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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바 라이팅 Oct 23. 2019

부모답게 사는 게 그렇게 어려웠나요?

죽기 전에 알았으면...

결혼식을 한 달 앞두고 나는 결심했다.


다시는 이 인간들 부모 취급 안 한다.



신혼집 도배할 돈도 보태주지 못하는 부모란 사람들이, 결혼 전 아내가 들고 온 사주단자의 수표를 보고 말했다.


이게 뭐고? 돈 5백에 우리 아들이랑 결혼하려고?



아내는 서럽게 울면서 무릎 꿇고 빌었다.


서울 가서 부모님께 다시 말씀드릴게요.
 죄송합니다. 어머님.



아버지라는 사람은 돌아앉아 시위하듯 소주잔을 퍼부었다. 항상 화가 나면 술을 그렇게 퍼부었다. 어려서부터 죽이고 싶었던 뒷모습이다.


결혼식이 열리던 날까지, 밍크코트, 다이아몬드 반지, 고급 이부자리, 자식 팔아 한밑천 챙기려는 어이없는 요구에 참고 인내했다. 정말 제정신의 착한 여자와 결혼해, 이 집안과 인연을 끊는 게 내 인생의 목표였다. 그래서 결혼식까지 얼렁뚱땅 넘기기 바빴고, 성숙하지 못한 부모란 사람들은 짐승도 하지 않은 핀잔과 짜증을 토했다.


신혼여행을 다녀와 새색시가 인사하는 날이었다. 나에게 돈도 없이 결혼하느라 고생했다는 격려가 아니라, 왜 말랐냐며 있는 짜증 없는 짜증을 뱉었다. 도저히 참지 못한 내 입에서 예전의 결심이 튀어나왔다.


네들이 사람새끼가? 진짜 나중에 죽을 때도 연락하지 마라. 장례는 절대 지내지 않을 거다.


아내는 착하고 선한 사람이다. 그런 취급을 받고도 남편의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매일 안부전화를 올렸다. 나는 이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부모란 사람들과 인연을 끊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아내가 이십 년간 몰래 생활비를 보내주었고, 그들은 그 돈으로 편히 지냈다.



19년 전 나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나와 같은 생일날, 아들이 태어났다. 아침에 아내가 해 준 미역국을 먹은 지 4시간 만에 아들이 세상에 얼굴을 내밀었다. 내 모든 걸 주어도, 그리고 아들을 위해서 내 모든 걸 바쳐도 아깝지 않은 아들이다.


자식을 낳으면 부모 맘을 안다는데, 나는 더 모르겠다.
내 부모라는 자들은 아무래도 사람이 아닌가 보다.



24년간 나를 때린 더러운 그 손, 내 자존심과 인격을 길거리 강아지의 그것만큼도 배려하지 않는 더러운 그 입, 탐욕과 멸시에 가득 찬 그 눈과 입. 나는 어릴 적 하느님께 빌고 빌었다.


제발 저 사람들을 죽이든가, 절 죽여주세요.




3년 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 여긴 아내가 나랑 살지 않겠다면서 최후통첩을 보냈다. 추석 명절이었다.


부모님이랑 화해하고 잘못했다고 사과해.
그리고 자기 아들 앞에서 반드시 그렇게 해!



고향집을 아들과 함께 찾았다. 아내의 바람대로 말했다. 하지만 내 말을 후회하는데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역시 사람이 아니었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못난 인성과 비뚤어진 이성은 달라지지 않았다. 또다시 다시는 보지 않을 것이라고 큰소리치고 나왔다.


돌아오는 고속버스 안에서, 아들이 조심스레 운을 띄웠다. 아빠를 달래 보려는 아들의 안타까움이 너무나 진하게 흘러나왔다. 미안했다.

 

아빠, 할아버지랑 할머니는 아빠랑은 아예 다른 세상 사람이잖아요. 전혀 이해를 못할 거예요.



빙긋이 웃어 보였다. 아빠는 괜찮다, 라고.


아들에게 최선을 다하려는 내 맘이, 어쩌면 내 부모의 더러운 피를 속죄하려는 아비의 발버둥 일지 모른다. 혹시라도 그 피가 아들에게 한방울이도 튀지 않았을까, 싶어서.


그리고 아들의 얼굴에서 내 부모의 얼굴이 비치기라도 하면, 아들에게 죄책감이 든다. 내가 아버지라서 미안하다. 아들에게 사과한다. 그리고 기도한다.


다음 생엔 아들에게 자랑하게 해 주세요.
우리 아빠 엄마야, 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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