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에서의 외출

by 루카

아프고 나서 제일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스마트 폰과 독서였다. 아무래도 기질이 뭔가 읽는 걸 좋아해서도 있겠지만 스마트 폰은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을 수 있고 정보가 많아서 좋았다. 물론 휘발이 심하기는 해도.


“엄마는 핸드폰보다 내가 좋지?”


딸이 책 다음에는 핸드폰과 자신을 비교할 정도로 나는 핸드폰에 중독이 되어있었다. 최소한 그 안에서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었고 내가 아닌 내 모습으로 살 수도 있어서 좋았다. 나는 아플수록 폰에 빠져들었다. 이것은 아픈 사람들이 모두 핸드폰에 빠진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아파서 선택한 일이었다는 것을 강조한다.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알코올 중독에 많이 빠지지 나처럼 책과 스마트 폰으로 빠지는 경우는 드물다. 아니, 드물지는 않지만 나의 개인적인 일임을 다시 강조한다.


어쨌든 나는 그만큼 오래 스마트 폰이 없으면 불안할 정도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네모난 작은 상자가 뭐라고. 하지만 위안이 된 것은 확실하다. 거기서 좋은 사람들과 친구가 되기도 하고, 배신이 난무해도 온라인의 배신은 현실보다는 상처가 크지 않았으니 말이다.


휴대하기도 놓기도 좋았다. 내가 싫으면 피할 수 있었고 차단할 수 있었다. 손가락으로 행할 수 있는 내 뜻대로의 일들이 좋았는지도 모른다. 이처럼 좋은 효과도 많이 가져다주었지만 스마트 폰이 나에게 행한 나쁜 점을 꼽자면 역시 난독증이다.


책을 좋아하는 나인데 장편의 글을 읽는데 대한 인내심이 사라져서 당황한 적이 꽤 있다. 그래서 일부러 책을 더 많이 읽고 폰을 놓은 적도 있을 정도로 심각하게 긴 글에 대한 부담감이 찾아오는 것이다. 그 작은 네모 상자에 글자가 그렇게 많았는데도 책으로 보는 것과는 달랐다.


그래서 과감하게 핸드폰으로부터의 외출을 결심할 때도 있다.


그 안에서 살다 보면 재미는 있어도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기는 어려워질 것 같은 두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눈도 나빠진다. 라식을 한지 얼마 되지 않은 눈이 다시 나빠진다는 것도 끔찍한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한번씩 핸드폰을 놓고 바깥을 보려고 애썼다. 그게 아니면 책을 다시 읽는다든지.


물론 요즘 모든 것이 기계화된 사회이고 폰이 없으면 일을 하기도 어렵지만 가끔은 폰을 놓는 것도 중요하다.

폰이고 책이고 현실 도피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가지고 있는 콘텐츠가 다르니 둘 다 접해보는 것을 권하고 싶다. 그리고 요즘 친구들이 난독증이 많은 것도 스마트 폰 때문이라는 결과가 있다. 나는 이것을 직접 체험한 당사자로서 역시 스마트 폰보다는 책을 읽는 것을 권장한다.


그렇다고 폰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필요한 부분이 많다. 현대를 살아가면서 폰 없이 산다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리고 막간의 즐거움을 준다는 점에서 상당한 장점을 가지도 있다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너무 심하게 핸드폰을 한다는 기분이 들면 잠시 빠져나오기를 권한다. 우울증을 빌미로 둘 다 해본 나는, 둘 다 좋기는 하다. 하지만 그때 그때 내가 원하는 것이 다르다.


커다란 세계에 다른 세상을 느끼고 싶으면 책을 보고, 잠시 지구촌을 느끼고 싶으면 폰을 본다. 물론 폰에도 e북이 발달해서 책을 읽을 수는 있지만 그 맛은 전혀 다르다. 둘 다 경험하고 영위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다.


내가 스마트 폰에서 잠시 외출하려고 했던 것은 내 시력과 난독으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함이지 다른 이유는 없다. 우울증에는 글을 못 읽게 되는 증상도 있는데, 그렇다면 오히려 스마트 폰이 그 치유의 시작으로 도움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여전히 나는 폰을 하는 시간도 길다.


“엄마는 스마트 폰보다 나를 더 사랑하지?”


딸이 이렇게 말하는 순간이 내가 폰에서 나와 외출을 할 시간이라는 신호이다.


“그럼, 스마트 폰은 없어도 우리 딸 없으면 안 돼.”


내 대답에 만족한 듯 웃는 아이의 미소가 예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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