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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카 May 12. 2021

이사

가장 많이 죽음과 싸워야 했던 그 지옥 같던 집에서 떠나게 되었다. 아이도 자라서 5살이 되었다. 나는 그 집의 분위기가, 집 자체가 나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곳에 내가 묻혀 놓은 우울들이 계속해서 나를 잡고 놓아주지 않아서, 오로지 나의 문제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혹여 지금 그 집에 살고 계신 분은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거기가 생각보다 더 좋은 집인데 나랑 잘 안 맞았거나, 시기적으로 내가 안 좋았는데 마침 이사를 하게 된 것뿐이다.     


어쨌든 새로운 집으로 와서 좋았다. 어쩐지 들떴고 아이는 이제 유치원에 다닌다. 어린이 집을 갈 때까지는 내 시간이랄 것도, 치유하고 회복할 시간도 없었다. 잠깐 보내고 누우면 다시 올 시간이었으니까. 물론 내가 아파서 너무 자리에 오래 누워있었기도 하지만 그것이 나에게는 필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하면, 나는 시간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린이 집을 졸업하고 유치원 종일반에 들어가니 유치원에서는 아이를 더 길게 맡아주었고, 나는 차차 혼자의 시간이 길어졌다. 그렇게 누워서 혼자의 시간을 실컷 보내기 시작하고 조금씩 기력이 나려는 중에 이사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렇게 앞뒤가 맞아서 마치 이사를 해서 내가 우울들에게 벗어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용기까지 백배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억울하기까지 했다.     


‘왜 진작 이사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면 이사의 문제가 분명히 아니다. 근데 더러는 장소가 사람의 기분을 바꾸기도 하기 때문에 이사도 방법이라고 한다. 그 말을 들으니 그것도 맞는 말이다. 근데 왜 진작 나는 이사라는 걸 생각하지 못했을까? 비용의 문제보다 내 목숨이 더 귀한데 말이다.


나는 이 곳으로 이사를 와서 두 달간 신이 났다.      


‘와! 새집, 너무 행복하다.’      


새 것이 주는 특별함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특히 집이라는 장소 전환은 나에게 많이 특별한 의미였다. 전에는 남편한테 얹혀사는 거 같더니 여기 오니 진짜 내 집인 기분도 들었다.


그 기쁨이 딱 두 달이었다. 나는 뇌의 조종에 따라 다시 우울로 돌아가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때처럼 당하지는 않으리라는 나의 의지가 확고했다. 과정으로 만들어버리겠다고 이를 바드득 갈면서 궁리하기 시작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게 뭐였을까를.     


책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소설을 읽는 걸 좋아했다. 게다가 마침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도서관도 생겼다. 책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냥 서점에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혼자 조용히 책을 읽으면 더 좋았다. 자꾸만 어둠이 나를 불러들이는 이 시기, 우울의 호르몬들이 요동을 치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약간의 방법을 얻은 것 같다.      


처음에는 죽어라 혼자서 책을 쌓아놓고 읽었다. 읽다 보니 재밌고, 재밌어서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어 지는 것이 순서처럼 나에게 찾아왔다. 하지만 남편은 집에 잘 없는 데다가 취향이 달랐다. 그렇다고 5살 딸에게 그것을 말하고 있자니, 이해도 못할뿐더러 의견을 들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독서모임을 찾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같이 떠들면 재밌을 거 같아서. 하지만 신축 아파트에는 아직 독서모임이 없었다. 가장 먼저 생긴 것은 족구 모임이었다.      


'이렇게 행동하는 사람도 있구나.'     


독서모임은 없었지만 빠르게 생기는 족구 모임과 야구모임을 보면서 행동하는 사람들에 대해 새삼 깨닫게 되었다. 나는 행동을 하는 사람도, 실행력이 강한 사람도, 결단력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으나 독서모임에 대한 갈망이 매우 깊어지고 있어서 그런 것들이 더 눈에 띄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더 심한 우울이 나에게 다가오려는 위기감을 느꼈기에 계획에 골몰했다.  

   

[평일 오전 독서모임 하실 분?]     


이 글을 아파트 카페 게시판에 올리는데 꽤나 오래 생각했다. 하지만 우려했던 것보다 호응이 많았다. ‘오전에 시간이 되는 엄마들이 과연 쉬지 않고 책을 읽고 모이려고 할까? 그냥 책을 좋아하는 사람도 적을 텐데 거기에 직장인들은 다 빠지고 엄마들이?’라는 부정적인 생각도 심했지만 그 생각을 깨부수려는 듯 댓글이 달렸다. 이사를 하고 좋은 점은 먼저 만들어져 있는 모임에 들어가기보다는 주체적으로 내가 만들 수 있는 모임이 많다는 것이다. 물론 시작이니 소란스럽기도 하겠지만 그것도 다 과정이니까.     


독서모임은 2018년 11월, 그렇게 시작했다. 각자의 책을 읽고 각자의 책을 소개하는 시간. 커피도 각자. 너무나 개인적이고 너무나 함께인 시간.     


이 모임에서 우리가 얼마나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싶겠지만 우리는 결석이 많아서 단둘이 모이게 될 때도 두 시간 넘게 이야기를 한다. 책을 수단으로 하는 독서모임은 철학과 인문학, 삶의 모습을 나누게 되었다. 책을 읽다 보면 생각이 생기고 생각을 나누다 보면 깊어진다. 나누면서 책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면 서로 빌려 주거나 빌리며 책을 본다. 이 모임을 시작하면서 나는 우울에 빠진 생각 회로를 건져냈다. 늪에서 건지듯 서서히 그렇게. 


나 혼자의 힘도 아니었다. 모임에, 나의 시냅스를 건지려고 자신들도 모르게 거든 8명의 사람들이 있었다. 혼자서 늪에서 나오려고 할 때는 더욱 빠져들더니 8명이 줄을 당겨주니까, 나까지 9명이서 하니까 1년 넘게 약으로 버티던 늪에서 오히려 더 빠르게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 모임은 이제 1년을 넘어섰다.


갇힌 생각을 밖으로 꺼내 주고 다각도로 볼 수 있어서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모임 덕분에 책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책을 읽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 지금도 이 모임을 만든 것은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한다. 다른 모임원도 그런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게 강요로 되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아서 일단 대답을 기다려 본다. 

모임의 장이라고 하지만 나만의 것이 아니라 그저 주선자 일뿐이었다. 이 책을 읽는 한걸음이 살아가려는 한 걸음이 되었고, 모임을 통해서 남의 편도 아니고 원수에 가깝던 신랑도 조금은 이해가 되고, 버겁던 아이에게도 여유로워졌다. 


책을 혼자 읽는데서 멈추면 생각이 거기서 멈출 텐데 이 모임은 거기서 더 위로 쌓을 수 있는 무언가가 되어서 놓치지 않는 중이다. 앞으로도 되도록 꾸준히 해나가고 싶다.     


나에게 신랑에 대한 이해를 위해 설명을 해주고 노력해준 분들도 이 모임의 분들이다. 의도하지 않았을 때도 자신들의 책에서 관점을 꺼내어 보여주면 나는 새삼 남편을 다르게 보게 되었다.


덩달아 이사하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곳에 와서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만났으니 오지 않았다면 그곳에서 얼마나 더 우울들을 끌어안고 생활했을지 모르겠다. 물론 그곳에도 좋은 친구들이 있었지만 내 취향대로, 책을 읽고 토론을 하지는 않았다. 거기서도 그런 모임이 가능했다면 더 일찍 나아졌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모임뿐 아니라 이 집이 마음에 드는 이유는 창문 너머 있는 산에, 펜션처럼 나무들이 울창하게 보인다는 점이다. 마음이 안정되고 사철의 변화를 볼 수 있어서 항상 힐링되는 집이다. 물론 익숙해지면 힐링보다는 무심하게 지나가는 일상이 되겠지만 아직까지는 이 풍경이 참 좋다. 조상들의 풍수지리가 괜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한 가지 미안한 것은 이사하기 전, 그 집에 살고 있을 누군가이다. 비록 나는 그 집과 공생하지 못했지만 그분은 조금 더 힘 있게 그 집과 밝은 기운을 만들기를 바란다.      


그 집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시기적으로 내가 힘들 때 있어서 인지 나는 이사한 집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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