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13일
배려
어느덧 도서관을 다닌 지 약 120일 정도가 흘렀다. 후드티를 챙겨 입고 열람실 한켠에 앉아있곤 했는데 무더위가 찾아오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의 옷차림들 또한 한층 가벼워졌다. 수험생인 만큼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주위를 둘러보면 수험과 독서를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가끔 눈길을 끄는 특별한 이웃들이 있다.
어렴풋이 봐도 고희를 훌쩍 넘기신 듯한 어르신, 아마도 일을 마치고 오셨는지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럼에도 꾸벅꾸벅 졸음을 참아가며 공부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그분을 볼 때마다 '배움에는 끝이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나 또한 합격 후에도 끊임없이 배움을 추구하는 미래를 그리게 된다.
다른 한쪽에서는 항상 같은 시간에 아버지와 중학생 쯔음으로 보이는 딸이 나란히 앉아 함께 공부를 하고 있다. 어느 날 점심시간 즈음에 두 사람을 마주쳤는데 웃으면서 나가는 걸 보아하니 딸과 많이 친하게 지내는 듯하다. 평소엔 아버지가 먼저 공부를 하고 계시지만 딸이 오면 항상 환한 미소와 함께 의자를 먼저 꺼내 앉을 수 있도록 준비해 주신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다정한 아버지의 배려와 딸을 바라보는 애정 어린 시선을 보아하면 두 부녀간의 유대감이 얼마나 견고한지 알 수 있다. 한편으론 나는 경험하지 못했던 따뜻한 아버지의 모습이라 너무나도 부러운 마음이 든다.
해가 뉘엿뉘엿 져갈 무렵, 한눈에 보기에도 가득 찬 가방을 등에 메고 양손에 책가방을 꼭 쥔 채 한 아이의 어머니가 힘겹게 문을 열며 들어온다. 아이가 먼저 자리에 잘 앉았는지 확인하고 나서야 옆자리에 앉아 가쁜 숨을 잠시 가다듬는다. 그 사이 아이는 조용히 수학 문제를 푼다. 가끔 문제를 푸느라 머리를 쥐어짜는 모습을 보면 나보다도 더 몰입을 잘한다는 생각까지 든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 중에서도 요 근래 가장 기억에 남는 한 분이 있다. 도서관 열람실에서 자주 마주치는 시각장애인 분이다. 내가 다니는 도서관의 열람실은 좌석표를 뽑아 이용해야 하는데 마감시간에 가까워지면 직접 키오스크에서 연장해야만 한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점심을 간단히 먹고 열람실로 다시 들어가는 길이었다. 나의 좌석표를 연장을 하려던 찰나, 그분은 내 등 뒤에서 살며시 다가오셨고 꾸깃꾸깃 접힌 좌석표를 조심스레 내밀며 아마도 한참 준비했던 말을 꺼내신 듯하였다.
"혹시... 이것도 해줄 수 있나요?"
머뭇거리는 목소리와 함께 나는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두 눈이 각기 다른 곳을 향해 있어 사시인 듯하였고, 접이식 흰 지팡이를 쥐고 계셔서 한 눈에도 시각장애인임을 알 수 있었다. 왠지 모르지만 본능적으로 나는 밝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럼요~ 연장 도와드리면 될까요?"
키오스크 연장을 도와드리고 새로 나온 좌석표도 정성껏 전해드렸다. 그날부터 그분이 자꾸 눈에 밟혔다. 뒤늦게서야 알았지만, 늘 키오스크를 이용하는 누군가가 올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셨다. 내게는 3초면 끝나는 간단한 일이었지만 그분에게는 큰 기다림이 필요한 일이었다. 놀랍게도 누구에게나 섣불리 먼저 말을 거는 일 없었으며 무턱대고 도움을 청하지 않으셨다. 그 사건 이후, 나는 항상 같은 시간에 키오스크 앞에서 그분을 자주 마주쳤고 자연스럽게 도와드리게 됐다.
우연의 일치였을까? 며칠 지나지 않아 집에 가는 길에 또 한 분의 시각 장애인 분을 마주쳤다. 그런데 이번에도 내가 도울 일이 생겼다. 보도 위 점자블록 위에 택배차량이 올라가 있어, 이대로 가다간 분명 부딪히실 것 같았다. 그 순간 갑자기 큰 소리로 말을 걸면 놀라실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는 걸 어디선가 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분 옆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지금 10걸음 정도 앞에 큰 택배 차량이 하나 있거든요. 제가 피해드릴 수 있게 도와드려도 될까요? 제가 말로 설명드릴 수도 있고 제가 팔꿈치를 내어드릴 테니까 잡고 같이 움직이셔도 되거든요."
예전에 시각 장애인이 직접 만든 영상 속에서 스쳐 배운 방법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덕분에 그분은 나와 함께 그 길을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었다.
남을 돕고 나면 마음이 흐뭇해지고 적어도 의미 있는 일 한 가지는 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진심으로 그 사람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서 우러난 행동이었는지, 아니면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기 위한 수단으로 그 사람을 이용한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된다. 선한 마음과 자기만족 사이에서의 간극을 끝없이 곱씹게 된다.
나는 공부를 하다 답답한 마음이 들면 바깥공기를 쐬려 옥상에 올라가곤 한다. 그곳은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녹색 방수 페인트가 잔뜩 칠해진 조그마한 휴게 공간이다. 도서관 옥상을 개조해 만든 듯한 그 작은 공간에서, 예전에 키오스크 연장을 도와드렸던 그분을 다시 마주쳤다. 자세히 보니, 그분은 같은 자리를 조그맣게 빙글빙글 돌고 계셨다. 처음에는 왜 그러시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탁 트인 야외 공간도 많고 심지어 산책로가 잘 만들어진 공원도 가까운 거리에 있는데 왜 굳이 좁고 단조로운 이 공간만을 고집하시는 걸까?
열람실에 앉아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또한 배려가 아닐까 싶었다. 그곳은 아마 여느 다른 곳보다 자신에게 집중하며 가장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공간이었을 것이다. 굳이 조그맣게 한정된 공간만을 도는 것 또한 다른 사람의 휴식에 방해되지 않게 최소한의 공간만을 사용하는 배려였을 테다. 이 전에 키오스크 뒤에서 묵묵히 기다리는 그분의 태도 속에도 타인을 존중하는 매너가 담겨 있었다. 이내 큰 감동이 파도처럼 내 마음에 밀려왔다. 항상 웃는 표정으로 걷고 있는 그분을 보면 내가 얼마나 편협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는지, 그리고 그가 누리는 평온함을 내가 오히려 배려하지 못했던 것은 아닌지 깊이 반성했다.
늘 다니던 도서관인 만큼 평범하기 그지없던 도서관 안이 이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공립도서관에 설치된 여러 장치들은 많은 사람을 두루 배려한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도서관 정문에는 휠체어가 다닐 수 있도록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었고, 시각 장애인을 위한 점자 안내판도 설치되어 있었다. 휠체어가 무리 없이 통과할 수 있도록 출입문들이 모두 넓게 설게 되어 있다는 점도 알 수 있었으며 장애인 전용 주차공간 또한 입구 가까이에 마련되어 있었다. 열람실에는 장애인석이 문 가까이에 배치되어 있었고 화장실에도 장애인 비상벨이 두 개나 설치되어 있었다. 하나는 가슴과 무릎 사이에 배치되어 있어 앉은키를 고려한 게 아닐까 싶었고, 다른 하나는 바닥에 닿을듯한 거리에 설치되어 있어 만약 넘어졌을 때를 대비한 게 아닐까 싶었다.
조그마한 경험 덕분에 그동안 무심코 지나쳐 눈에 띄지 않던 것들이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공공시설이 취약계층을 위한 세심한 배려를 많이 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 깨닫게 되면서, 공공서비스가 예상보다 작은 부분까지 꼼꼼히 신경 쓰며 운영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함께 사는 세상'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그런 작은 배려들이 우리 모두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는 것을 깊이 체감했다.
결국 도서관은 단지 공부만을 위한 단순한 공간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다정한 눈빛이 스며든 곳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숨을 고르고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쉼터였으며
누군가에게는 자신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안전지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