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사놓은 프로이트와 라캉의 정신분석학 책을 읽다가, 강박 정신증 즉 일반인들이 쉽게 부르는 강박증 부분을 읽었다. 그리고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라는 영화의 잭 니콜슨도 떠올랐다.
내가 겪었던 강박증과비교해 보며 희미한 과거를 떠올렸다.
집 현관문, 회사의 내방 문을 닫고 나왔던가, 에 대해 돌아서기만 하면 늘 확신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안에 별다르게 중요한 게 든 것도 아니다. 단지 닫아야 하는 장소가 닫혔는지에 대해 확신 들지 않으면 나는 불안해 졌다.
다시 돌아서서, 어쩔 때는 고속도로를 달리다가도 돌아간 적이 있었다, 문이 닫혔는지와 잠겼는지를 확인하려고.
그것도 눈으로만 확인하는 게 아니라, 손바닥을 문 가장자리와 벽이 동시에 닿도록 밀어 눌러 본다. 완전히 평면이라고 몇번이고 확인해야만 안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손바닥을 열 번은 대어 본 뒤에야 갈길을 다시 갔다.
난 샤워를 하루에 세 번 이상 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한번, 저녁에 한번, 자기 전에 또 한 번. 그래서 속옷도 최소한 하루 두벌은 입고 벗었다. 늘 피부가 건조해졌고 다시 샤워를 불 렀다. 특히나 아내의 생리 시기에는 유난히 온몸이 간지러워 자다가도 일어나 샤워를 했다.
어쩔 때는 화장실에서 나오지 못할 때도 있었다. 일본 출장 때 사건이다. 공중 화장실이 일본이라는 이미지에 맞지 않게 너무나 지저분했다. 손을 씻고 닦을 페이퍼가 없었는데, 하는 수 없이 양복 셔츠 뒤쪽으로 손을 문질렀다.
화장실 스틸 손잡이를 엄지와 검지만 잡아 살짝 돌렸는데, 쉽게 도는 듯하다가 빠른 속도로 제자리로 돌아왔다. 둥근 손잡이 위로 내 손가락이 지나간 자국이 나타났다. 너무 찝찝해 다시 두 손가락으로 힘껏 눌러 돌렸지만 또다시 강한 탄성력으로 제자리로 복귀됐다. 세면대로 돌아가 다시 두 손가락을 씻은 뒤 또 시도했고 마침내 성공해 화장실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사업상의 분쟁이나 악질적인 상대의 이기심에 치를 떨 일이 생기면, 난 최악의 시나리오를 수십 가지 버전으로 떠올린다. 그리고 그 가운데 합리적으로 펼쳐질 것 같은 느낌의 버전에 대해서는 무한반복으로 떠올리고 떠올린다. 그러다 보면 예상되는 어려움을 대처할 방법을 찾아내기도 하지만, 반대로 상대에 대한 증오심이 무한으로 확대된다. 막장극의 클라이맥스에 나올 장면들을 수십, 수백, 수천번 반복해 떠올리며 상상으로 응징했다.
순서대로 보면 확인 강박증, 오염 강박증, 강박적인 생각의 반복이 중증이었다.
반면에 반복행동 강박, 정렬행동 강박, 수집 강박 증세는 거의 없었다. 매우 너저분했고 무규칙적이었고 과감했다. 단지 나는 매우 꼼꼼하고 기억력이 뛰어나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뛰어난 두뇌로 인해 오염, 확인 및 상상 강박이 발전했고, 기억과 행동 패턴으로 일어나는 강박은 두뇌활동으로 충분히 대체된 것이다.
한때 아내와 아들이 이런 나의 집착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다. 늘 나로 인해 내가 강박하는 점, 현관이 정말 열렸나?, 등으로 멀리 해외에서도 불안해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했다. 게다가 십 여벌의 속옷을 일주일에 두세 번씩이나 빨래해야 했는데, 이를 두고 몇 번이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나마 다른 강박은 나 스스로를 괴롭히는 증세라서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아내의 고충은 이루 대체할 수 없었다.
요즘 나는 어떨까?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나의 강박 증세는 증상을 동일하게 보인다.단지 즐기며 증상을 행사한다.
말 그대로 강박 증상을 즐기며 행동한다.
집을 나설 때, 이미 닫힌 문을 또다시 확인해야 하고 여전히 손바닥으로 문 가장자리와 벽면을 함께 눌러야 하지만 나만의 규칙을 만들어 즐겁게 예식을 치른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오케이~~
음률에 맞게 흥얼거리면서 다섯 번 손바닥을 위아래로 눌러댄 후, 오케이 신호와 함께 나의 강박을 종료시킨다. 흥얼거리는 그 시간 동안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는 아내가 말한다.
현관 제대로 확인했지?
응! 다섯 번 확인했어. 가자~~
화장실에서 손을 씻어 나오는데 원형으로 돌리는 손잡이나 벽 커튼이 앞을 가릴 땐 "하낫, 둘!" 구호와 함께 빠른 속도로 헤처 나온다. 그리고 나면 1분만 지나도 잊어버린다. 알고 보니 화장실을 어떻게든 나오기만 하면, 오염 강박증상이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하낫, 둘" 구호를 외치고 과감히 뛰쳐나오기만 해결된다는 걸 찾아냈다.
강박 정신증으로 내가 고생하게 된 원인이 강박 상상의 무한반복 때문이었다. 십여 년 지낸 직원들과 동업자 친구가 사람이 해서는 안될 짓을 한 후부터 발생했다. 그래서 강박증은 그 충격에서 나를 지키는 전례 예식이 되었고, 그 예식적 강박 증상이 그나마 나의 자괴감을 희석시켜주었다. 그래서 더욱 강박 증상이 정교해지고 세분화됐다.
지금은 강박의 상상을 반복하지 않는다.
무한히 반복했던 죽임과 사살 등의 상상적 장면은 현실성 높게 정교하게 짜여갔다. 그래서 어쩔 때는, '이대로 실행하면 확실히 죽일 수 있겠구나, 완전히 파멸되겠구나.'라고 여길 정도였다.
어느 날, 수천번을 머릿속으로 죽이고 나니 더 이상 시나리오가 발전되지 않았고 곧 시시한 장면으로 전락했다. 시나리오가 업데이트되고 사실성이 높아져 갈 때 강박의 상상에 깊이 빠졌다. 하지만 업데이트는 무의미해지고 더 이상 발전될 시나리오가 없을 정도로 고도화되자 이내 흥미가 떨어졌다.
강박의 상상이 완결을 목표로 했다가 뛰어난 두뇌가 완결시키자 목표의식이 사라지고 강박의 상상도 무의미해진 것이다. 이후부턴 사살의 그 장면에는 그토록 증오하는 자들이 아니라, 어느 마블 코믹스 영화에서 본 악당이 대신 등장했다. 그리고 나는 비현실적인 마블 영웅이 되어 하늘을 날면서 초월적 힘으로 악당을 제압하는 상상에 빠진다. 어릴 적 선몽에서 꾸었던 기분 좋은 꿈을 다시 꾸게 되었다. 망상에 빠진 내가 불식의 미소를 씨익 지으면 아내가 묻는다.
왜? 뭐 재밌는 그림 그렸어?
응. 재밌는 그림 그렸어. 이걸 글로 써 볼래.
나는 유쾌한 상상을 단편소설로 촘촘히, 그리고 꼼꼼하게 써 가고 있다. 강박이 꼼꼼한 예식으로 바뀌었고 유쾌한 상상이 촘촘한 작품을 만들고 있다. 나는 이렇게 강박증을 꼼꼼한 재능으로 바꾸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