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모두를 끊어내고 고립된 내가 몰랐던 이야기, 나중에 들은 이야기이다.
나는 한동안 밖으로 나갈 수가 없이 무기력에 몸을 빼앗겨 누워만 있었다. 눈꺼풀은 무겁기만 하고, 누군가를 만나서 미소의 가면을 쓰는 것조차 버거운 나날들이었다. 그냥 나의 맨얼굴은 절대 드러내기 힘들었으니 가면을 써야겠는데 그 마저도 천 톤 트럭을 밧줄로 끄는 거 같은 어려움을 겪는 중이었다.
가끔 집에 들르는 동네에 친구들이 와서 커피를 같이 마시고, 만두와 돈가스를 만들어다 주고, 반찬도 가져다주었다. 이 친구들은 모두 내 아이와 또래의 애를 키우면서도 집 안을 잘 꾸리고 있는 친구들이었다. 내 눈에는 대단하고도 신기한 친구들이었다. 나는 그들이 살림과 육아를 하는 것을 보면서 자책도 했다. 같이 애 키우는 상황에서 저렇게 많은 것들을 해내는데 나는 왜 아무것도 못하나 싶게 씩씩하고 멋진 친구들이었다. 지금 이 얘길 듣는다면 나에게 “오버한다. 그냥 하다 보니까 되는 거야. 대신 너는...” 하면서 하나라도 칭찬을 끌어내는 타인 긍정적인 아이들이다. 삶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참 멋진 일이다. 그래서인지 이 친구들은 아프다는 우리 집에 잘도 들어왔다. 내가 힘없는 표정으로 죽상을 하고 맞이해도 와서 앉았다가 가고는 했다.
“오늘은 괜찮아?”
그렇게 한 번씩 와서 들여다보고 가는 친구들이 그때는 고마우면서도 부채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냥 순수하게 호의를 받아들이면 좋았을 텐데, 자꾸 누군가 나를 도와주면 갚아야 된다는 관념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럼에도 친구들이 나를 편하게 대해준 것이 나에게는 동아줄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그때 친구들이 없었다면, 공감대가 없었다면 나는 어땠을까? 혼자 고립되는 길을 가고 있는데 가까이 사는 친구들이 와서 있어주는 통에 아주 고립되는 일은 없었다. 만나서 크게 뭘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서로의 이야기를 하는 것뿐인데도 그런 날은 마음이 좀 괜찮았다. 나도 받은 게 많으니 돌려주려고 했지만 친구들은 그걸 받으려고 한 것은 아니라며, “우리 사이에 뭘.”이라고 말했다. 어쨌든 나에게는 그런 친구들이 있어서 완전한 고립은 막을 수 있었다.
아픈 나를 보는 아이들은 얼마나 답답했을까.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힘든 건 마찬가지인데 내가 조금 더 힘들어하는 것을 보고 커피라도 사들고 오는 그 심정을 이제는 더욱 깊고 고맙게 느낀다. 지금은 같은 동네가 아니어서 전처럼 자주는 못 보지만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더 고마운 것은 나에게 했던 배려들이 내가 아는 것보다 더 많이 고민하고 했던 행동이고 심지어 그들도 힘든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이다. 그걸 최근에 알고 나니 그 당시에도 그랬지만, 더 미안하고 고마워졌다. 내가 친구들에게 할 수 있는 일이 뭔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겠다.
이 친구들 말고도 나에게 조리원 언니들이 있다. 그러니까 아이들은 다 나이가 같다. 같은 조리원에서 길게는 2주 정도를 본 사이들이고 육아를 같이 이겨내 온 언니들. 이런 언니들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프다는 핑계로 참 많이 소홀했다. 만나자고 해도 아프다고 집에 있었던 날이 부지기수였고 집으로 온다는데 잘 치우지도 못해서 언니들이 와서 정리해주고 살림해주는 날이 허다했다.
조금 괜찮아져서 모이는 자리에 나가기라도 하면, 언니들은 막내인 나를 살뜰하게 살펴주면서도 내가 부담스럽지 않게 평소와 다름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비록 겨우 나가서 멍하니 듣고 있었지만.
나는 그들의 배려를 안다고 생각했고 또 나의 힘듦을 모른다고 생각했으므로 친구들과 언니들에게 나의 우울과 힘듦을 잘 감추며 생활했다고 생각했다. 이 우울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지도 않았고 우울하다는 걸 즐거운 자리에서 티 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모인 자리에서 가진 에너지 이상의 것을 소비하고 왔으니, 내가 얼마나 힘든지 몰랐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얼마나 안이한 생각이었는지.
사실은 우리 집에 커피를 사 오던 친구도, 하는 김에 더 했다고 음식을 해주는 친구도, 별일 없으면 나와서 밥이라도 먹으라고 부르던 언니들도.
나에게 많은 사랑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저 내가 아프기 때문에.
‘내가 얼마나 아픈지 남들은 모르겠지.’
이해받지 못할 거라 판단한 그 모든 순간에 그들은 나를 사랑하고 안타까워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었음을 알았다. 내가 조금 나아져서 움직이면,
“오늘 괜찮은가 보다. 기분 좋아 보이네.”
라고 말하거나,
“이제 다 나았네. 괜찮네.”
하는 말속에서 깨달은 것이다. 사실은 무척이나 나를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아무리 힘든 것을 감추려고 해도 다들 알고 있었다는 것도. 그래서 약간 충격을 받기도 했다.
‘사실은 다 알면서 기다려 주고 있었어?’
원래 누가 옆에서 구덩이에 빠져 발버둥 치고 있으면 기다려주기보다는 꺼내 주려고 하다가 둘 다 빠지게 되는 법인데 친구들과 언니들은 옆에서 보면서도 내가 나올 수 있다고 믿고 기다려준 것이었다. 누군가를 옆에서 지켜본다는 것이 얼마나 고되고 인내심이 필요한 일인지 알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을 해주었다.
내가 이 삶에서 한 걸음씩 느리게 움직이고 있는 것을 이해까지는 아니어도 받아들이고 기다려주고 도와준 것이다. 그것을 당시에 나는 몰랐다. 오만한 판단으로 다들 아무것도 모를 거라 생각하고 행동했는데 조금 더 깊게 생각해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다들 웃으며 “모를 수가 있어?”라고 애정을 표현해 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렇게 아플 때도, 고립되어서 혼자라고 느낄 때도, 옆에 있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너무 고맙다. 그 어두운 곳에서는 앞이 보이지 않아서 이런 배려를 몰랐는데 조금만 빛을 비춰도 그들의 배려가 너무나 크고 확연해서 고맙다는 말을 아낄 수가 없다. 다시 한번 미안하고 고맙다. 이렇게 부족한데 옆에서 살라고, 살아보라고, 살도록 지켜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