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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사우나에 나타난 그리스인 조르바

[사장은 아무나 하나요?]

by 아메바 라이팅
캬~악, 하~악
"참 나! 속에 있는 거 다 끄집어낼 거요!"


너무 화가 나서 참을 수 없었다. 가래인지, 속에 가득 찬 무례의 오물 덩어리인지, 그 사람의 내장이라도 쏟아져 나오는 건 아닌가, 징그러울 정도였다. 저게 사람이가? 짐승이가? 속 뒤집어지는 그 소리를 네 번째 들었을 때, 그에게 큰소리를 질렀다. "남 생각 안 하고 혼자 더러운 소리 낼 거면 집에 가서 혼자 하세요."


사우나에서 가래 뱉는 게 뭐가 이상하냐, 라고 대들려는 듯해서 더욱 다그쳤다. "그런 더러운 소리를 몇 번이나 듣는 사람들 생각도 안 합니까? 그럴 거면 집에 가서 사워 하면서 혼자 하시라고요.". 눈동자 속 검은자위가 커졌다 줄었다 두어 번을 반복하는 걸 보니, 무언가 그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돌아서며 "캭" 하고 크게 침을 뱉었다. 보란 듯이 아주 크고 지저분한 소리를 냈다. 그래서인지 아무 말 없이 그 사람도 돌아서 몸을 씻었다.


아무리 한 올의 실타래도 없이 다 벗고 알몸을 드러내는 우리나라 사우나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몰지각과 안하무인의 무례만은 가려야 하지 않을까? 사우나에서 왜 그리들 다른 사람들보다 한 발 앞서 몰지각해지고 한 걸음 더 뛰어 더 무례해지려 할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첫째, 가래 뱉는 소리는 속으로 소리를 죽여가며 뱉어보자. 크고 길게 소리 낸다고 아무도 존경하지 않는다.

둘째, 코 풀 땐 제발 살살 풀어보자. 어쩔 땐 저렇게 코 풀고도 코피 나지 않나, 싶을 정도로 괴성의 부부젤라 소리가 난다.

셋째, 비누거품을 내면서 몸을 씻고 싶다면 샤워기 꼭지가 달린 벽 쪽으로 한 발짝만 더 다가가자. 샤워기 꼭지를 크게 올린 뒤 널찍한 공간에서 비누거품을 날리면 어쩌란 말인가. 나 같은 사람은 그곳을 피해 가려고 온 몸을 움츠려야 한다. 그럴 거면 집에서 배쓰 목욕하는 게 낫지 않나?

넷째, 건식 사우나에서 물 뿌릴 땐, 먼저 온 사람들에게 동의를 구한 뒤 뿌리자. '물 뿌려도 될까요?' 라고 묻는데, '뿌리지 마세요' 라고 말할 사람은 없다.


어느 날인가 건식 사우나에서 숙취를 달랠 때였다. 사우나 유리문이 열리고 나이 지긋하신 영감님께서 들어오셨다. 뜨겁게 달궈진 돌 앞에서 손으로 온도를 어림잡는 듯 했다. 이내 망설임 없이 바가지로 물을 퍼서 돌 위에 뿌렸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 바가지에 물을 퍼서 뿌려 던졌다.


아니, 물어보고 물을 뿌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난 사우나 뜨거운 거 좋아해서요.


내 귀를 의심했다. 자기가 뜨거운 사우나를 좋아한다고 해서 먼저 사우나 중이던 내가 왜 그 뜨거운 찜질을 참아야 하나? 정말 안하무인이 이런 거구나, 싶었다. 나는 바가지가 아니라 그 큰 물통의 물을 통째로 돌에 부었다. 성에 차지 않아 사우나 문을 열고 나가 냉탕에 물통을 집어 넣어 들어 올렸다. 사우나 돌들이 연신 어두운 연기를 뿜다 수증기보다 더 굵은 물을 튀기기 시작했다. 더 이상 뜨거운 열기가 돌에서 품어지지 않았다. 나이 드신 그분을 찾으려 했을 땐 자취도 보이지 않았다.


아파트 지하 커뮤니티 홀에 있는 주민용 목욕탕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날 관리사무소에 자진해 이실직고하고 사우나에 고장이라도 생기면 변상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다음날 십만 원인가를 부품 값으로 지불했다. 그리고 그 영감님은 이후에도 4년째 사우나에서 마주친다.


하지만 더이상 건식 사우나의 돌이 차가운 냉탕 물에 생명을 다 할 일은 생기지 않았다. "물 두 번만 뿌려도 될까요?", "네, 그러세요, 안 그래도 온도가 좀 낮네요."




15년 전. 스타트업이란 단어 대신 벤처기업이라는 호칭만을 사용하던 때. 드디어 몇 년간 개발비로 엄청난 돈을 퍼부었던 아이템이 시장에 나왔다. 그리고 생전 본 적 없던 큰 돈이 매달 회사 통장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자재비와 인건비로 그보다 조금 적은 금액이 이체로 쑤욱 빠졌다. 그래도 서너 달 입금과 출금이 반복되자 큰 돈이 쌓였다. "아~ 이래서 사업하면 다들 큰 돈을 버는구나.", 난 그 시절이 이후에도 계속될 줄 알았다.


Oh, No, No, No, Use a Towel.


학회 논문 발표를 제외한 목적으로 해외를 간 첫 경험이었다. 싱가포르에 공장을 둔 유럽계 부품업체가 비슷한 사양의 신개발 부품들을 나에게 보여 주려고 초청했을 때였다. 첫날 늦은 밤 호텔에서 맥주 한잔으로 잠을 청한 뒤, 다음날 아침 이른 시간 홀가분히 골프장을 향했다. 골프장이라곤 처음 가 본 게 싱가포르 그날 그곳이었다. 당연히 엉망으로 쳤고 1타에 여러 공을 치는 특혜를 받았지만, 골프장에 공만 실컷 기부하다 끝났다. 그리고 땀과 습기에 쩐 몸을 씻으러 사우나 락카에서 나왔을 때, 내가 들은 말이다.


인도계로 보이는 스태프가 한 손을 크게 휘두르며 웃으며 뛰어왔다. 그리고 주변에 널린 타월을 두어 장 집어서 내게 쥐어 주었다.


"아, 여긴 타월로 거길 가리는구나."



그때의 경험이 각인되어 핀란드와 러시아 출장 때는 능숙하게 타월로 거기를 잘 가렸다. 치마처럼 허리를 빙 둘렀다. 사우나라는 게, 아니 대중목욕탕이라 불리는 한국식 사우나, 서른이 되기 전까지 완전히 발가벗는 장소라고 당연시했고 조금도 이를 부끄러워 한 적 없었다. 그렇다고 외국 사우나에서 실수로 발가벗더라도 딱히 창피하지 않았다. 그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거기선 사우나에서도 최소한의 내 은밀한 거기를 가려줬을 뿐이다.


발가벗은 동서고금의 사우나에서 굳이 가려야 할 게 그곳의 부위 만이 아니다. 정말 사우나에서 가려야 할 것은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안하무인, 이기적 무례함, 비위생, 그리고 몰지각이다.


발가벗은 사우나에서 내면의 자신에 대한 자존감마저 굳이 벗지 말자. 그마저 남김없이 벗어 완전히 발가벗고 싶다면, 집에서 혼자 하는 배려를 해 보자. 당신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집에선 아무도 당신을 쳐다보지 않는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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