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하소연이 결코 감성적 푸념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이미 증명되었다. 그래서 '더닝 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라는 이론으로 설명하고 있다. 코넬대 교수들이 수강생들을 대상으로 실험해 유추한 결과인데, 그럴싸하게 삶의 경험과 데자뷔를 이룬다.
약간만 알아도 거의 세상의 지식과 섭리를 다 아는 것처럼 떠든다. 소위 '우매함의 봉우리'는 아주 작고 미천한 지식만으로도 근자감을 이룬다. 하지만 거기서 정말 조금만 더 알아도 '내가 정말 무식했구나.'라고 깊은 자괴감에 빠져든다.
그래서 더닝 크루거 효과가 말한다. "무식하면 용감하다." "그런데 조금만 더 알면 절망한다."
공유경제가 십여 년 전 미국에서 파생상품의 초기처럼 불기 시작해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한국에서도 창업 붐이 일어났다. 물론 하나같이 실적이라고는 볼품없고, 비전 또한 없는 허상의 말장난에 불과하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단 하나. 경제는 허상의 상품에 미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현실의 실체와 실재의 가치는 더 이상 새로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미국 땅에서 만들어낸 20년 전의 벤처기업 열풍과, 최근 10여 년 동안의 공유경제 열풍이 리먼 금융위기를 부른 파생금융상품의 난립과 전혀 다르지 않다.
모두 실체 없는 경제적 수치를 가지고 논, 제로 섬 게임의 체스판에 불과하다.
요 며칠 타다의 사업 모델을 불법으로 규정한 검찰과 무책임하게 나몰라라 하는 국토부의 전횡에 대해, 비난과 우려의 목소리가 들린다. 내가 전횡이라고 말한 이유는 타다와 같은 공유경제 모델의 혁신성이나 공리성을 인정해서가 아니다. 그간 정부와 정치인들이 보여준 위선적 언행과 불일치하는 결과로 이들을 도탄에 빠뜨렸기 때문이다. 사실상 사업체와 주주들은 쓰레기 더미에 깔리게 생겼다. 그래서 전횡이라고 부를 뿐, 타다와 같은 공유경제의 퇴장에 대해서는 반색하는 사람이다.
공유경제의 폐단에 대해서, 나는 실리콘밸리에서도 십여 년 전부터 조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곧 사그라질 거품이고 거품은 언제 누구로 인해 붕괴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실체와 실재성이 없기 때문에 정책결정자의 말 한마디, 비도덕적인 경영자의 일탈, 비윤리적인 플랫폼 운영 등으로 언제든지 연쇄 도산이 세계적 광풍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공유경제를 두고 흔히 '봉이 김선달식 혁신'으로 추앙하는데, 사실상 너무나 근시안적인 집단적 자기변명에 불과하다. 경제와 사회의 성장이 연간 수 퍼센트에 불과한 현실에서, 실물 투자 없이 매출과 수익만이 늘어난다는 장밋빛 미래는 이론 상의 이야기일 뿐이다.
우선 공유 경제는 공리주의적 견지에서 너무나 반민주적이고 봉건적 경제 시스템을 야기한다. 인류는 소수 지배자의 유전적 통치권 아래에서 시민 다수가 해방된 지 불과 백 년이 겨우 넘었을 뿐이다. 그 사이 프롤레타리야 혁명을 기대했지만 부르주아의 확대와 소득 높은 노동 계급의 출현으로 인한 프롤레타리야 계급의 분열이 일어났다. 이에 민주주의가 철저히 기만술에 이용되었고 자본주의가 더욱 팽배해졌다. 그런데 공유경제가 또다시 극빈 노동계급을 양산하고 확대하면서, 극소수의 부르주아가 유전적인 경제권을 갖도록 경제 시스템을 봉건적으로 변형시키고 있다.
길거리의 수많은 오토바이와 자전거 배달원들, 새벽 배송에 혈안 된 모바일 플랫폼 기업의 하청 배달업체에 소속된 비정규직들, 화이트 컬러 급여에 만족 못해 퇴근 후 쿠팡 배송 아르바이트를 하는 직장인들. 하루 종일 자가용 자동차를 통해 전업 드라이버가 된 우버의 운전자들. 4차 산업혁명을 통한 신소비산업을 꿈꾸는 시점에 소득의 원천은 원시적 3차 산업으로 저소득층과 시민계급을 몰아넣고 있다. 공리적으로 반사회적이며, 사회적으로 극히 반민주적이고 봉건적 회귀이다.
모두가 기술 개발과 제품 개발에 매진하는 이스라엘이나 독일 등과 달리, 미국식 경제 활성화 정책과 많은 어중이떠중이 미국 유학생들로 인해 한국의 신산업은 독창성이 결여되었다. 바보들이 살짝만 생각해도 변형 가능한 공유 경제에만 미쳐 있다. 실로 더닝 크루거 효과가 국내의 공유경제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실시간 세탁 대행, 세차 대행, 파킹 대행. 반나절만 생각해도 누구나 떠올리는 대행 및 공유경제가 마구잡이로 양산되고 방치되었다. 법망과 규제를 피해 변형된 비즈니스 모델로 본연의 공리적 목적과 거리가 먼 편법의 상술로 변했다. 이 같은 공유경제의 난립은 실로 수 년 이내에 실물 경제에 커다한 악영향을 미치고, 미래 국가경쟁력과 신기술산업의 창출에 부정적 선입견을 시장에 안겨 줄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공유경제의 난립으로 실물 경제와 실물 자산이 황폐화되고 재투자가 이루어지기 어렵다, 라는 점이다. 흔히 에어비앤비를 두고서 힐튼 호텔과 비교한다. 호텔을 지을 땅, 건물, 리모델링, 호텔에 근무하는 수많은 직원, 그리고 재건축 등으로 실물에서는 엄청난 투자가 필요하지만 에어비앤비는 그런 투자 없이도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존 부동산 소유자와 이용자를 연결하는 것만으로도 매출과 수익을 창출한다고 자랑한다. 바보의 근자감이 여기서도 나타난다. 이게 자랑하고 추앙받을 일인가? 게다가 그나마 수익을 막대하게 착취하는 에어비앤비와 우버의 경우 이익금을 조세 회피처로 빼돌린 뒤 자국인 미국에서조차 이익금을 공유하지 않는다. 부도덕한 투자자의 설계로만 비난을 돌릴 수 없는 이유가, 그들의 투자자들 스스로가 자멸할 사업으로 확신하기 때문이다.
호텔을 지을 부동산과 건축물의 경제, 수많은 고용 근로자의 일자리, 리모델링과 재건축 등으로 투입되는 자산과 그로 인한 실물 경제의 파장은 안중에 없나? 어떤 투자도 없이 개인 소득자들의 쥐꼬리만 한 부동산으로 코 묻은 돈을 착취하는 공유경제의 렌털 자산의 리모델링, 폐기와 재건축은 누구의 자산으로 누구의 이익으로 대체될 수 있는가? 자신의 주업을 주소득으로 하면서도 공유경제를 통해 부가 이익을 누리겠다는 초기의 경제적 공리성은 사라지고, 공유경제에 철저히 착취 당해 주업을 공유경제의 제공자로 전환당하는 사람들만 남은 것이 현실이다.
스타트업이 곧 공유경제이고 모바일 비즈니스라는 사고방식이 지금이라도 철저히 혁파되고 파괴되어야 한다. 더 이상 이런 비즈니스 모델로 창업하려는 스타트업에게 투자를 해서도 안 되고 국가적 지원이 있어서도 안 된다. 신용불량자만 양산해 낼 뿐이다. 그리고 공유경제를 4차 산업의 핵심인양 떠드는 더닝 크루거 피실험자들도 이제는 후세를 위해 정신 차려야 한다. 공유경제의 승자는 미래의 독재자로 미래 한국의 경제와 사회를 파탄에 빠뜨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