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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카 May 13. 2021

나만의 템포

사람들은 빠르게 무엇을 이루기를 원한다. 그리고 성공한 사람들의 노력보다는 성공 자체에 관심을 갖는다. 물론 성공한 사람은 운도 좋았겠지만, 운도 실력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게다가 운이 따르려면 그만큼 열심히 노력해야 기회를 잡을 수 있다고 모두들 강조한다. 나는 이 모든 것이 한국인의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남아메리카로 가면 일당을 벌어서 하루를 즐기는 민족도 있고, 미래를 대비하지 않으며 사는 세계인은 얼마든지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미래를 지나치게 불안해하고 준비를 한다. 이러한 성공 위주의 삶이 빠르게 기반을 다지고 쌓아 올리는 데에만 집중하게 만드는 것이다. 물론 나도 이러한 굴레에 젖어 있기는 하다. 그래서 요즘은 내려놓으려고 많이 애쓰는 중이다.      


내가 이런 성공에 대해 처음 충격을 받았던 것은 중학교 때, 가수 보아가 일본에서 크게 성공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였다. 아니, 고1이었나? 나는 성공이라는 걸 해보겠다고 공부하고 있을 때, 나보다 한 살이나 어린 보아는 타국에 가서 일등하고 온 나라가 떠들썩하게 만들다니! 그 상대적인 패배감이나 좌절이란. 분야조차 다른데도 그렇게 질투심과 시기심이 온몸을 휩쓸었다. 물론 대단하다고 생각하며 같은 나라 사람으로서 뿌듯해하기도 했다. 어쨌든 나는 성공한 보아가 부러웠다. 내가 그보다 예쁘거나 춤을 잘 추거나 노래를 잘하는 것도 아니면서, 분야가 다른 길에 서서 보아의 성공을 막연하게 부러워했다.  

   

돈이 많고 싶어서였을까, 아니면 부모님께 자랑스럽고 싶어서였을까? 이유야 어쨌든 보아만큼은 아니어도 뭐라도 되고 싶은 마음이었다. 성공해서 떵떵거리며 자랑을 하고 싶었던 마음이 당시에는 가장 컸다. 물론 지금도 그 마음을 버린 것은 아니지만.     


나는 내 자리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을 택했다. 가수처럼 화려하지는 못해도 성공 비슷한 것이라도 하기 위해서.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게 되지 못함을 인정하기까지 너무 오래 걸린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사람 중 하나가 나라는 것을 아는 데도 오래 걸렸다.


머리로는 알아도 마음은 쉽게 납득하지 않는 삶이 길게 이어졌다. 내 높은 이상을 따라 숨 가쁘게 달렸다. 그렇게 가다가는 큰일이 날 걸 알면서도 지금 당장 살아있으니 되었다고 여기며 살았다.

      

‘뭐라도 되어야 하는데.’     


그런 조급함 들이 있었던 것이다. 최근 텔레비전에서 그런 말을 보았다. 이효리가 한 어린이에게 ‘뭐가 안 되어도 괜찮아.’라고 아주 확고하게 말하는 것이다. 그 말이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그래, 남들이 우러러보는, 내 이상에 맞는 무언가가 되지 않으면 어떠한가.’     


하지만 아프기 시작하면서 보통도 안 된다는 자괴감은 점점 더 심해졌다. 이상만큼은 아니어도 보통의 삶은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죄책감.      


설거지도 못하는 엄마, 빨래도 못하고, 남들처럼 정리도, 집 꾸미기도 못하는 나라는 걸,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학생 때나 직장 때는 못한다는 소리는 안 듣고 살았는데 이제는 해야 하는 보통의 일들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책을 하다 보니 우울증이 더 깊어지기도 했다. 생각해보면 공부랑 일만 알던 내가 생활을 할 줄 모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못하고, 내려놓음이 안 된 탓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아프면서, 아무것도 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으니 사람은 각자의 분야에서 각자의 템포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알고 보니 나는 살림, 육아는 잘 못해도 공부하는 걸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다. 특히 독서는 어디 가서 취미라고 하는 것 이상으로 많이 읽는 사람이다. 물론 더 잘하는 누군가랑 비교하면 할 말은 없지만 나만 두고 봤을 때 내가 잘하는 일들은 그런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못하는 일은 더 잘하려고 욕심 내지 않기로 했다.     


‘나는 살림을 잘 못한다. 할 수 있는 정도만 하자.’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좀 편해졌다. 그냥, 내가 불편하지 않게, 할 수 있는 만큼만. 그것이 나의 템포였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 우울증 극복에 도움이 된다는 말을 새기며 해나가기 시작했다.     

책을 읽는 것도 그중에 하나였고, 공부를 하는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이러한 긍정적인 생각과 행동은 아이와의 삶에도 활력이 되었다. 아이와 같이 나란히 앉아 공부하는 시간이 생긴 것이다. 공부하는 엄마 옆에서 숫자를 따라 쓰는 아이가 귀여워서 멍하니 바라보기도 하고.     


‘집이 좀 더러우면 어때, 우리는 이렇게 즐거운데.’     


딸이 숫자를 잘 썼다며 뿌듯해하는 모습을 격려하며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그렇다고 남의 아이와 비교해서 아이가 특별하게 어쩌고, 그런 건 잘 모르겠다. 오히려 많이 느리지 않을까 싶다. 선행을 시키는 것도 아니고 그냥 좋아하니까 하게 내버려 두는 정도라서.     


아직도 겨우 이름만 쓰는 아이지만 그게 기특해서 같이 공부하며 떠든다. 내가 한 장을 하면 전혀 다른 공부인데도 두 장을 해서 엄마를 이겨야 하는 딸이 너무 재밌다. 그래, 살림은 그냥 그렇게 하는 것이 내 리듬이다. 청소는 적당히 더러울 때 하고, 정리를 잘 못하고 설거지도 싫어하지만.      


딸과 앉아서 수다를 떨고 생각하고 책을 읽는 것이 나의 리듬인 것이다.      


누군가는 책을 읽는 것을 싫어하는 대신 요리가 좋아서 매일 요리를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것과 템포가 다르다. 모든 걸 완벽하게 할 수가 없다. 완벽한 엄마 밑에서는 훌륭한 아이가 나오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나는 거기에 중점을 두고 생활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는 한다는 느낌이 서서히 없어졌다. 좀 못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했다.     


‘난 역시 공부가 적성이야.’


그렇게 생각하며 높은 이상을 가진 나에게 말한다.      


‘너무 기준이 높은 거 아냐? 그렇게 완벽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아. 그리고 옆집 엄마랑 너는 다른 사람이다. 그러니 저 집, 그 집, 건넛집 엄마의 모든 장점을 네가 다 할 필요는 없어. 그 집 엄마들도 나보다 못하는 것도 있을 거고. 아니, 그건 서로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야. 삶의 모양은 다 다르니까.’     


그렇게 스스로를 설득하는 일도 꽤 좋다. 게다가 나에게 맞는 템포를 알아가기 시작하니 생활이 훨씬 즐거웠다. 더 나아졌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없는 일은 과감히 부탁을 할 수 있는 용기도 생겼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도 했다.     


‘남들은 몰라도 나는 이 정도로 힘들어.’     


라는 당당한 마음이 생긴 것이다. 물론 내가 힘든 것이 모두 전해지지는 않겠지만 그렇게 하니까 삶이 조금 더 기름 뿌린 톱니바퀴가 되어 전체적으로 조율이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욕망하고 서로를 비교한다. 하지만 각자에게는 각자의 템포가 있다. 뱁새가 황새 쫓아가면 가랑이 찢어진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니다. 그중에 나는 뱁새도 아니고, 미운 오리 새끼일지도 모른다. 백조가 오리인냥 살려고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도 편하고 즐거워졌다.      

그냥 모르는 건 모른다고 내가 좋아하는 건 좋아한다고 그렇게 말하면서 나아가니까 내 템포를 찾아가고 있다. 발걸음은 느리게 안단테, 흥얼거리며 주변을 둘러본다. 예쁜 것들이 많다. 꽃도 피었다. 캄캄했던 어둠이 걷히는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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