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 싫었던 일들이

by 루카

가장 작은 희망은 가까이에 있는 것이었다. 눈이 먼 곳을 보지 않고 이 곳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조금씩 나아가고 있었다.


항상 힘들어하던 설거지를 어떻게 할지 생각했다. 노래를 틀어놓고 해볼까 하는 마음에 핸드폰에서 좋아하는 노래 목록을 골랐다. 그렇게 시작한 설거지는 언제 끝났는지도 모르게 끝나 있었다.


‘좀 재밌는데?’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이렇게 하면 할만하겠다고. 부담 없이 노래 틀어두고 언젠가 끝나겠지, 하는 통달한 마음으로 시작한 설거지가 조금이지만 재밌게 느껴진 것에 나는 환호했다.


전에는 설거지를 시작하기 전부터 ‘싫다’가 시작이었고 다음은 ‘언제 다하지?’라는 생각과 ‘힘들겠다’라는 생각을 하느라 손 하나 까딱하기도 싫었다. 그리고 나에게 있는 결벽 아닌 결벽도 문제였는데 물기 있고 축축한 것을 만지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손은 항상 깨끗하게 말라 있어야 했다. 근데 그러면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어진다. 특히 집안일은 정리하고 버리고 닦고 하는 일이 많은데 손에 먼지 묻어서 싫고 물기 있는 것도 싫으니 나에게는 싫음의 강도가 너무나 셌다. 그런데 해야만 하는 일이니 얼마나 고통이었는지 모른다.

‘근데 나 아니면 할 사람이 없잖아?’


조금이라도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했다. 혼자 다 해결하려는 생각과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 그리고 싫다는 생각의 충돌 사이에서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좀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단순하게 설거지가 있으니까 한다, 로 바뀐 것이다. 언제 하는 건 상관없다. 그냥 있을 때 하고 싶으면 설거지를 한다.


설거지가 전부는 아니지만 이 일을 계기로 집안일에 조금씩 흥미가 생기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도 엉망진창이기는 하지만 그런 생각은 내려놓기로 했다. 누구한테 우리 집을 보여줄 것도 아닌데.


내가 편할 때, 하고 싶을 때.


물론 가정마다 사정이 다르니 이것은 순전히 나한테만 통하는 것일 수도 있다. 어쨌든 그렇게 시작된 치유의 꽃은 조금씩 봄을 불러들였다. 항상 우울하던 집이 조금씩 웃기 시작했다.


아픈 사람이 있거나 걱정이 있으면 집안 공기부터 달라진다. 그것을 정화할 사람이 없으면 더더욱 심화될 뿐이다. 아무리 밝은 기운을 불러오고 싶어도 나에게는 그럴 기운도 능력도 없었다. 봄부터 데려오려고 하니 아무것도 되질 않았다. 나는 신이 아니므로 봄이라는 계절은 언감생심이었다.


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꽃 하나 가꿨더니 어느새 꽃이 피고 봄의 향기가 나기 시작했다.


항상 남편이 있으면 멀리 도망을 다녔다. 아이한테서도 도망 다녔다. 1mm라도 떨어져 있고 싶었고 혼자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먼저 가서 딸아이를 안고 뒹군다. 남편이랑 앉아서 같이 티비를 보거나 이야기를 한다. 요즘은 남편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 재밌던 일을 공유하고 싶어서. 그리고 당신이 무슨 일이 있는지 궁금해서.


사실 남편이 하는 이야기의 절반 이상은 나의 관심사도 아니고 모르는 얘기들이다. 그걸 알기 위해서는 기초 지식이 필요해서 물어서 설명을 듣는다. 이제는 그래도 조금 알만 하다. 그래서 얘기가 재밌다. 남편 주변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게 되니 조금 다르게 보였다.


아이는 항상 나에게 붙어 있었다. 안아달라고 조르는 아이였고 엄마가 없으면 안 되는 아이였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아이를 안고 같이 산책을 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오늘은 유치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또 친구들이랑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재미있었는지가 궁금해서 나는 아이에게 묻고 또 묻는다. 아이와 오늘 저녁에 뭘 먹을지 결정하는 일이 요즘은 가장 즐겁다.


요리를 싫어하던 엄마는 뭐라도 해서 먹이고 싶은 엄마가 되었다. 그것만으로 집안이 환해졌다. 이 환한 집에 또 굴곡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번 불러온 봄이 다시 오도록 하는 방법은 이제 알고 있다. 주변을 잘 가꾸어서 꽃 하나 피우는 것, 그것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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