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다시 아픈 나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떠올리게 된다. 특히 내가 취약한 날들. 날씨가 흐리다는 것 따위에 영향을 받아서 무기력해지려는 순간. 그 느낌을 알고 있다. 그것을 설명하자면, 갑자기 모든 것이 즐겁지 않아 지면서 누워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다.
잠을 자는 것도 아니고 누워서 시간을 흐르게 두는 시간.
그런 시간이 오면 자연스럽게, 왔구나, 하고 알게 된다. 한마디로 완치라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한 순간이기는 하다. 물론 그렇다고 아주 심각한 상태가 되는 건 아니지만. 여전히 약을 먹으며 살아가려고 애쓰는 중에 한 번씩 무너진다. 멀쩡한 사람도 희로애락이 있는데 나는 그 기복을 조금 더 심하게 겪는 중이다.
그 시간을 잘 보내고 싶은데 어떻게 보내야 할지 아직도 모르겠다. 어떨 때는 운동을, 어떤 때는 단 것을, 어떤 때는 책을 보는데, 효과가 있을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그렇기에 덜컥 이대로 다시 그때처럼 긴 터널을 지나야 하는 것은 아닌가 두려워진다. 모르는 사람은 모르기 때문에 두려워할 일이 없겠지만 나는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무서운 것이다. 게다가 그렇게 무기력할 때의 나를 나도 싫어하는데 남들은 그런 내 모습이 얼마나 한심할까 생각하면 마음이 더욱 무거워 자리에서 일어나기가 더 힘들다. 그런 생각이 들 때 일어나서 움직이는 것은 평소에 다섯 배 이상의 에너지가 든다. 생각하지 않으려고 내 안에 두 생각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전환시키는데 시간을 쏟는다.
“그래, 일단 집 밖으로만 나가자.”
가끔은 그렇게 옷을 주섬주섬 모자를 눌러쓰고 나간다. 우울증에 좋다는 산책을 하려고 세수도 안 하고 옷도 대충 입은 채, 누가 알아보면 어쩌나 하는 창피함을 무릎 쓰고 그냥 밖으로 나간다. 그렇게 산책을 하고 다시 집 앞으로 돌아오면 조금은 달라져있다. 그것이 아주 조금일지라도. 그러고 나면, 역시 긍정의 내가 이기는 때가 90프로이다. 씻고 나와서 괜히 이것저것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나를 무겁게 하는 짐이 줄어 있다. 그래서 나는 힘들면 일단 밖으로 나가려고 애를 쓴다. 물론 이마저도 안 되는 날도 있다.
아마 앞으로도 그런 감정들 사이에서 두려움에 떨 것이다. 아니 지금도 무섭다. 다시 아파서 약을 잔뜩 먹고 죽을 생각과 유서를 쓰던 때의 그 지독한 감정과 기분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무섭다. 내가 손목을 긋던 감각을 알고 있어서 두렵다.
원래 아는 맛이 참기 힘들다고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이 말한다. 마찬가지로 아예 모르는 건 참을 수 있다. 아니 참을 필요도 없다. 하지만 자살 사고도 비슷하다. 알기 때문에 자꾸만 그 길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참기가 너무 힘이 든다. 그게 뭐 좋은 거라고 하고 싶냐고 말하겠지만, 그 우울한 감정으로 가는 길이 트여서 그런 것이다. 뇌에서 ‘아, 이럴 때는 그 기분이지.’ 하고 그냥 길을 따라간다. 그 감정의 길을 막는데 나에게는 막대한 에너지가 들어간다. 자연스레 흐르는 것을 가고 싶지 않다는 또 다른 이성이 뜯어말리는 에너지 소모는 어마어마하다. 그 순간의 나는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땀을 삐질거리거나 책을 뒤적거리며 안절부절못하거나, 심하면 울면서 침대보를 뜯는 행위를 하는데, 이건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모르는 감정이다. 그 멈춰 있는 순간의 치열함 말이다.
모두 정지하고 있는 순간에 소모하는 에너지에 대해 타인은 알지 못한다. 살려고 발버둥 친다는 것을, 옆에서 봐도 모를 테지만 스스로 엄청난 사투를 벌이고 있다. 나를 말리를 나와, 통제되지 않고 우울에 빠지려는 나의 싸움. 우울로 돌아가기 싫어서 발버둥 치는 나.
여전히 돌아가기 싫다. 누군들 그렇게 미운 나로 돌아가고 싶겠는가. 자신이 밉고 싫어서 없애고 싶을 정도의 상태가 되는 괴로움을, 누군들 겪고 싶겠는가. 이미 쉽게 그쪽으로 지름길이 나버린 병증의 사람들도 실은 너무나 살고 싶은 것이다. 아니, 최소한 나는 지금 너무 살고 싶다. 그때 왜 그렇게 죽고 싶었는지 모를 만큼 삶에 애착이 생겼다. 하지만 이러다가도 문득 지치면, 다 싫으니 이만 생이 끝났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이런 일이, 나아졌다고 말하는 나에게 여전히 벌어지고 있으니 딱히 나은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래도 그때보다는 지금이 낫다. 힘든 때를 생각하며 지금 덜 힘든 시기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니까 내가 나았다고 해서 괜찮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 머리는 때때로 그 시기로 돌아가려 하고,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으니까. 암이 다 나았다고 해서 다시 아프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재발이라는 단어는 그래서 존재하니까. 우울증도 재발을 한다. 단지 그러지 않기 위해 나도 노력하고 있다고. 그걸 알아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