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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카 May 14. 2021

책을 읽는다는 것

우울증 이후 많은 것을 버리게 되었다. 인간관계도 버리고 내 능력을 발휘할 수 없었으며 집안일을 손에서 놓아버렸다. 그렇다고 당장 직장을 나갈 수도 없었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유지하자고 생각은 하면서도 막상 상황이 닥치면 힘들었다. 조금만 건들어도 와장창 부서질 것 같은 유리심장을 가지고 있어서 사람들과 말을 섞기가 어려웠다. 이런 내 심장과 뇌를 고치기 위해 그렇게 약을 먹으며 하루하루 치유하는 과정 가운데, 좋아하는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생각했다.      


“책 읽고 수다 떨 사람이 필요해.”    

 

이것은 나에게 가히 혁명적인 생각이었다. 그런데 무언가 하고 싶은 생각이 든 것이 오랜만이어서 그런지 나는 일사천리로 독서 모임을 만들었다. 마치 유리 심장이 다 고쳐지기라도 한 것처럼. 변덕이 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분명 그때의 나는 독서모임이 간절했다. 그래서 만든 것이 아파트 내 독서모임이었다. 무작정 게시판에 독서모임을 하려는데 원하시는 분은 연락을 달라고 글을 올렸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렇게 7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대부분 주부일 거라는 나의 편견도 깨고 다양한 직군과 역할의 사람들이 모였다. 모르는 사람 7명을 모아 두고 나는 대책도 없이 모임을 진행했다. 내가 타 독서모임에서 불편했던 점은 빼고 좋아하는 방식만 끌어왔다. 한 권의 책을 다 같이 보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책을 읽고 감상을 발표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나는 책을 고르는 취향이 확고하기 때문에 읽기 싫은 책이 억지로 읽히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책에 질려가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나는 각자 좋아하는 책은 무엇이든 된다는 방식을 도입했다. 의외로 사람들의 반응도 괜찮았고 책 읽는 습관도 잡혀가는 거 같아서 기뻤다. 물론 문제점을 지적하려면 꼬투리야 잡히겠지만 우리는 일 년이 넘게 이 방식을 고수해오고 있다. 그래서 나는 그때의 내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처음에 모일 때는 정말 많이 긴장했다. 아는 사람도 못 만나고 있는데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서 어떤 말을 듣고 나누고 관계를 해야 할지 막막했다. 아무리 책이 매개인 모임이라고는 해도 내가 또 상처 받지 않을까, 혹은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한 편으로는 어떤 사람인지 모르니까 용기가 생기기도 했다.      


‘될 대로 돼라.’     


게다가 지금은 아파서 힘들지만 이전에 건강하던 나에게는 하나의 지론이 있었다. 세상에 완벽히 나쁜 사람은 없다는 것. 그래서 용기를 냈다. ‘일단 해보고, 아님 말고.’ 이런 생각은 무언가를 시작할 때 무척 중요한 작용을 한다. 시작을 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일단 해보는 것과 이것저것 재보고 안 하는 것의 차이 말이다. 보통은 재기 시작하면 안 하기 마련이다. 지르지 않으면 수습도 할 수 없다. 인생은 어쩌면 저지른 일을 수습하면서 사는 것 아닐까. 안정된 상태에서 무언가 하려고 하면 영원히 못한다. ‘그리고 아무것도 안 하면 재미도 없겠지.’ 그런 생각을 했다. 안정된 것에 대한 갈망이 아무것도 못하게 하는 것이라고. 지르면 어떻게든 굴러가는 거라고. 물론 버거우면 좀 안주하고 싶기는 하지만.     


아프면서 배운 것은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또한 책에서 배운 것 중에 하나이다. 많은 심리학과 철학 책에는 같은 내용의 기술이 많이 되어있다. 일단 움직이라고. 자꾸만 무언가 시도를 한다는 것, 그것만으로 의미를 갖는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댄스 모임도 참가했었다. 물론 한 번 나가고 몸치임을 인정하며, 춤은 아닌 걸로 결론지었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해보지 않았다면 언제나 하고 싶다고 열망하다 끝나는 것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해본 것이 더 나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제 많이 달라졌다.      


‘해 보고 싶으면 해보고 아니면 말자. 잘할 필요도 완벽할 필요도, 그럴 수도 없다.’    

 

이런 생각이 자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생각은 꽤나 많은 것을 도전하게 만든다. 가끔은 무리하게 일정을 잡아서, 나의 한계도 깨닫게 된다. 그런 과정들을 즐기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시작을 하면 끝장을 봐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완벽하지 않아도, 끝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인정하고 나니 시작하는 용기가 생겼다. 시작한다는 즐거움이 함께 했다. 하다가 그만두면 어떤가. 물론 시작하면 끝까지 하는 것도 좋겠지만 아니면 그만두는 것도 용기이다. 그러니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당장 무엇이라도 시작하시길.    


아프면서 깨달은 건 시작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


남에게 조언도 구할 수 있겠지만,     

일단은 시작하고 생각하자.     


문제가 있거나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으면 책을 읽는 편이다. 책을 읽다 보면 잠시 현실에서 멀어져서 숨구멍이 하나 생긴다. 그런 점들이 좋아서 책을 읽는다.


책은 주로 심리학, 철학, 인문학, 소설, 에세이 등이다. 심리학은 순전히 우울증이 왜 오는지 알고 싶어서 시작한 분야였다. 원래 자신의 일에 사람은 가장 관심이 있기 마련이다. 내 마음에 내가 관심을 가지고 돌보려는 노력이 나는 책으로 시작된다.


보통 궁금한 게 있으면 책을 읽는다. 책에는 여러 가지 정보가 들어있다. 특히나 활자를 만들어내기까지 사람의 생각과 마음이 들어있으므로 정보든 뭐든 책을 보는 편을 좋아한다. 요즘은 이북이나 전자책이 많이 나오기는 하지만 나는 손에 드는 종이책을 선호한다. 그 느낌과 한 장 한 장 넘기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얼마나 읽었는지 가늠할 수 있고, 이제 얼마 있으면 이 책의 마지막 장이 되는지 짐작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시작과 끝을 안다는 것만큼 매력적인 일이 없다.


인간사는 시작과 끝을 단정하기 어려우니까. 삶과 죽음도 우리는 예측할 수 없다. 그렇지만 책은 그렇지 않다. 정확한 시작과 정확한 끝. 나는 책의 매력이란 그런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다시 볼 수 있다는 점도 높게 산다.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은 휘발되는 생각과는 또 다르다. 변형되지도 않는다. 그러면서 읽을 때마다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 놀라운 것이 책이다.


나는 책을 무척 좋아한다. 시작이랄 것은 없지만 그래서 처음 받은 책 선물에는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가 있었고 제제와 사랑에 빠지면서 책에 빠져버렸다. 그 후로는 밤낮없이 책은 나에게 즐거운 놀잇감이었다.


지금도 힘들고 지쳐서 관계적인 소통을 할 수 없으면 책을 읽는다. 물론 중간중간 틈 나는 대로 읽기도 한다. 책은 핸드폰처럼 늘 주위에 늘어져 있다. 예전에는 한 권을 읽고 다음 권을 읽는 독서를 했지만 요즘은 독서방식이 조금 달라졌다.


방에서 읽는 책, 들고 다니면서 읽는 책, 화장실에서 읽는 책이 모두 다르다. 그러다 보니 한꺼번에 여러 권을 시작해서 여러 권이 끝난다. 방식이 달라졌을 뿐, 책에 집중도가 떨어지거나 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집중을 떨어트리는 것은 속독에 있었는데 이도 요즘은 조금 더 곱씹으려는 노력을 하는 중이다.


어쨌든 책은 매력적이다. 심리학에는 사람들의 심리가 들어있다. 나 말고도 사람의 마음을 궁금해하고 연구하고 기록을 한 사람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이 마음에 위안이 된다. 요즘 심리학에서는 불안이나 우울보다는 뇌과학과 연관된 분야를 더 많이 본다. 그리고 예민함에 대한 이야기도. 센서티브, 라는 이름의 심리학이 나를 잘 설명하는 것 같고 공감받는 기분이다.


그리고 인문학은 좀 다양한 종류의 책을 읽어서 지식의 폭을 넓히려고 시작했다가 너무 재밌어서 여러 권 보게 되었다. 그렇게 인문학을 읽다 보니 자연스럽게 철학으로 넘어간다. 철학도 역시 너무 재미있다. 한 동안은 니체를 열심히 읽다가 이제는 공자로 넘어왔다. 어려울 것만 같은 책들도 쉬운 저서부터 읽기 시작하면 큰 틀을 가지고 반복해서 읽는 것이라 어렵지 않다. 나는 모르는 분야는 초등 저서나 어린이들 수준의 도서부터 읽는다. 그 분야에 정보가 무지하기 때문이다. 괜히 어려운 책부터 읽으면 책에서 손을 놓기가 쉽고 그 분야에 대한 관심도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읽다 보면 하루에 열 권씩 읽어도 세상의 책을 다 못 읽을 것 같은 기분에 압도될 때가 있다. 그런 기분조차도 즐긴다. 아직도 나는 읽어야 할, 알아야 할 것들이 많다는 것은 살아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처럼 책은 나에게 현실 도피의 공간을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또 다른 연장선을 만들어주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판타지나 소설, 장르불문으로 책을 보려고 계속 노력 중이다. 여러 가지를 읽어봐야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것을 알게 될 테니 말이다. 책이라고 다 같은 책이 아니다. 책은 전부 다르다. 같은 소설이라도 연애소설, 추리소설, 성장소설 등등 전부 다르다. 그리고 일본, 한국, 중국의 소설 또한 분위기가 다르다. 이러다 보니 무엇을 읽어도 늘 새롭다. 같은 책을 다시 읽어도 새롭지만 나는 되도록 안 읽어본 책을 보려고 한다. 대강의 스토리를 아는 책은 안 보는 편이다. 세상은 넓고 책은 많고, 아직 읽을 것이 많다.


선조는 양질의 책을 여러 번 읽기를 강조하기도 한다. 그것도 옳은 이야기지만 독서 스타일이 다른 일일뿐더러 양질의 책을 고르려면 결국 다독을 해봐야 고를 수 있는 눈이 생긴다.


우울증일 때 책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친구였다. 세상 사람들과 관계가 힘들어지고 말을 할 기운도 일어나서 치장할 기운도 나갈 기운도 없을 때 그저 옆에 있는 책을 든다. 그리고 읽는다. 이 행위를 반복한다. 인터넷으로 책을 주문한다. 그러다가 기운이 좀 나면 도서관에 간다.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읽고 다시 반납하는 과정에서 움직임이 생긴다. 그것은 우울증이 나에게는 큰 변화였다. 자리에만 누워있지 않는다는 것, 움직인다는 것, 눈동자와 손가락을 쓴다는 것.


잠이 필요할 때는 잠을 자는 것이 맞지만, 우울증이 아니라도 무료하고 특별한 일이 없을 때 티비보다는 책을 권하고 싶다. 책 속에는 문자가 주는 매력이 있다.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부호라니 얼마나 놀라운가.


말은 옮겨가는 과정에 변하지만 책은 그렇지 않다. 몇 백 년 전 사람과 소통할 수 있다. 그가 하는 말을, 목소리나 행동이 언어로 듣지는 못해도 글자로 다름없이 전달받을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생각하는 것이 소통이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책을 읽는 행위 자체가 나의 우울함 감소에 도움을 주었다. 물론, 아주 어두운 책을 읽게 되면 거기에 쉽게 몰입되어서 더 힘들어졌지만 그럴 때는 그 책을 놔버리면 그만이다. 동시에 놓는 연습을 하게 된다. 사람에게 끌려다니며 아파하던 내가 적당히 놓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책은 사람이 아니다. 내가 놓는다고 나에게 욕을 하거나 서운해하지 않는다. 그러니 마음껏 연습을 해볼 수 있다.


좋아하는 책만 읽어서 편식이 될 거 같지만 그렇지 않다. 같은 분류에서도 얻을 수 있는 지식은 다양하다. 그러므로 편식한다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좋아하는 분야의 책을 읽는 것이다. 그뿐이다. 머리를 식힐 수 있다면 무슨 책이라도 괜찮다.


우울증이 심할 때는 문자에 집중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만화책이라도 좋고 동화나 그림책도 좋다. 어느 책이든 생각할 것이 있다. 즐기고 버리고 나누는 것은 순전히 내 몫이다. 책은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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