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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에서 너무 다른 남녀의 골프 DNA

[사장은 아무나 하나요?]

by 아메바 라이팅

인천 상륙작전에서 해안가로 진공 하던 한미 연합군의 진격이 이같았을까. 새벽 짙은 안개 속에 대규모 카트 부대가 3열로 도열했다. 새벽 술자리에 찌든 당나라 군대의 보병 같은 남자 골퍼들이 우르르 몰려온다. 스타트는 이내 담배연기가 사라진 안개를 대신했다.


인코스와 아웃코스 모두에서 6분 간격으로 플레이하기로 했다. 1번 홀에서는 멀리건없이 앞팀이 무조건 자리를 비우기로 약속했다. 그래서 4분마다 카트는 1번 홀로 진입해 타석 멀리 대기했고, 다들 어젯밤 깊은 술에 깊게 친해진 남자들끼리는 두세 카트를 건너 막걸리와 담배를 주고받았다.


행사 주최 측이 포토그래퍼를 준비해서 1번 홀마다 똑같은 포즈로 순간을 기념사진으로 남겼다.


1번 홀 사진은 언제 어느 팀이 포즈를 취해도 기념 사진이 똑같다. 국민학교라 불리던 시절에 차렷 자세로 곧추 세웠던 입학생 사진처럼, 드라이브를 발치 앞으로 내밀어 허리를 세운다.


나도 이 폼으로만 찍은 사진이 수십 장인데, 이상하게 사진 속 나를 제외한 인물들이 하나같이 비슷하다. 골프 치면서 사진까지 찍을 친분이면 손가락에 꼽을 정도니까. 일로 치는 골프에서 굳이 사진으로 흔적을 남기는 건 예의가 아니지, 라며 손사래를 흔들었기 때문이다.


남자 골퍼들 사진은 딱 두 버전이다. 위처럼 드라이브를 장전한 사진과 18번 홀에서 퍼터 든 사진이다. 잘해봐야 드라이브를 머리 위로 모은 정도. 그마저도 귀찮아서 정말 친하지 않으면, "에이~~", 한 소리 듣고서 드라이브를 얌전히 땅에 내린다.



그런데 여자들은 골프를 놀이하는데 쓰는 듯하다. 여자들의 골프 DNA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아내는 라운딩 전날이면 골프웨어를 몇 번이고 재어본다. 장갑, 모자, 볼까지 보는 것 같다.


아휴~, 골프장에서 누가 옷 본다고 그래.



적당히 하라고 핀잔을 약하게 주는데 아내는 옆집 멍멍이 짖는 소리인양 흘려 넘긴다. 아무 반응 없는 아내는 화가 나거나 짜증 난 거다.


사실 우리도 다 보네. 내가 잊어 먹었네.
그래 중요하지.



왜 골프 웨어를 보며 화를 내는지 이해가 안 된다. 난 락카 가서나 내 옷이 무엇인지 그때서야 아는데. 여자들은 참 피곤하게 공친다.


아내가 버디라도 몇 개 하는 날이면, 나는 카카오톡으로 아내와 일행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외울 때까지 받아야 한다. 뭔 사진을 이렇게나 찍나? 골프 DNA가 이상하다.



비 오는데 우리라면 "뭔 사진이야? 감기 들어. 들어가서 술이나 먹자."라며 서두를 텐데, 여자들은 저런 기념사진을 골프장에서 찍는다. 골프 DNA가 달라도 참 다르다. 골프장을 십분 잘 활용하는 유전자를 가졌다.


햇빛 좋아 상쾌한 날에는 페어웨이에서 저런 사진도 찍고 놀더라. 참 이상하다. 우리라면 카트로 뛰어가 장비 두어 개를 챙겨 오거나 서로 경쟁심에 눈이 돌아 남이 친 공을 슬며시 관찰할 텐데.


게다가 얼마나 사진 찍는 스킬이 좋은지 팔로우가 끝나는 순간을 기차게 잘 잡아 찍는다. 여자 골퍼들은 참 신경 쓸 일이 많지만 잘하는 것도 정말 많다.


남자는 파5처럼 골프를 친다. 즐긴다고 보이지만 12홀쯤 돌면 게임이 된다. 파5에 양파 없이 끝내려고 먼 거리를 쉴 틈 없이 쪼아 가는 스타일로 골프를 즐긴다.


하지만 파3는 대기도 있고 시그널도 주고 동네 사랑방이다. 말도 많고 술도 마시고 남자들은 담배 필 여유도 가진다. 그 시간에 여자들은 사진 찍고 경치에 감탄한다.


나나 친한 친구들은 레이디 티 때문에 느려진다는 이유로 여자 골퍼와 동반 라운딩 하는데 수동적이다. 반기지 않는다. 나이가 이제 오십이 다 되어도 금성에서 온 별난 인류가 아직도 어색하다.


파3 없는 골프장은 쉴 틈도 보너스도 배려 없는 삭막한 골프장이다. 반면에 파5가 골프장에서 사라진다면, 게이트볼을 즐기는 양로원 앞마당이 나을 것이다. 파5와 파3가 절묘하게 공존해야 멋들어진 최상의 골프장이 된다. 여자 골퍼와 남자 골퍼가 공존하는 골프장에서 세상사는 재미를 즐기는게 행복하다.


다음번 라운딩 때는 친구들과 아내처럼 골프를 색다르게 즐겨봐야겠다.
다들 정색하겠지만 파3에서만이라도 기념 사진 하나 찍자고 우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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