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메바 라이팅 Oct 23. 2019

세상은 참 살만 해, 그리고 정말 공평해.

[사장은 아무나 하나요?]

터널 속 시멘트 도로가 끝에 다다를 줄 모른다. 한없이 이어가고 있다. 옆과 천장을 허연 시멘트로 도배한 터널의 사방이 회색 가득한 항아리 내부 같다. 잠깐 눈꺼풀을 감았다 뜨기라도 하면 똑같은 회색의 착시 때문에, 황당한 공포마저 느낀다. 회색에 눈이 멀어 버릴까 걱정한 머리 좋은 누군가의 배려일까? 회색 천장 앞으로 무지개색 LED 천장 등이 요란하게 반짝인다. 잠깐의 하늘빛에 홍채가 커진 틈으로 또다시 회색이 밀려온다.


안산 가는 길은 안산이 어떤 곳인지를 미리 예단하게 해 준다. 오리엔테이션 교육을 시켜주는 배려가 깔려 있다. 안산에 닿아도 놀라거나 공허해하지 않을 만큼 눈과 머리를 안산을 위한 염료제 속에 넣었다 꺼내 준다. 그래서 안산에 닿아 안산 사는 착한 아무개를 떠올려도 그다지 황망하지 않다.

 

내가 아는 안산 살던 아무개의 이야기다. 가족에게는 늘 희생하는 아빠이자 남편이었고, 형제 조카들에게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우애 깊은 동생이었다. 장모님에겐 자랑스러운 사위이고 대학 동기들에게는 더없는 우정의 빛이다. 안산 살았던 착한 아무개는 그런 사람이다.

 

십 년 전인가 어느 아침 시간. 초등학교를 갓 입학한 딸내미가 아무개에게 말했다.


아빠 나 미술시간 크레파스 사 오래.



아무개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 올라 황급히 아내에게 천 원짜리라도 긁어 달라 했다. 딸내미는 눈물을 훔치며 학교로 걸어갔고 아무개는 냉장고에 든 소주병을 꺼내 단번에 들이켰다. 화장실 문을 잠그고 아무개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울다 진이 빠진 아무개는 오전 내내 아침방송을 보며 서글픈 신세를 남 탓으로 돌렸다.


병신 같은 그놈만 아니었으면 신용불량이 되지 않았을 텐데.


아무리 후회해도 시간의 챗바퀴에는 후진 기어가 없다. 오후 3시가 넘어 면접 보기로 약속한 공장으로 걸어갔다. 버스로 3번을 갈아타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지금 버스비도 아까운 사정이다. 아침부터 눈물을 훔치며 아이들 속으로 훌쩍이며 걸어간 딸내미를 잊을 수 없다. 아무개는 곧 마주할 사장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사정하리라 다짐했다. 다시는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살아남으리라, 하루에도 수만 번 다지는 결심을 다시 한번 더 다졌다.


재기는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처자식 입에 밥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고 싶었다. 더 이상 아침 등굣길에 눈물을 훔치는 딸내미의 뒷모습을 바라만 보고 싶지 않았다. 4시에 도착했지만 아무개의 순서는 40분이 더 지나서야 주어졌다.


서른 살이 넘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사장이 면접을 보았다. 아무개는 사장의 요구대로 예전 경력을 먼저 말한 뒤 자기소개를 했다. 아스팔트 위의 껌딱지처럼 달라붙어, 차마 신용불량이라는 말이 입 안에서 나오지 않는다. 사장이 물었다. 지금 면접장에 계신 분들 중에 신용불량자 있으세요? 가슴이 마구 뛰고 눈 앞이 서스런 당황함으로 뿌옇게 흐려졌다.


아무개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전 신용불량 등록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만,
그래서 업무에 더욱 애착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히려 사장이 준 기회를 붙들려 촉촉해진 눈가를 일부러 숨기지 않았다. 사장이 그런 건 입사의 방해 요인이 되지 않는다, 라고 말했지만 다른 회사에서도 늘 똑같이 반복하던 레퍼토리였다. 공장 정문을 나서자 먼저 면접을 끝낸 사람들이 한 명씩 따로 하지만 같은 동작으로 담배를 피웠다. 나도 한 대 빨고 싶다, 라는 생각이 아무개의 머리를 정지시켰다. 체념한 아무개는 버스 3번을 갈아타지 않고 걸었다. 담배도 피우지 않고 음료수 한 잔 마시지 않았다.


한 여름 7월 초부터 젊은 사장의 공장에 출근했다. 재무팀장으로 입사했지만 재무팀이라 해도 스물서너 살 여자 직원뿐이다. 아무개는 첫 출근날 거의 일 년 만에 딸내미보다 먼저 집을 떠났다. 행복했다. 아무개는 자신에게 OJT라도 해 줄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혼자서 일을 시작했다. 다행히 사장이 회사의 곳곳을 많이 알아 업무를 하는데 크게 어렵지 않았고 작은 규모의 회사라서 파악할 업무가 많지도 않았다.


점심시간은 공장 옆 간이식당에서 식판을 받아 황급히 배를 채웠다. 늘 줄을 서야 하는 작은 식당이라 음식을 입으로 여유롭게 씹어 넘기는 호사를 누릴 형편이 아니었다. 이렇게 아무개는 그 젊은 사장의 회사에 다니게 되었다.


젊은 사장의 사업은 날로 번창했다. 수십억의 돈이 통장을 채우고도 남았다. 직원들의 수가 하루가 다르게 늘었고 공장 건물도 공장 옆 간이식당도 붐비고 부대끼는 좁은 항아리가 되었다. 아무개는 식당 여주인과 아무도 시키지 않은 담판을 했다. 일주일 삼일은 고기반찬이 올라오고 운영 시간은 두 배로 늘었다.


어느 날 젊은 사장이 식당 건으로 크게 칭찬했다, 다시는 나락에 추락하지 않으리란 다짐이 보상받은 첫 포상이었다. 아무개는 젊은 사장을 위해서라면 더욱 자신의 남은 인생을 모두 바칠 각오를 했다. 다음 해 젊은 사장은 아무개가 꿈도 꾸지 못할 세상으로 그를 끌어들였다.


예전에 대학 동기들과 몇 번이고 조그마한 사업을 벌이다 말아먹기를 반복했다. 상장사는 TV에서나 보던 남의 세상이었다. 젊은 사장이 아무개와 A를 불러 상장사 길들이기에 앞장서 달라했다. 아무개는 이후 수년간 서울로 출퇴근했다. 사장이 자신을 신뢰한다고 느끼자, 많지 않은 연봉에도 감사하는 마음이 커져 갔다. 하지만 경제적 부담으로 돌아오는 출퇴근 비용이 아무개의 마음을 처음으로 유린했다.

 

젊은 사장은 수많은 채권자와 채권자가 고용한 건달들을 단신으로 잘 견뎌냈다. 아니 견딜 때도 있었고 어쩔 때는 젊은 사장이 이들에게 너무 한다 싶을 정도로 상황을 역전시키기도 했다. 두 해가 지난 뒤 상장사는 외부의 쓰레기 같은 장애물을 치웠다. 묻은 때는 어쩔 수 없었지만 손으로 잡아 치울 수 있는 쓰레기들은 눈에 보이지 않을 때까지 걷어냈다.


아무개는 젊은 사장을 존경했다. 아무개의 아내가 하늘처럼 떠받드는 무당이 말해줬다.


젊은 사장만 붙들고 십 년만 견뎌.



아무개 부부는 젊은 사장 만이 자신들의 남은 생애를 보장해 줄 구세주라 믿었다. 아내는 아무개에게 회사를 위해 더욱 충심을 다하라고 격려했다. 당연히 아무개도 회사를 자신의 목숨줄처럼 생각했다.


십 년이 지나 아무개는 집안을 일으켰다. 늘 마음에 걸리던 어머니를 안산으로 모셨고 집을 사드리겠다는 소원을 이루었다. 어머니 이름으로 아무개가 조그만 빌라지만 한 채 장만해 드렸다. 아내는 아무개를 더욱 사랑하겠다고 되뇌며 뜨겁게 손을 잡아 주었다. 십 년 전 아침 바람에 눈물을 훔치며 걸어가던 딸내미를 이제는 찬 바람이 불지 않는 남방으로 유학 보냈다. 어릴 적 풍족하게 못 해준 게 미안해 딸에게는 이보다 더한 것이라도 해 주고 싶었다.


아내는 남편의 수완 덕에 서울 강남에서 한정식 식당도 운영하며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그리고 남편이 알아봐 준 시내에 오피스텔도 손가락 숫자만큼 사들였다. 삼십 년 이상 살아온 안산이 아무개 부부에게 진정한 고향으로 변했다.


아내는 아무개가 벌이는 사업에 자신의 명의가 여럿 이용되었지만 그만큼 아무개가 벌이는 사업 규모에 덩달아 신이 났다. 부자들만 산다는 부산 해운대에서 사교육 컨설팅을 주업으로 하는 고가의 학원도 운영 중이다. 삼 년 전 아무개가 아내 이름으로 경매받은 아파트는 안정된 보금자리가 되었다. 여윳돈이 생긴 부부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노년에 살던 고향 땅에 어머니를 위해 새로 분양하는 아파트도 한 채 더 사 두었다.

 

아무개는 서울의 용산 바닥에서 유명한 사업가가 되었다. 유통이며 투자며 몇 년 동안 젊은 사장의 회사가 큰 터울이 되어 큰 손으로 성장했다. 십여 개의 회사를 설립해 부품, 건설, 전기, 공사 등의 업종으로 마구 손을 뻗었다. 아무개는 젊은 사장이 해내는 사업 수완을 지켜보면서 액기스를 모두 배웠다 생각했다. 어설프게 시작했지만 젊은 사장만큼, 아니 이제는 그보다 자신이 더, 잘하고 있다고 자찬했다.


현금 가용량은 젊은 사장을 앞서가기 시작했다. 아무개가 돈을 빌려주는 상황이 되었다. 물론 아무개에게는 특별한 자금원이 없었지만 말이다. 아무개는 실로 십여 년 전 실패가 와신상담으로 초석이 되어 지금의 성공을 이루었다 여긴다. 아무개는 결심만 하면 어떤 사업이던 벌일 수 있었고 거기에 필요한 돈은 언제든지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아무개는 신용불량자였던 큰 형님을 뻘 속에서 빼냈다. 이후 아무개는 현금 몇 푼을 쥐어 주며 아무개 대신 사채놀이를 하도록 지원했다. 큰 형님은 몇 년이 지나 몇억을 굴리는 노년의 안락한 삶을 살게 되었다. 탈 많던 둘째 형은 답이 없었다. 하지만 입에 풀칠이라도 하도록 이런저런 회사에 직원으로 등록해 고정적인 월급을 쥐어 주었다.


아무개에게는 두 형님 외에도 죽은 형제가 많다. 죽은 형님의 아이들이 마음 한구석을 차지했다. 특히나 조카딸들이 먹고살고자 아등바등거리는 모습이 늘 안쓰러웠다. 조카 이름으로 빌라와 아파트를 분양받으며 생활비로 넉넉한 수천만 원을 몇 번이고 쥐어 주었다. 조카 아들은 먹고사는 게 시원찮다. 아무개는 두어 군데 회사에서 급여를 받도록 도와줬고 가끔 목돈도 만지게끔 손을 써 줬다. 조카는 얼마 있지 않아 서울에 한 아파트로 이사 오게 되었고 외제차도 한 대 뽑았다.


아무개는 정말 가족을 사랑한다. 하지만 아무개의 사랑은 가족이 아닌 대학 동기들에게도 차고 넘쳤다. 대학 시절 자취방과 집을 오가며 친해진 두 친구와 함께 예전에 사업도 함께 했다. 물론 깨끗이 그리고 다 같이 망했다. 그때를 떠올리며 아무개는 친구들을 도와줬다. 은행 다니는 친구는 삼 년간 십억 이상 현금을 쥐었다. 모두 아무개 덕택이다. 노숙자 같은 친구는 아무개가 주무르는 회사들의 사장 자리에 앉혀 꼭두각시처럼 흔들었다. 흔들면 고물이 떨어지고 고물이 쌓이면 어지간한 시루떡만큼 만들어진다. 아무개의 사랑은 둘의 삶을 바꿔 놓았다.


아무개는 더 이상 젊은 사장이 필요 없다. 젊은 사장은 이제 젊지도 않다. 그리고 아무개의 횡령으로 공장은 팔렸고 회사는 문을 닫았다. 젊은 사장은 신용불량자가 되었고 여러 혐의의 경제사범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 아무개는 젊은 사장의 돈과 명성을 뺏았고, 젊은 사장의 인생을 짓밟았다. 자신을 고소하거나 소송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짓밟고 모함하고 또한 오히려 아무개가 저지른 범죄를 사장에게 덮어씌우고 이를 고소했다. 그 사이 아무개는 가족, 형제, 친구들의 집안을 일으켰다. 조용히 아무개가 되뇌며 혼잣말에 빠진다.


세상은 참 살만 해.
그리고 공평해.



아무개는 오늘도 횡령한 수십억원 가운데 아주 티나지 않을 만큼 집어내어 변호사에게 던져줬다. 이제는 젊지 않은 사장이 당분간 하늘을 볼 수 없도록, 확실히 보내라고 반말로 지시한다. 그리고 웃는다.


돈은 엄청 많어. 걱정말고 확실히 보내!
작가의 이전글 여성 할례, 면도날 아동 학대를 멈추게 해야 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