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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10억? 그까짓 10억으론 생활이 안돼!

[사장은 아무나 하나요?]

by 아메바 라이팅

십억. 한글로 쓰면 두 글자뿐인데 아라비아 숫자로 쓰면 1,000,000,000원으로 0만 9나 그려야 한다. 숫자로 쓰려니 이렇게 번잡하다. 그만큼 큰 금액이다.


그런데 나는 십억 연봉을 단칼에 거부했다.



사실 1년 동안 일한 대가로 십억을 받는다는 게 적지 않은 대가임에 틀림없다. 반색하며 감사해야 할 기회다. 십억을 십 년 동안 받는다면 백억 이다. 10,000,000,000원. 무지 길다.


한 때 난 월수입이 48만 원이었다. 대학원 연구원 월급이었다. 아내와 둘이서 그 돈으로 한 달 생활을 해냈다. 그것도 무려 4년 동안. 48만 원으로 어찌 사나 싶어 양가의 부모ㆍ형제들이 항상 안쓰러워했다. 그 당시에도 고졸 직장인이 100만 원 가까이 받았다. 48만 원은 비참했다.


아내는 버스 서너 정거장은 걸어 다녔고 나는 4년 동안 점심을 굶었다. 가족 외식은 내 월급날. 48만 원을 받던 날. 집 앞 떡볶이집에서 맥주를 실컷 마시는 게 유일했다. 그 집의 맥주와 떡볶이가 유난히 쌌다. 둘다 물을 듬뿍 탔다.


극적인 인생 역전이나 성공 스토리를 읊으려는 게 아니다. 월급으로 받는 돈이 많으나 적으나 이상하게 생활하는데 충분하지 않은 것이다. 풀리지 않는 월급의 미스터리다.


월급을 48만 원 받을 때나, 400만 원 받을 때나, 천만 원을 받을 때나, 2천만 원 넘게 받을 때나, 아내는 항상 월급이 생각보다 넉넉하지 않다고 말했다.


아니, 저금한 게 이렇게 없어?



몇 년 전 아내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도대체 연봉으로 3억을 받아 주는데도 일 년 저금한 게 이것밖에 안돼?", 충격이었다. 난 추측으로 1년에 1억 이상 아내가 저축하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세상에. 저금한 돈을 보고 기가 찼다.


공제금에 비해 수령하는 급여가 높다 보니 연초마다 수천만 원씩 연말 정산금을 뱉어내야 했다. 어지간한 직장인들의 연봉만큼 적지 않은 돈이었다. 그때마다 아내는 지난해 동안 모은 돈을 세금으로 내야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남는 돈을 몇 년이나 모아도 자동차 하나 살 돈이 되지 않았다고 했다.


아내가 꾸리는 살림살이나 내가 준 수입을 어떻게 쓰는지 단 한 번도 참견한 적 없었다. 워낙 회사 업무에 정신 팔고 다니던 사람이라, 아내의 집안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래서 더 너무 하다는 원망이 있었다.


아내는 갑작스러운 나의 말과 행동에 섭섭해했지만, 한편으로 자신도 답답했는지 서러워했다. 아내가 울먹이며 내가 원하지도 않았던 지출 내역을 손으로 하나씩 써서 설명했다. 난 아내가 너무 하다는 생각에 들은 체도 하지 않았고, 더 이상 대화가 되지 않는데 화가 난 아내가 돌연 사라졌다.


평소 아내는 아무리 나와 심한 부부싸움을 하더라도 절대 친정을 찾아가는 일이 없었다. 그런 모습을 늙은 부모에게 보이기 싫다고 했다. 항상 잘 사는 딸의 모습만 보여주고 싶다고 했었다.


며칠이 지나도 연락이 없었고 아들에게 "네 엄마 연락되니?", 라고 물어도 아들은 매번 "몰라. 안 해 봤는데?"라고 답했다. 엄마가 없는데 걱정도 안 되냐고 야단치기도 내가 잘한 게 없어서 말을 삼켰다. 나쁜 놈.


일주일이 다가오는데 이제는 별의별 걱정이 떠올랐다. 어디 납치됐나? 차 사고 났나? 자살이라도 한 거 아닌가? 방정맞았다. 그때 휴대폰을 들고 아들이 내게 와서, 다짜고짜 받아 보라고 말했다.


넌 어디 못나서 마누라 살림하는 걸 간섭하노?



고향집에서 아들에게 건 전화였다.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아 내 번호로 전화한 적이 없었다. 손자에게 전화해 나와 통화한 것이다. 경상도 사투리의 흥분된 노친네 음성에는 깊은 화가 묻어 있었다.


세상 제일 못난 놈이 마누라한테 월급 주고 그 월급 어디 썼냐는 놈 아이가?
애미가 어디 친정에라도 빼돌맀나?
또 그러면 어떻노!



결혼 후 아내가, 없는 살림에도 시댁에 용돈을 보냈다. 고맙다는 마음과 함께, 자격 없다 여기던 고향집 부모만 용돈 받던 상황이 싫었다.


처가에도 시집이랑 똑같이 해라. 차이 두지 말고.



감동받을 아내를 상상해서 생색낼 채비를 하는데, 아내는 이렇게 말했다. "안 그래도 그러고 있어. 고마워.", 아...아내는 이미 잘하고 있었다.


그 날의 해프닝은 아내가 친정 대신 시집을 찾은 현명함에 나는 두 손 두발을 들고 항복했다. 그리고 앞으로 다시는 어디다 얼마나 쓰는지 묻지 않겠다, 라고 약속했다.


나는 아직도 그 약속을 지키고 있다. 아내도 허투루 낭비하는 일 없이 내가 벌어다 준 돈을 소중히 사용했다. 소득이 적으면 적은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항상 빠듯하다는 진리도 나는 받아들였다.


아이는 커가고 보는 눈과 누리는 것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인정하라고 아내가 설득했다. 내게 왜 돈을 버냐고도 물어봤다.


그래, 내가 돈 버는 이유라?
처자식 잘 먹고 잘 입고 잘 다녀라고 버는 거다.
처자식이 돈에 굴욕 받지 말라고 버는 거다.



나는 갑자기 월급이 커지면서 아내에게 두 가지를 바란 것이다. 저금을 많이 하면서도 돈 걱정 없이 잘 살기를 바랐다. 정중동보다 수련하기 어려운 바람을 나는 강요한 게다. 아이고, 참 어렵다.


그래서, 난 회사 재무부서에서 연봉 10억을 제안 올렸지만 난 거절했다. 더 받아도 더 나을 게 있을까, 의문이었기 때문이었다. 48만 원 때나 2천만 원 받을 때나 우리 가족의 행복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더욱이 돈문제로 부부싸움을 해 본건 오히려 연봉이 3억 일 때였다. 부질없다고 생각했다.


아내도 잘했다고 말했다. 연봉 10억 받으면 자기가 더 의기소침해지고 언제 다시 내가 "돈 어디다 썼어?"라고 묻는 날이 올까 봐 싫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최근 여름이었나? 아내가 슬쩍 흘려 말을 꺼냈다.


연봉 10억 받더라도 7억씩 저금하진 못하겠지?



왜 못해! 7억보다 더 많이 해야지, 목구멍 아래에서 분노한 중저음의 잔소리가 입 밖으로 탈출하려 했다. 가까스로 잘 막아냈고 나는 소리 내어 말했다.


이젠 나 쉴래, 미안해.
자세한 건 내일 말하자.


아내는 자기 회사를 차렸고, 토요일 주말인데도 오늘 거의 종일 일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피곤에 지쳐 침대에 몸을 묻으며 포근히 내게 말했다.


자기 그동안 정말 고생했어.
정말 고맙고 감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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