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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카 May 11. 2021

인생은 결과가 아닌 과정이다

아플 때는 모든 걸 끝내고 싶기 마련이다. 너무 고통스러우면 사람은 그 고통을 끝내고 싶어 지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명언도 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버티면 뭐든 지나간다. 끝내고 싶은 삶을 이었더니, 그것은 과거가 되고, 추억이 되고, 이제는 힘들지 않은 날도 찾아왔다. 물론 이러다가 다시 힘든 날도 온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이런 걸 보면 인간은 과정 속에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결과가 아닌 과정을 만들어가면서 살면 그래도 살아지는 것이 인간인 모양이다. 마치 결과를 가지고 사는 것 같지만 그건 순간을 살고 있기 때문에 결과처럼 보일 뿐 그 결과마저도 과정인 것이다. 무엇의 과정이 되었든 말이다.     


하루를 버티면 또 하루가 온다. 물론 버티는 하루하루가 매일 지옥 같았다. 그리고 다가올 미래도 그렇다고 예상했으니 살기 싫다는 생각까지 가버렸을 것이다. 지금은 그때와는 달리 조금 나은 생활을 하고 있기는 하다. 그렇게 캄캄한 미로를 걷는 것 같은 기분은 일단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다시 나빠지더라도 하나는 기억하려고 마음에 새기고 있다.      


‘버티면, 이것도 과정이 된다.’     


고통이 과정이 되면 사람을 성장시킨다. 니체가 말했다, “나를 해할 수 없는 고통은 나를 성장시킬 뿐이다.”라고. 이 말의 의미를 이제는 안다. 그 철학자도 몸이 많이 아팠던 사람이라 하루하루 고통에 살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자신이 성장 중이라는 말을 하다니. 위인은 역시 아무나 되는 건 아닌 모양이다. 어쨌든 나도 ‘성장통’이라고 생각하고 버티는 힘을 만들기로 했다.      


버티다 보니 즐거운 일도 가끔 생긴다. 원래 삶이란 행복하고 즐거운 일보다는 고민과 걱정과 힘든 일이 더 많은 법이지만. 그래도.     


그 달콤한 순간을 위해 또 살아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고통도 그리 고통스럽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것을 깨닫는데 걸린 시간이 이토록 오래 걸리다니. 하지만 아마 또 잊을 것이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 괴로우면 또 그만두고 싶어 지겠지만 그래도 한 번, ‘에이.. 일단 이 시간만이라도 견뎌서 떠나보내자.’하는 마음이 들었으면 좋겠다. 다시 아픈 날도 분명히 있겠지만 그래도 거기서 스스로 끝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것은 미래의 나에게 전하는 간절한 메시지이다. 혹시 또 삶을 정리하고 싶거든 차라리 여행이라도 가든지, 가만히라도 있던지, 악착같이 버텨서 과정으로 돌려버리라고. 힘들었던 시간이 과정이 되고 나면 그 뒤에는 또 내가 모르는 무엇이 있다고. 물론 그것이 더 큰 고통일지도 모르지만 아닐지도 모르니까.     


모든 건 지나 봐야 아는 거다.      


그게 계속되는 건 아니라고, 지나 보니 알겠다고, 이 깨달음을 다시 생각하면 좋겠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해도 문득 무기력하고 의미 없는 나의 자리를 매듭짓고 싶은 마음은 남는다. 그것이 궁지에 몰리면 하는 마지막 생각이라 그럴지도 모르고, 그것도 아니면 그냥, 인간의 회로는 결국 마지막을 향해 달리는 여정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생을 마감한다고 그 후생이 크게 변하는 것은 아니다. 내 생이 마감되는 것뿐이다.      


그러니 고통이 지나가길 기다리자. 그저 이건 힘들어 죽은 결말이 아니라 힘들었던 과거가, 과정이 되는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결말이 행복하면 다 행복하다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힘들 때 결말이 나버리면 나는 불행한 삶을 산 사람이 되는 거 아닌가.     


전에 읽었던 장강명의 [표백]이라는 책이 생각났다. 그 책은 아무것도 더할 수 없는 포기의 세대가 기성의 성장 세대에게 전하는 메시지이다. 이제는 모든 것이 나아지고 만들어지는 시대가 끝이 나서 할 일이 없는 포기의 세대에 도래했다. 하지만 포기를 하더라도 젊음들은 살아있고 그래서 포기하지 않았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모든 것이 완벽할 때, 아무도 죽음에 이유를 달지 못하는 때에 죽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는 스토리이다. 모든 여건이 완벽한 때라는 것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책을 읽었을 때 충격이면서 공감을 많이 했다. 마치 슬플 때 죽으면 슬퍼서 죽은 사람이지만 기쁠 때 죽으면 멋있게 생을 마감한 것으로 평가되는 기분.     


어쨌든 이 모든 이야기는 내가 아픈 것을 과정으로 바꾸기로 결심했다는 말이다.      


‘지금 말고 조금 더 행복할 때 죽자. 뭐, 아프다 죽을지도 모르지만 결과가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인 건 너무 쓸쓸하잖아.’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이 생각이 나를 살게 한다면 나는 기꺼이 그렇게 해야겠다. 사람들이 가져다 붙일, 아니 관심도 없긴 하겠지만, 자살이라는 이유만으로 남들이 상상을 할 나의 불행에 대해서 생각하기 싫었다. 게다가 나는 불행한 것도 아니었다.     


타인과 비교해서 내가 불행한가를 따지면, 글쎄.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이 다른데 타인과 비교를 할 수 있는 것인지부터 재고해 봐야 할 문제이다. 나중에 나의 아이도 크면 이런 엄마의 생각에 동조해주었으면 좋겠다. 행복은 각자의 것이고 결말을 불행하지 않게 하려면 그때는 그것을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위안이 된다는 사실도 알아주면 좋겠고.      


결국 나는 불행이 끝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아서 자살을 관두기로 했다. 아직도 죽고 싶다는 생각이 앞설 때도 있고 그것을 견디는 것이 힘들거나, 그 생각까지 가는 과정이 힘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조금 더 나아가 보기로 했다.      


그런 결정을 하고 제일 먼저 달라진 것은, 딸이, 너무 사랑스러워 보인다는 것이다. 짜증을 내도 귀엽기만 하다. 물론,     


이 또한 지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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