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숙제를 통째로 맡기더라 임마
정년 퇴직 예정이신 과거 중학교 선생님에게 연락을 드렸다. 안부를 묻고 지금 고향에 내려와서 쉬고 있다고 안부를 전하면서 문득 브런치에 올릴 글 소스가 생각이 나서 여쭤봤다. "쌤, 요즘 애들 ChatGPT 많이 쓰죠?"
돌아온 답이 웃겼다.
"쓰는 정도가 아이라, 걍 애들이 AI한테 먹혀있다. 애들이 AI인지 AI가 애들인지 내가 뭘 가르치고 있는건지 모르겠더라"
독후감, 영어 에세이, 보고서. AI가 써주고 아이가 제출한다. 선생님도 안다고 한다. 근데 웃긴건 잡을 수가 없다고 한다. AI가 쓴 글과 아이가 쓴 글의 경계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근데 유독 잘 쓰는 애들은 있다."
"예? 뭐 어떻게 쓰길래요?"
"내 한테 와가지고 자기는 AI로 숙제를 하는데, 예를 들면 책을 읽고 독후감 같은거 써오라고 하면 이 문단에서 이 교과서에서 줄거리가 혹은 맥락이 가장 약한 부분이 어디야?"라고 묻더라.
듣고 소름 까지는 아니었지만, 잘 쓰는 애들은 잘 쓰는구나 이해를 하고 사용하는구나 라고 생각했다. 같은 도구다. 분명 다 똑같이 무료를 쓰고 다 똑같이 구독을 하고 사용한다.
그런데 완전히 다른 사용법으로 접근한다.
다르게 생각하고 접근하고 질문한다.
결국 사용자가 중요하다.
Meta 수석 AI 과학자이자 튜링상 수상자인 얀 르쿤이 이런 말을 했다.
"99%의 사람들은 AI를 장난감처럼 쓴다."
이 말은 어른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아이들에게 그대로 적용된다. 오히려 더 심하다.
어른은 최소한 AI 이전의 사고 습관이 있다. 검색 이전에 도서관에서 네이버에서 찾아본 기억이 있다.
계산기 이전에 손으로 풀어본 경험이 있다.
그런데 지금 학생들은 그 경험이 극히 드물다고 한다.
태어난지 얼마 안되어서 한창 스펀지처럼 흡수할 지금 시기에 AI가 등장했다. 이 아이들에게 AI는 도구가 아니라 내 시절의 가로본능 폰과 같은 존재다. 그 누구보다 잘 사용한다.
그리고 제일 빠르게 이용한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AI를 무의식적으로 쓰는 아이와, 도구로 의식적으로 쓰는 아이 사이에 격차가 벌어질 것이라고.
장난감으로 쓴다는 건 이런 것이다.
"독후감 써줘." 복사. 붙여넣기. 제출.
"이 문제 풀어줘." 답만 옮겨 적기.
"발표 자료 만들어줘." AI가 만든 슬라이드 그대로 발표.
생각을 AI에게 위탁하는 것이다.
이 아이들은 빠르다. 효율적이다. 점수도 잘 나온다.
근데 분명히 한 가지가 빠져 있다. 자기 머리로 생각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디아블로 게임을 굉장히 좋아한다. 아이템의 옵션을 보고 룬을 조합하고 새로운 스킬을 조합해서 반영하고 등등 그런데 이용자들 중에는 그냥 단순히 타인이 하던 트리자체를 그대로 가져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게 해도 재미있지만, 스스로 연구하고 접근하는 사람과 트리대로 접근하는 사람과의 격차는 크게 난다.
바로 이거다.
그래서 학교는 시험을 없애지 않을 것이다. 시험이 없어지는 순간, 이 아이들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AI가 써준 정답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읽지 않았으니까, 직접 쓰지 않고 직접 계산하지 않았으니까.
르쿤이 말하는 "진짜 지능"의 조건이 있다. 그는 현재 LLM이 진짜 지능이 아닌 이유를 다섯 가지로 정리했다. 그리고 이 다섯 가지가 정확히, 아이가 AI를 무기로 쓰는 방법이 된다.
세상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는 것.
르쿤은 이걸 "월드 모델"이라고 부른다. LLM은 단어의 패턴을 학습할 뿐, 세상이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무기로 쓰는 아이는 수학 문제를 AI에게 풀어달라고 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묻는다고 한다.
"이 공식이 왜 작동하는지 설명해줘. 그리고 내가 이해한 게 맞는지 확인 및 분석해줘."
답을 받는 게 아니라, 원리를 이해하려는 것이다. 이렇게 활용하는 아이는 AI를 답을 알려주는 존재 혹은 선생님이 아니라 자신의 이해력을 높이기 위한 스파링 파트너로 활용한다.
결과부터 역산해서 계획하는 것.
LLM은 다음 토큰을 예측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한 단어 다음에 올 단어를 맞추는 것. 르쿤은 이걸 "진짜 계획 그리고 지능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진짜 지능은 목표를 먼저 정하고, 거기까지 가는 경로를 역산한다.
"독후감 써줘"는 토큰 예측과 같다. 다음에 올 문장을 AI에게 맡기는 것이다.
그런데 AI를 무기로 쓰는 아이는 달랐다. "책의 논리적 허점을 찾아줘. 내가 그걸 반박하는 글을 쓸 건데, 구조를 같이 잡아주라." 즉, 최종 결과물을 먼저 정의하고, AI를 도구로 배치하고 이용한다.
어떻게 그렇게 하냐고 물었는데, "그냥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순전히 느낌이다. 아니 본능이라고 해야할 것 같다.
제1원칙으로 질문하는 것.
르쿤이 딥러닝을 발명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 모두가 믿고 있던 것을 의심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신경망은 학계에서 버림받은 아이디어였다고 나온다. "그건 안 돼"가 정설이었다. 그런데 르쿤은 "왜 안 되는데?"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런데 스승님의 제자도 마찬가지였다.
"왜 학교에 가야 해?"라는 질문을 하는 아이가 있다. 대부분의 부모는 이걸 반항으로 본다.
근데 이 질문이야말로 제1원칙 사고의 시작이라고 느꼇다.
AI와 함께 "교육의 본질이 뭔지" 파고드는 아이. 학교 시스템의 역사를 찾아보고, 산업혁명 시대에 공장 노동자를 만들기 위해 설계된 구조라는 걸 발견하는 아이. 이걸 아는 아이는 학교를 거부하는 게 아니라, 학교를 이해한 것이다.
어줍지 않게 일제의 잔재라며 "두발자유화"를 외치던 과거의 ㅂㅅ같은 내 과거 모습이 부끄러웠다.
AI 모델을 강하게 만드는 방법이 있다. 가장 강한 반론을 만드는 것.가장 어려운 케이스로 의도적으로 공격하는 것. 이걸 찾아보니
'적대적 학습'이라고 하더라.
아이의 사고도 같은 방식으로 강해진다.
요즘은 PPT로 발표를 하는 시간도 있다고 했다. 저정도로 생각하는 아이들은 발표를 준비할때 AI에게 이렇게 묻지 않을까?
"내 주장에서 가장 약한 부분이 뭐야? 가장 강한 반론을 만들어줘."
틀린 것을 실패로 보지 않고, "다음에 어떻게 다르게 할까?"로 바꾸는 것. AI가 만들어준 반론으로 자기 논리의 구멍을 먼저 찾고 메우는 아이는, 발표장에서 어떤 질문이 와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목표를 스스로 설정하는 것.
르쿤이 현재 LLM의 가장 큰 한계로 꼽는 것이 이것이다. LLM은 프롬프트에 반응할 뿐, 스스로 목표를 세우지 않는다. 시키면 한다. 시키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장난감으로 쓰는 아이도 같다. AI가 시키는 대로, 학교가 시키는 대로, 부모가 시키는 대로 한다. 자기가 뭘 원하는지 모른다.
무기로 쓰는 아이는 먼저 자기가 뭘 만들고 싶은지 정할 것이다. 그리고 AI를 거기에 배치한다. AI가 주인이 아니라, 자기가 주인이다.
대단한 교육법이 필요한 게 아니다.
정말 자주 듣고 맞다고 하는 말이지만 대체로 이행되지 않는, 딱 하나의 질문만 바꾸면!
그거면 될 것 같다.
당신의 자녀에게 "AI를 쓸 때, 뭐라고 물어봤어?"라고 물어보는 것
"독후감 써줘"라고 답을 했다면, 장난감으로 쓴 것이고.
"이 책에서 저자가 가장 약한 논리를 펴는 부분이 어디야?"라고 답을 했다면 당신의 아이는 무기로 쓴 것이다.
AI의 답이 중요한 게 아니다. 아이가 던진 질문이 중요하다.
질문의 수준이 사고의 수준이다.
그리고 이건 AI 시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소크라테스가 2,400년 전에
이미 말했다. "답을 가르치지 말고, 질문하는 법을 가르치라고"
도구가 달라졌을 뿐, 원리는 같다.
AI 네이티브 세대라는 말이 있다. 오늘 알았다.
태어날 때부터 AI가 있는 세대.
근데 이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AI가 있는 환경에서 태어난 세대.
AI를 네이티브처럼 다루는 세대.
분명 같은 단어다. 그런데 완전히 다른 미래를 가지고 있다.
AI를 공기처럼 마시는 아이는 AI가 사라지면 숨을 못 쉰다.
마치 폰을 두고 군대에 입대해서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지는 답답해 하고 불안해 하는 237번 훈련병
AI를 도구로 쥐는 아이는 도구가 바뀌어도 다음 도구를 찾을 것 같다.
당신의 아이는 지금 AI에게 뭐라고 묻고 있는가.
오늘 한번 물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