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글을 쓰고자 했을 때 나는 너무 할 이야기가 많았다. 그렇게 책 한 권 분량의 이야기를 쏟아내고 나니 손톱만큼은 보는 시야가 틀어졌다. 쓰는 동안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쓰던 이야기를 다시 읽어보니 데스노트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데스노트란 만화에 나오는 상상의 노트인데 거기에 이름을 적으면 사람이 죽는다는 설정의 노트이다. 그런데 내가 쓴 글이 처음 시작한 의도와 달리 원망과 한의 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데 이 글이 세상으로 나오면 공감을 형성하기보다는 독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독이 되든 영양이 되든 그것은 읽는 사람의 판단이 가장 크겠지만 내가 봐도 독인 걸 내놓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큰 결심을 하고 그 이야기를 접었다.
다듬기만 하면 되는 이야기가 아깝기도 하도 내 구구절절한 솔직한 심정을 언제 또 쓸 수 있을까 싶어서 아쉬웠지만 지금도 이렇게 쓰고 있으니 그걸로 되었다. 그리고 그 글을 쓰면서 생각했던 것들도 지금은 훨씬 생각이 바뀌었다. 부끄럽지만 그 책에는 나만 힘들어, 나 힘들다고! 이런 외침이 있었다. 물론 지금도 나는 힘들다. 그런데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런 것이다. 조금 더 주변을 돌아보게 되었달까.
아플 때는 사실 주변이 잘 보이지 않는다. 나는 우울증 환자이고 내가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 있는데 주변의 기분까지 생각할 수는 없었다. 그냥 모두 내가 필요 없고 미워 죽겠을 거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을 뿐이었다. 우울증에는 주기도 있다. 그래 봤자 조금 더 우울하다가 조금 덜 우울하다가 정도일 것 같다. 기쁜 날은 그다지 없는데 요즘은 그래도 그 기쁜 날이 조금 많아져서 생각이 조금씩, 보는 각도가 틀어지는 것이다.
한 권 분량의 글을 한 번 썼는데 그걸 모두 엎고 다시 쓰기란 쉽지 않았다. 지금도 무척 어렵다. 이미 생각의 틀을 만들어 놨는데 새로 다시, 한다는 건 또 다른 책을 쓰는 것과 같았다. 그때의 나의 생각과 지금의 나의 생각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점도 놀랍다.
사실 그 책에는 육아에 대한 설움과 도와주지 않는 남편에 대한 원망 가득이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부정적인 면만 보지 않게 되었다. 너도 나를 좋아하지 않아, 내가 없었으면 좋겠지. 나는 좋은 엄마가 아니야. 내가 없으면 더 돌봄을 잘 받을 수 있을 거야.라는 생각을 했으니 얼마나 나를 내몰고 타인에게 상처를 주는 일인지 지금은 안다. 그렇다고 이런 생각을 다시는 안 할 거라는 장담은 못한다. 내가 쓸모없게 느껴지는 것이 병의 증상이니 말이다.
물론 누구나 한 번쯤 자신의 삶에 대해서 생각은 해봤을 것이다. 내가 쓸모없다고 느끼는 순가의 조각들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울증은 그것을 심도 있게 파고드는 작업을 서슴없이 하고 회복하지 못한 채 정말 나를 인간쓰레기로 내몰아버린다. 결론은 그럴 바에는 살지 않는 것이 여러모로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다른 사람은 어떤 이유로 자살을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삶의 필요와 허무에서 깊이 절망했고 어차피 쓸모없는 거 죽음은 언제든 기다리는 하나의 답이었다. 죽어야 이 허무함이 끝나는 것이니까. 그냥 생각을 멈추면 되는 일인데 그걸 할 수가 없어서 홀린 듯 죽음이라는 단어를 선택하는 것이다.
아프니까 그런 거다.
물론 죽고 싶은 순간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있겠지만 보통은 탄력적으로 그래도 희망을 찾아서 다시 일어선다. 하지만 자살을 생각하는 우울증 환자에게는 이 탄력성이 없다. 그래서 그것을 만들려고 약을 먹고 상담을 받는 것이다. 일단 어떻게 되든 살아야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도록 말이다.
지금도 가끔 숨만 쉬어도 예쁨을 받는 것들을 보면서 아무것도 아니어도 괜찮다는 위로를 받곤 한다. 예를 들면 20시간이나 자는 코알라도, 느리게 움직이는 나무늘보도 자신들의 쓸모에 대해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동물처럼 살라는 말은 아니지만 가끔은 그런 동물을 보면 부럽기도 하면서 한 편의 위안이 된다.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하다. 인간은 그보다 더 나아가고 인정받으려는 욕구에 의해 많은 일을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타인의 인정이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다. 그저 살기 위해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잘하고 있다는 작은 생각을 힘들 때 한 번쯤 떠오려 보면 좋을 것 같다.
어쨌든 나의 데스노트는 그렇게 이별위기에 놓여 있다. 그냥 혼자 간직하고 가끔 들여다볼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내가 이 글을 쓰는 목적은 분명하다. 나 같은 사람도 살아가고 있다고 여기도 병과 싸우면서 하루하루를 버티는 사람이 있어요. 저와 같은 사람들은 손을 들어주세요. 오늘도 멋지십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병과 싸우는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도 알려주고 싶었다.
사람들이 쉽게 말하는 좋게 생각해, 긍정적으로 생각해, 이런 말들이 정말 쉬운 말이라는 것을, 평범에 근사치에 있는 사람들의 이해력 좁은 말임을 알리고 싶었다.
물론 내 책이 누구를 바꿀 것이다. 모든 사람이 이해를 하게 될 것이다, 라는 것 너무나 큰 착각이고 그저 누구 하나라도 아, 이렇구나. 하는 정도만 해도 좋을 것 같고 누구는 맞아 나도 이런데, 하면서 작은 위로를 받는다면 그것만으로 만족한다.
그런데 데스노트를 만들었으니 그건 당연히 파기.
나에게도 조금 더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글은 누군가에게 상처와 아픔만 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는 밝게 쓰려고 해도 어느새 무거워지는 생각의 틀 안에서 글을 쓰기는 한다. 그래도 정도라는 것이 있다.
물론 소설을 쓸 때는 추리 소설도 있고 호러도 있고, 마음껏 어두움을 내뿜어도 다시 수습할 수 있지만 에세이가 그렇게 힘들고 어둡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안된다는 사실을 이번에 깨달았다. 역시 사람은 해 봐야 깨닫는 부분이 있다.
그 글을 쓰기 전에는 이건 완벽하게 모두 공감하고 함께 울어주고 나에게 응원을 보낼 글이라고 생각했지만 거기에는 요구가 있었다. 나한테 공감해, 내가 힘들어, 나를 위로해, 너도 힘들지? 거봐, 우리 같이 울자. 거기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위로가 되는, 내가 아직도 살아서 글을 쓰고 있는 희망적인 이야기는 하나도 없는 것이다.
글은, 상처와 아픔을 주면서 끝나면 안 된다. 그래서 나는 다시 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