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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바 라이팅 Oct 28. 2019

'아직 폐경 아냐?' 아내에게 어이없이 농담하던 남자

내가 대신해 줄까?

여보, 언제 폐경되니? 큰일이다.
빨리 갱년기가 와야 할 텐데.



살포시 이불 밑으로 손을 뻗자 아내가 손등을 세차게 내려쳤다. "건들지 마셔, 나 생리해.", 아니 뭐가 이렇게 젊어? 아직도 생리해, 라고 아쉬움을 달래며 말했다.


네가 겁을 상실했구나? 폐경되고 갱년기 오면, 사춘기는 저리 가라, 인데. 모르나 보지?



아내의 위협에 섣부르게 아내의 폐경을 독려한 것에 움찔했다. 폐경에 대한 두려움과 자괴감이 공존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아내가 말했다.


난 생리통 때문에 허리가 끊어지더라도, 생리하는 여자로 남고 싶어.



아내는 생리하는 여자다. 버젓이 꽐꽐꽐 거리며 생리혈이 흥건히 흘리는, 생리하는 여자다. 침대 시트를 검붉게 물들이고 비데 커버에 선홍빛 피를 낭자하게 뿌리는, 생리하는 여자다.


어딜 감히 피비린내도 나지 않는 것이!



생리하는 우리 아내가 무모한 상상을 말로 뱉은 나에게 날린 일침이다. 평생 피비린내 속에 피바람을 일으키며 살아온 아내에게 사과했다. 미안해. 폐경되면 우리 부부가 서로 편할 줄 알았어., 소리 내어 사과했다. 그리고 요도로 남자들이 생리하는 순간을 상상해 보다가, 이내 몹쓸 짓을 하다 들킨 아이처럼 얼굴이 발개졌다.


그러던 아내가 조금씩 변하고 있다. 신체적 변화가 온몸에서 느껴진다. 아내에게 일어나는 현상은 급진적이고 과감하다.

예전의 아내는 침대에 오르면 1분 이내에 잠들었다. 그런데 지금의 아내는 잠을 설치고 밤낮으로 신경질이 잦고 예민하다. 심장이 두근거려 불안하다고 한다. 게다가 온몸에 작은 벌레가 기는듯해 불쾌한 가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아내의 스테미너와 에너지는 다른 여자들의 로망이었다. 하지만 지금 아내는 '피곤해'  라는 말이 습관이 됐다.


그러다 화장 지운 아내의 얼굴, 정확히 뺨, 에 붉은 실핏줄이 터지는듯한 그물망이 보였다. 아내가 우울함은 더 크게 느꼈다. 곧 폐경이 다가올 걸 직감했다, 라고 한다.


폐경되면 생리 안 하고, 임신 걱정 없고 좋지!
피임 안 하고 맘껏 해도 되잖아.



아내가 듣기 싫다며 발로 날 밀어쳤다. 난 한숨에 침대 끄트머리까지 밀렸다. "괜찮아."  아내의 돌아누운 어깨를 토닥거려 주었다. 아내는 몇 시간 뒤척이다 '피곤해 죽겠어.'라는 말을 반복하다 겨우 잠들었다.


매년 10월 18일이 '세계 폐경의 날'이라고 한다. 폐경은 매달 일어나는 일이 중단된다고 해서 영어로는 menopause라고 한다. 그런데 학술명으로는 Climacteric로 climax의 시기의 절정을 뜻한다. 즉 완경기다.  


여성이 생식의 기능에서 해방된 자유 인간으로 완성된 완경이 폐경에서 시작된다.



아내를 진지하게 달래고 대할 준비를 해야겠다. 젊은 연애 시절. 한 번 더 몸을 만져볼 요량으로 아내와 데이트를 하러 만나기 전 당근 주스를 사서 기다렸다. 만나면 당근 주스를 먹이고 헤어질 땐 발육에 도움을 줬는지 확인했다. 당시에 당근이 가슴이 커지는데 도움된다는 말을 들어서였다. 그러고 보면 참 별짓을 다하며 연애했다.


지금은 아내의 폐경 초기를 완화시켜줄 방법을 찾아보고 있다. 두부 같은 콩 반찬과 견과류를 자주 먹고, 유산소 운동을 자주 시켜야 한다. 생선과 저염식을 섭취하고 체중이 늘지 않도록 운동해야 한다.


아내는 내가 먹고 싶다는 반찬으로 항상 상을 차려준다. 그리고 내가 '뚱뚱해 보여'라고 무심히 뱉으면 죽어라고 운동하는 쉬운 여자다. 나에게만 쉬운 여자다. 아내의 갱년기를 무난하게 넘기기 위해 두 마디만 하면 된다.


여보. 반찬 너무 맛없어. 두부랑 생선 줘.


여보. 배랑 엉덩이가 거 뭐니? 남산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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