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정한데 왜 가요?”라는 질문에 대한 오해
“불안정한데 왜 가요?” 그 질문이 정말 궁금해서 나온 말일까요? 스타트업에 간다고 하면, 거의 빠지지 않고 따라오는 질문이 있습니다. 이 말은 늘 비슷한 표정으로 던져집니다. 걱정인 듯 보이고, 조언인 듯 들리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묘하게 방향이 정해져 있습니다. 마치 정답은 이미 정해져 있고, 나는 그 정답에서 벗어난 선택을 한 사람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질문입니다. 그래서 이 질문을 받는 순간, 우리는 설명을 준비하게 됩니다. 왜 괜찮은 선택인지, 왜 생각 없이 결정한 게 아닌지, 왜 위험을 감수할 만한지. 하지만 저는 늘 이 질문 앞에서 한 가지 생각이 듭니다. 이 질문은 정말 ‘궁금해서’ 나온 걸까요?
“불안정한데 왜 가?”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들리려면, 그 반대편에 놓인 선택지는 이미 안전하다고 합의되어 있어야 합니다. 대기업은 안정적이고, 그 안에 있으면 미래가 어느 정도 보장되며, 적어도 스타트업보다는 훨씬 덜 흔들릴 거라는 믿음 말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 믿음 속에서 커리어를 상상해왔습니다. 회사 이름이 곧 신뢰가 되고, 조직의 크기가 안전망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그 틀 밖으로 나오는 선택은, 자연스럽게 ‘모험’이 됩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조금만 현실에 가까이 가보면, 대기업 역시 결코 흔들리지 않는 공간은 아닙니다. 사업 방향은 수시로 바뀌고, 조직은 계속해서 재편됩니다. 어느 날 갑자기 팀이 사라지고, 역할이 바뀌며, 쌓아온 경험이 더 이상 필요 없는 일이 되기도 합니다.이 과정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선택은 많지 않습니다. 결정은 늘 위에서 내려오고, 우리는 그 결정에 적응하는 방식으로 움직입니다. 겉으로 보면 안정적이지만, 사실 그 안정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결정에 나를 맡긴 상태’에 가깝습니다. 그런데도 왜 우리는 이 상태를 안전하다고 느낄까요?
대기업이 주는 안정감은, 불확실성이 사라져서 생기는 게 아닙니다. 불확실성이 개인에게서 조직으로 옮겨갔기 때문에 생기는 감각에 가깝습니다. 개인은 판단하지 않아도 되고, 선택의 결과를 전면에서 책임질 필요도 줄어듭니다. 대신 시스템이 판단하고, 조직이 책임을 나눕니다. 단기적으로는 편합니다. 하지만 이 구조에 오래 머물수록, 다른 종류의 불안이 조금씩 쌓입니다. ‘내가 잘해서 유지되는 자리’가 아니라, ‘어딘가에 속해 있어서 유지되는 자리’에 익숙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안정이 깨지는 순간, 나는 얼마나 많은 선택지를 가지고 있을까요?
스타트업은 분명 불안정합니다. 그 사실을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불안정은 완전히 통제 불가능한 위험과는 다릅니다. 결과가 좋든 나쁘든, 그 원인이 비교적 명확하게 개인의 판단과 연결됩니다. 내가 내린 선택이 그대로 경험으로 남고, 그 경험이 다음 선택의 기준이 됩니다. 여기에서는 실패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대신 축적됩니다. 그리고 이 축적은 시간이 지날수록, 개인이 움직일 수 있는 범위를 넓혀줍니다. 그래서 이 지점에서 질문이 바뀌어야 합니다.
불확실한 환경에서 빠르게 배우며 판단력을 쌓아가는 것일까요? 아니면 안정적인 구조 안에서 판단할 기회 자체가 줄어드는 것일까요. 스타트업을 선택한 사람들은 안정을 싫어해서 그 길을 택한 게 아닙니다. 다만 안정의 기준을 다르게 두었을 뿐입니다. 조직이 대신 보장해주는 안정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안정 말입니다.
“불안정한데 왜 가요?”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그 선택을 했어요?”이 질문에는 비난이 없습니다.
대신 호기심이 있고, 존중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을 통해서야 비로소, 스타트업이라는 선택이
무모함이 아니라 하나의 전략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연봉도, 복지도, 안정성도 아닌 사람들이 스타트업에서 진짜로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이 글을 읽고도 스타트업이 여전히 매력 없어 보인다면, 그 역시 아주 정상적인 반응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