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항상 의문이자 회의적인 것은 바로 계획이었다. 이렇게 계획 없이 살아도 되는 건가? 결론은 된다, 겠지만 평생을 정해진 길을 걷다 보니 앞을 내가 가림 하며 살아야 한다는 중압감은 정말 컸다.
“너 앞으로 어떻게 살래?”
스스로에게 물어도 답이 없었다. 그 전에는 공부하면 되고, 좋은 대학이 목표고, 부모님 말 잘 듣는 목표와 계획이 있었다. 그러나 결혼까지 하고 난 후에는 목표를 상실했다. 이렇게 아이를 키우려고 그동안 그 힘든 길을 걸어왔나 생각도 들고 내가 쌓아온 것들로 다른 것을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어쨌든 나는 지금 주부니까.
“애 키우고 집안 돌보는 게 일이지. 그렇게 살아.”
사는 것이 과연 그게 다인가? 그럼 나는 왜 그렇게 공부하고 살았지? 뭘 공부한 거지? 아이 키우는 건 처음부터 나의 계획에 있지 않았는데 어째서 갑자기 걷던 숲길에서 갑자기 도로가 튀어나왔는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그동안은 걸어서 오면 되는 일이었는데 이제는 자동차를 타야 한다고 한다. 근데 나는 자동차를 본 적도 없는 사람이다.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그동안 숲길을 걸으며 세운 나의 미래와 계획은 이런 게 아니었다.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는 게 너무 어렵고 그 충격이 커서 살고 싶은 의지도 꺾어버렸다.
계획이 없다고 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없었다. 아니,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 되는데 너무나 막막했다. 그냥 아무 생각하지 않고 살면 안 되는 일인가? 누구나 미래에 대한 막연함은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내가 뭘 하고 싶다든지, 어떻게 살 거라든지, 큰 그림은 있을 텐데. 나는 바뀌어버린 세상 속에서 큰 그림을 그리기는커녕 크레파스도 잡지 못했다.
도로에 뚝 떨어진 나는 이상한 나라에 온 앨리스 같았다. 앨리스는 곤경에 처해도 모험심으로 이겨내기나 했지, 나는 완전 공황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당연히 나는 앨리스가 아니니까.
소진되어갔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막막해서 소진되었다. 그 생각만으로도 나는 나를 너무 힘들게 했다. 괴롭히고 또 괴롭히다가 자해를 시작했고 그래도 풀리지 않는 속은 점점 답답해져만 갔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나 같은 건 숨 쉴 가치도 없다는 생각에 휩싸이게 되었다. 앞으로 삶이 의미도 계획도 없는데 내가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꿈과 희망이 있는 사람이 산소를 더 마시고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게 잘못된 생각이라는 걸 당시에는 몰랐다.
누구나 원치 않는데 태어나고, 태어났기 때문에 살아간다. 그 삶을 조금 더 즐겁게 살면 좋은 것이고 꾸역꾸역 살면 힘든 것이다. 그저 그뿐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면 좋고 없어도 좋다. 어차피 삶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의미 따위 없으면 어떤가? 의미 없음이 곧 의미라고 생각하고 현재에 충실하면 그걸로 되었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아플 때는 의미가 없으면 살아선 안 된다는 신념이 확고했던 걸 생각하면 확실히 우울증이 무서운 병이다. 뇌가 아프면 생명도 경시하게 된다. 특히 내 생명을 경시하기 쉬워진다. 그래서 나는 우울증인 사람들이 뇌질환을 고치기 위해 약을 먹었으면 좋겠다.
어쨌든 사람은 계획이 없어도 살아도 된다. 계획이 없어도 즐거워도 된다. 인생은 그게 다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조금이나마 알겠다. 의미를 따지고 들자면 다 의미 없는 일 투성이다. 의미는 내가 만드는 것이다. 내가 즐겁고 행복한 것이 내 삶의 의미이다.
생각해보면 나는 의미 자체를 남의 기준에서 생각했었다. 엄마가 좋아하니까 공부를 잘해야 난 의미 있는 딸이고 아빠가 좋아하니까 편지를 쓰는 착한 딸이 되어 의미를 찾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조차도 나의 만족과 내 의미 찾기이지 남이 나에게 의미 없다는 소릴 할 수는 없었고, 그런 소리를 들을 이유도 없다. 의미는 내가 나에게 주워주는 것이다.
오늘 하루, 살아 있다니, 대단한 나.
이것만으로 충분한 의미이다. 더 대단한, 위인들 같은 의미를 두지 말고 그저 현재 내가 살아가는 데에 의미를 부여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