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by 루카

우울증이 극에 달할 때는 주변의 사람이나 위로의 말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혼자 고립된 느낌은 하루하루 증폭되어 갔다. 그래서 너무 힘들었다. 인간은 누구나 외로운 거라지만, 정말 덩그러니 혼자인 기분을 계속 안고 있으려니 어지간한 일로는 위로가 되질 않았다.


물론 내가 그렇게 생각한 것뿐이었다. 주변의 사람들은 언제나 걱정하고 손을 내밀고 있었는데 내가 두려워하고 뻗지 않았을 뿐이다.


유명한 추리 소설의 제목을 다른 이유로 공감해버렸다. 모두 죽어서 섬에 아무도 없게 된 이야기 책인데 나한테 와 닿았던 건, 나조차도 당시 손 뻗을 곳이 없다는 서러움과 나도 곧 사라질 거라는 두려움이 소설의 제목을 공감하게 했다.


깜깜하던 시절 주변에는 정말 아무도 없었다. 그냥 어둠뿐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아이도 있고 남편도 있고 엄마도 있고 동생도 있고...... 생각해보면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나는 도무지 손을 뻗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손을 뻗는다는 것은 어쩐지 민폐인 것 같고, 나는 살면 안 되는 사람인 것 같고. 내 쓸모는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없었다. 심지어 스스로에게도.


죽을힘으로 살라는 말이 있다. 죽을힘이 얼마나 용기를 낸 것인지 모르는 말이다. 그렇지만 나도 아프지 않을 때는 우울증으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왜 저렇게 죽고 싶어 안달인지 모르고 살았다. 그럴 기운이 있으면 다른 방향으로 쏟아보지 왜 죽는 걸까? 그런 고민을 할 때는 오히려 행복했다.


사람은 잃어보지 않은,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나 또한 그랬던 것이다. 내가 죽어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왜 죽는지 몰랐던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게 얼마나 힘들고 쓸쓸하고 외로우며 용기 있는 일인지 안다. 자살을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버릴 정도로 밀려오는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어느 날, 아이의 동화책을 읽어주는데 뜬금없이 눈물이 주룩주룩 흐른 때가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너무 무서워졌다. 내가 나를 죽일 거 같은 생각에 너무 무서워서 읽던 동화책은 놔두고 급하게 전화 목록을 찾았다. 누구에게 어떤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 몰랐다. 그냥 너무 사람이 필요한데 연락할 데가 없는 기분. 정말 아무도 없는 기분. 나는 이렇게 위협받고 있는데 대책이 없는 기분이었다.


그런 기분에서 어렵게 아무나, 누구라도, 나를 살려줄 사람이 필요했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인 A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다짜고짜 말했다.


“나 좀 살려줘.”


그 친구는 그저 들어주었던 거 같다. 내 마음을 다독이는 말들을 해주었다. 무슨 말을 해주었는지, 그리고 내가 뭐라 대답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30분쯤 지나고 나니 안정이 찾아왔다. 그러도록 친구는 나에게 이상하다고도 그러지 말라는 잔소리나 핀잔도 아닌 괜찮다는 말을 해주었다.


“그래, 괜찮아. 너를 믿어. 나도 너를 믿고 너도 너를 믿어봐. 전화 잘했어. 괜찮아.”


그런 말들을 후차적으로 들었다. 나는 펑펑 울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 말이 마음에 많이 남아 있다. 가장 절박한 순간에 들은 말이어서 일까?


스스로는 믿는 일.


나는 나를 죽일 거 같아서 두려웠지만 나는 나를 살릴 수 있다는 믿음. 그것이 나를 붙잡아주었다. 그리고 그 말은 점점 더 힘을 갖게 되어서 치료에 적극적이 될 수 있었다. 아프긴 하지만 그 아픈 뇌에 약을 주고 치료할 힘이 생겼다. 나는 나를 치료하고 돌볼 수 있다는 것을 그 말에서 깨달았다. 물론 그 반대도 가능하며 실행 또한 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혹시라도 그런 무서운 상황이 닥치면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당신은 당신을 살릴 수 있습니다. 당신을 믿어요.


힘들면 그것도 힘들다는 것을 안다. 자꾸 누가 시키는 것처럼 내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몸을 가져본 사람은 알 수 있다. 매우 피곤할 때 움직이기 힘든 것 같은 통제 불가능한 몸이 되는 것, 그것은 너무 무서운 일이다.


어쨌든 그 친구의 한마디로 나는 순간을 모면했고 살아서 지금 글을 쓰고 있다. 아무도 없다고 생각한 순간에도 누구 하나는 있었다는 사실에 너무 감사하다. 그 마저도 없었다면, 내 안에서 충돌하는 가치관들 보이지 않는 힘에 지쳐 나가떨어졌을지도 모른다.


“살았다.”


나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내 주위에 아무도 없다고 조금 전에 생각했는데 나에게는 친구도 있었고 엄마 바라기인 딸도 바로 옆에 있다는 사실에 위안이 되었다.


지금도 내 주변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되는 순간이 있다. 나의 경우에는 그런 생각이 자만에서 나온다. ‘아무도 나를 이해하지 못해, 이런 말 해봐야 받아 줄 사람은 없어’ 하는 생각이 들 때는 다시 그래도 나는 나를 믿어.


나에게는 내가 있었다. 나를 믿어주는 나.


사람이 곁에 없어도 좋다. 나에게는 내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 친구는 지금 호주에 가서 살고 있다. 너무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 그 속 깊은 친구가 나에게 가끔 감동적인 이야기를 하는데, 예를 들어 “네 일이라면 뭐든 해줄 수 있어.”라든지 이번 사건의 일처럼 “나는 너를 믿어. 너도 너를 믿어봐.”라든지. 그럴 때마다 감동이다. 지금도 그 말들을 떠올리면 한구석에 보험 들어놓은 것처럼 든든하다. 내 옆에서 버티고 있는 친구를 두었다는 것은 나에게 정말 행운 중에 행운이다. 나도 그 친구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주고 싶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너를 믿어. 네가 행복하기를 바라.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줄게.


이런 친구 두기 쉽지 않다는 걸 안다. 그래도 나는 복 받은 사람이라는 것도 이제는 안다. 그 순간에 그 친구가 떠오른 것도 평소에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 아니었을까. 나를 해치는 위협으로부터 구해줄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 전화를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전화를 받아줄 수 있는 타이밍이어서 천운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누군가는 나를 죽이려고 하지만 누군가는 나를 살아가게 하는 것 같다.


인간은 외롭고 혼자 와서 혼자 가긴 하지만 그래도, 여러 거리감의 사람들이 있고, 가장 가까운 내가 있다. 나를 한 번만 믿어줘 보자. 죽는 게 얼마나 두렵고 힘든 일인데, 가시밭길이 아니라 어두워 보여도 죽이는 길이 아닌 살리는 길을 가자.


남이 이런 상황이면 그래도 살라고 얘기하지 죽으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말을 나에게도 해주자. 힘든 순간은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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