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전트, 스킬 마켓플레이스?
오늘 잭 도시가 글을 올렸다.
"From Hierarchy to Intelligence."
Block CEO가 쓴 글치고는 정말 길다. 그리고 꽤 무겁다. 로마 군대부터 시작해서 프로이센 참모부, 미국 철도,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 맨해튼 프로젝트, 매트릭스 조직, 스포티파이 스쿼드까지. 2000년 치 조직 설계의 역사를 훑은 다음 한 문장으로 착지한다.
"계층을 AI로 대체하겠다."
실리콘밸리 CEO가 조직 구조를 바꾸겠다는 얘기는 매년 나온다. 홀라크라시, 플랫 조직, 자율 경영. 다 해봤고 다 실패했다. 근데 잭 도시의 글은 좀 다르다. 왜 실패했는지를 정확하게 짚고 있기 때문이다.
로마 군대의 최소 단위는 콘투베르니움이었다. 8명의 병사가 텐트 하나, 장비 하나, 노새 한 마리를 공유했다. 이 8명을 데카누스가 이끌었다. 콘투베르니움 10개가 모이면 80명의 켄투리아. 켄투리아 6개가 코호르트. 코호르트 10개가 레기온. 약 5,000명.
8 → 80 → 480 → 5,000.
잭 도시는 이걸 "정보 라우팅 프로토콜"이라 불렀다. 정보를 위아래로 전달하기 위한 구조라고 하는데, 실제로 한 사람이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조직의 범위는 3~8명. 로마인들이 수백 년의 전쟁을 통해 발견한 이 숫자는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프로이센이 여기에 참모부를 얹었다. 1806년 나폴레옹한테 박살 난 뒤, 샤른호르스트가 깨달은 건 "꼭대기에 있는 천재에게 의존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만든 게 중간관리자다. 직접 싸우지 않지만, 정보를 처리하고 부대 간 조율을 담당하는 전문 장교. 지금 모든 회사에 있는 팀장, 실장, 본부장의 원형이다.
미국 철도가 이걸 기업에 가져왔다. 1850년대, 뉴욕-이리 철도의 다니엘 맥칼럼이 세계 최초의 조직도를 그렸다. 500마일에 걸쳐 수천 명을 관리해야 했기 때문이다.
비공식적인 관리 방식으로는 기차가 충돌했고, 사람이 죽었다. 그래서 로마의 계층 구조를 그대로 가져왔다.
테일러가 효율을 얹었고, 매트릭스 조직이 유연성을 시도했고, 스포티파이가 스쿼드를 실험했다.
근데 전부 실패하거나 회귀했다.
왜?
대안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잭도시는 설명한다. 계층이 하는 일은 정보를 모으고, 판단하고, 위아래로 전달하는 일을 사람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관리 범위 3~8명이라는 제약은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한계였다. 그래서 조직이 커지면 레이어가 늘었고, 레이어가 늘면 정보가 느려졌다. 2000년 동안 이 트레이드오프를 깬 적이 없다.
잭 도시는 이렇게 말한다.
"AI가 그 대안이다."
Block은 리모트 퍼스트 회사다. 모든 업무가 기록으로 남는다. 결정, 토론, 코드, 디자인, 계획, 문제, 진척까지 전부 디지털 아티팩트로 활용할 수 있게 하는 제품을 제공한다. 이게 중요하다. 예전에는 매니저의 머릿속에만 있던 정보가 이제 기계가 읽을 수 있는 형태로 존재하기 시작했다.
Block이 만들겠다는 구조는 네 가지 레이어다.
첫째, 역량(Capabilities). 결제, 대출, 카드 발급, 뱅킹 같은 원자적 기능 블록.
이건 제품이 아니다. 레고 블록이다.
둘째, 월드 모델(World Model). 회사 내부 상태를 AI가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것. 뭘 만들고 있고, 어디가 막혀 있고, 리소스가 어디에 몰려 있는지. 예전에는 매니저가 일주일에 한 번 스탠드업 미팅에서 파악하던 걸, AI가 실시간으로 한다.
셋째, 지능 레이어(Intelligence Layer). 역량 블록들을 상황에 맞게 조합해서 고객에게 전달하는 것. 식당의 현금 흐름이 줄어들면, AI가 대출 역량과 결제 역량을 조합해서 단기 대출을 제안한다. 프로덕트 매니저가 기획한 게 아니다. 시스템이 스스로 조합한 것이다.
넷째, 인터페이스. Square, Cash App 같은 전달 표면.
그리고 사람의 역할은 세 가지로 줄인다. IC(실무자), DRI(문제 오너), Player-coach(빌더 겸 멘토). 중간관리자 레이어가 사라진다. 프로이센이 만들고 미국 철도가 가져온 그 레이어가.
신기하게도 AI로 이거저거 만들어 보는 사람들의 특징을 보면 내가 필요한거면 타인들도 필요한 것들을 만든다는 것이다. 조금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거시적으로 보면 다 필요한 것들을 만들고 있다.
그것처럼 조직도의 변화에 대해서 말하는 자들의 이야기가 다들 비슷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잭 도시는 Block이라는 거대 기업 안에서 이 구조를 직접 만들겠다고 한다. 세계적인 핀테크 기업이니까 가능한 얘기다. 근데 대부분의 회사는 Block이 아니다.
여기서 내가 보는 그림이 좀 다르다.
나는 요즘 에이전트를 직접 만들면서 이 생태계를 관찰하고 있다. 그리고 발견한 게 있다. 에이전트 세계에도 계층이 있다.
OpenClaw, Claude Code, Hermes Agent, Cursor 같은 에이전트 런타임. 설치하면 내 컴퓨터에서 돌아가면서 명령을 수행하는 플랫폼이다. OpenClaw는 GitHub 스타 10만 개를 넘겼다. Hermes Agent는 출시 한 달 만에 1만 5천 개. 이걸 "팀장"으로 표현하고 싶다. 이 팀장을 사용하는 이용자들이 지금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부하직원이 있다. 팀장 안에서 실제로 일하는 개별 에이전트. 뉴스를 요약하는 에이전트, 코드를 리뷰하는 에이전트, 이메일을 분류하는 에이전트. 이게 진짜 일을 하는 단위다.
잭 도시가 말한 "계층에서 지능으로"를 이 구조에 대입하면 이렇다. 예전에는 팀장 자리에 사람이 앉아서 정보를 위아래로 전달했다. 이제는 AI 런타임이 그 자리를 가져간다. 그리고 부하직원도 사람이 아니라 AI 에이전트가 된다.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빈자리가 보인다.
팀장급 런타임은 이미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코드 저장소는 GitHub이 독점하고 있다.
근데 부하직원 개별 에이전트, 스킬, 워크플로우를 유통하는 구조가 없다.
누군가 뛰어난 코드 리뷰 에이전트를 만들었다고 치자. 지금은 GitHub에 코드를 올리는 게 전부다. 받는 사람은 클론하고, 환경 맞추고, 의존성 설치하고, 에러 잡고, 결국 포기한다. Docker가 나오기 전에 서버를 세팅하던 것과 똑같은 상황이다.
Docker는 이 문제를 "pull 한 번이면 끝"으로 풀었다. npm은 JavaScript 라이브러리를 "install 한 번이면 끝"으로 풀었다. 앱스토어는 소프트웨어를 "다운로드 한 번이면 끝"으로 풀었다.
에이전트에는 아직 이게 없다.
나는 지금 이 빈자리를 채우는 서비스를 만들고 있다. AgentHire라는 이름의 에이전트 마켓플레이스다. 개념은 단순하다. 에이전트를 올리고, 검색하고, 다운받아서 바로 쓴다.
어떤 런타임(OpenClaw든, Claude Code든, Hermes든) 위에서든 돌아가는 에이전트를 플러그 앤 플레이로 제공하는 것이 목표다.
MCP, A2A, OAF, ADL 에이전트 세계에는 이미 4가지 기술 표준이 존재한다. 새로운 표준을 또 만드는 게 아니라, 이 표준들을 연결하는 허브가 되는 것이다.
솔직히 이건 아직 아이디어 단계에 가깝다. MVP는 만들었지만, 시장이 원하는 형태인지는 모른다.
과연 수요가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다. 근데 방향은 보인다.
잭 도시의 글에서 가장 중요한 문장은 이거다.
레이어가 필요 없다는 게 아니다. 그 레이어를 사람만 채울 수 있느냐는 거다.
로마 군대에서 데카누스가 했던 일. 프로이센 참모장교가 했던 일. 미국 철도의 중간관리자가 했던 일. 정보를 모으고, 판단하고, 전달하는 일. 이걸 이제 AI가 할 수 있다.
Block은 그걸 회사 안에서 직접 만들겠다고 한다. 나는 그 바깥에서, 그 AI 에이전트들이 유통되는 인프라를 만들어보고 싶다. 어쨋든 내눈에는 방향은 같다. 계층 구조의 사람을 AI로 교체하는 것.
다만, 잭 도시도 인정하듯이 부서지는 게 먼저일 수 있다.
그래도 방향은 틀리지 않았다고 본다.
2000년 동안 바뀌지 않았던 것이 바뀌려 하고 있다. 나는 그 빈자리에 서 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