 웃는 경우는 드물었다는 말이다.
우울증 환자들에 대한 오해가 있는데 그들이 집구석에 박혀서 울고만 있을 거라는 생각이다. 실제로 우울증이 있어도 정도에 따라, 혹은 사람에 따라 사회생활을 웃으며 해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이 나였다. 마치 무대 위나 카메라 앞에서 웃고 집에 돌아가 혼자 있을 때 무표정한 연예인처럼.
물론 환자가 아니어도 한국 사회에서 대부분이 가면을 쓰고 살아가기는 하겠지만 우울증 환자인 나는 그 괴리가 더 심했다. 아니, 괴리를 견디기 힘들었다는 말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은 ‘다 그렇게 사는 거지.’하며 스트레스를 풀기도 했지만 나는 담기만 하느라 괴로워했으니까.
웃음이라는 가면은 쉬웠고 없어진 감정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안다. 사람의 인상이나 표정이 모든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내가 억울한 것 중 하나는 특히 아플 때였다. 우울증으로 감정이 마른 것 말고도 몸이 아플 때, 아픈 사람의 표정이어야 하는데 나는 드러나지 않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만 그런 거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인간은 관계를 맺는 종족이기 때문에 대부분 나와 같은 순간을 겪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웃는 게 웃는 게 아닌 날.
그러니까 이 글을 읽는 분들도 혹시 웃고 있는 누군가를 발견해도 결국 속은, 모르는 거라고 여겨 주시길. 특히, 저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