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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행 자동차, 망할 수밖에 없는 이유

[사장은 아무나 하나요?]

by 아메바 라이팅

몇 년 전인가, 유리창을 너머 건조한 태양볕이 내 팔뚝의 땀구멍을 괴롭히던 날이었다. 캘리포니아 날씨, 그것도 7월의 팔로알토는 사람 피부에 암덩어리를 만들기 딱 좋은 실험공간 같다. 산호세에서 부지런히 차를 몰아 오픈한 지 얼마 안 된 따끈한 매장으로 들어섰다.



와~~아아아, 이건 뭐지, 주체할 수 없는 이 썰렁함.


민둥이 차체가 바닥만 드러낸 채 매장을 차지할 뿐, 어떤 것도 내 눈을 사로잡지 않았다. 굵은 전력선 케이블, 배터리 샘플 몇 쪼가리, 시트 샘플 아주 여러 장, 그리고 히스패닉 아저씨. 전기자동차 참 별거 없구나, 싶은 게 멋모르는 실망감만 커졌다. 몇 주 지나면 Model S랑 두어 대 갖다 놓을 거라는데, 테슬라에 대한 신비감이 장난감처럼 격하됨을 느꼈다. 차라리 이런 매장이면 온라인으로 하지 그랬나, 무의식적으로 고개가 갸우뚱거렸다.


시승차가 있는데 스탠퍼드로 한 바퀴 돌까요?


아침 댓바람에 찾아와서 그런가 이 아저씨 시간이 많은가 보다, 라고 생각하고 그래 가 보자, 라고 말했다. 짙은 남색 모델이 주차장에서 충전 케이블을 끼고 있었다. 그리고 케이블을 걷어낸 뒤 나에게 도어 여는 신기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 2분 정도 도어 자랑만 늘어놓았다. 신기해도 그렇게 호들갑 떨건 아닌데. 운전석 문을 열고 세로 누운 터치스크린 자랑에 5분 정도 할애하더니, 이제는 운전석을 양보해 시동을 걸어 보라고 했다.


아무 소리가 없다.


나를 깜짝 놀라게 해 주려고 시동 알림음을 꺼 놓았단다. 그래서 정말 아무 소리도 진동도 들리지도 느껴지지도 않았다. 우와~~ 이게 전기자동차지! 우와~~ 이게 테슬라지! 감탄에 명치가 옹알이 치는 부대낌이 느껴졌지만 감동을 드러내면 이 아저씨에게 지는 것 같아 조용히 왼쪽 눈썹만 씰룩거렸다. 미국식 허풍끼로 "Beautiful", 한 마디 해 주고 테슬라의 감동을 내 몸으로 고스란히 받아 물아일체가 되었다.


"더 올려, 계속 올려 봐"


얼마 전 고속도로에서 1,000불짜리 딱지 끊었는데, 이 아저씨 테슬라 자랑에 계속해서 속도를 올려 보라고 한다. 핸들과 대시보드에도 손을 올려 보라고 다그친다. 내가 한국에서도 십 년간 운전한 시간을 다 합쳐도 거의 5시간이 될까 말까 한다는 사실을 말해줄까, 잠시 고민했다. 그런데 이것저것 시키는 게 많아 어쩔 수 없이 그를 놀라게 해 주었다.


나 사실 주차도 못할 정도로 운전한 적 거의 없어


테슬라는 정말 훌륭한 직원을 매장에 썩이고 있었다. 그 아저씨, 내게 하는 말, "테슬라는 어린아이도 운전할 수 있어."라며 걱정하지 말란다. 세상에 걱정하지 말라니. 엘론 머스크는 어디서 뭔 짓을 하기에 이런 인재를 매장에 시승 서비스나 시키는 직원으로 두나, 걱정이 눈 앞을 가렸다. 스탠퍼드 기숙사 도로를 한 바퀴 돌다 시계탑이 보이는 어느 학과동에 차를 세웠다. 함께 커피 한잔 했다. 물론 커피는 내 돈으로 사 주었고, 고맙다는 말보다 '테슬라 자랑은 이젠 그만'이라고 손사래를 쳤다.


나는 파트너 해외사의 실리콘밸리 직원들 도움으로 구글과 애플의 자율주행차 엔지니어들이 비공식적으로 모여 현업을 토론하는 컨퍼런스에 몇 차례 참석했다. 각자 회사에서 진행 중이던 자율 주행차의 모듈별, 프로젝트별 이슈와 해결책을 토론하는 미팅이었다. 지금 같으면 어림없는 상황이지만, 당시만 해도 다들 도긴개긴의 수준이었기 때문에 대놓고 서로를 까발려도 잃을 게 없었다. 가진 게 서로들 워낙 없었으니까.


두 번째 참석한 미팅에서 Korean Adivisor라는 명패를 가슴에 달고, 한마디 했다. 물론 한마디 하라고 해서 한 거지, 하고 싶어서 한 건 아니다. 엔지니어들이 떠드는 말은 나보다 걔네들이 훨씬 더 잘 알 테니, 굳이 내가 그 방면까지 도움을 줄 필요는 없을 듯했다. 나 혼자 5분쯤 떠들었나 싶은데, 모두들 고개를 들어 나를 쳐다보는 걸 감지했다. 아는 사람이 없어서 딱히 눈을 마주쳐 고정시킬 사람이 없다 보니 이리저리 눈동자 돌리다 그 방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감지했다.


그래서, 닥터는 우리가 헛발질한다는 얘기야?

한국 대기업들은 직원들, 특히 임원들, 사내 교육이라고 명명한 세미나에 돈을 많이 쓴다. 그런 자리에 나같은 사람이 강의하러 와 준다면 구색이 맞춰진다고 생각했는지, 내리 5년을 때마다 불렀다. 아마도 내가 큰 사고도 치지 않고 나 외에 또 다른 강사를 굳이 찾는 것도 귀찮아하는 교육 담당 업체의 직무 유기가 큰 역할을 한 듯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관에서 여러 대기업 임원들이 참석하는 산업동향 세미나에서 자율주행차 사업에 대해 발표하는 기회가 생겼다. 그런데 거기서도 쿠퍼티노에서 들었던 말과 똑같은 질문을 받았다.


그럼, 우리는 자율주행차를 하면 안 되는 거네요?



꼭 이렇게 튀기 좋아하는 나는, 혁신적 명제를 던져주고 그럴싸 한 답변으로 그들의 뇌를 정지시켰다. 그리고 그 뇌를 깨끗이 나의 궤변만을 받아들이도록 깔끔하게 세뇌했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는 경탄해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누구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라는 티를 내고 싶어 무척이나 지적인 고갯짓을 드러내기도 했다.


사람들은 자율주행 능력을 가진 자동차와 그 자동차의 운행을 지원해줄 스마트 도로를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자동차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점을 생각한다. 그게 뭐냐? 차량 사고다!


차량 사고가 나면 누구의 과실인가? 운전하지 않는 차량 소유주? 운전하지 않는 상대 차량 소유주? 아니면 자동차 회사? 아니면 도로공사?


그도 저도 아니면 정부에게 책임을 져 달라고 할 건가? 지금의 자동차는 차량에 의한 비정상적 사고 원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 운전자들 간의 귀책 분쟁으로 분석한다. 그리고 이를 두고 귀책의 비중을 따질 뿐 운전자가 책임져야 한다는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자율주행차는 그렇게 책임져야 할 운전자가 아예 없다. 이 사실이 자율주행차의 핵심 문제이다.


자동차 회사에게 지우자는 청중의 의견이 나오자, 자동차 회사 간부가 신경질스런 참견을 했다.


"세상 모든 자동차 회사들 다 망해요."


그제야 세미나 참석자들의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율주행차의 핵심이 무엇인지 그제야 그들이 깨달았다. 나는 그들의 두려움을 더욱 차갑게 해 줄 예언을 던졌다. 그리고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운전자 아닌 차량 탑승자에게 인명 사고가 생긴다면 사고 발생자마다 100억씩 손해 배상할 각오는 해야 할 겁니다. 미국 애들 호들갑 떨기 좋아하고 미국 변호사들은 그런 사람들 너무 사랑하잖아요. 4명이 탔으면 400억은 줘야겠죠? 그게 자율주행차의 비극입니다.


그 강연 이후 1년이 지났나, 캘리포니아 주정부에서 자율주행차의 과실과 배상에 대한 regulation code를 심사하자는 청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강연을 들은 누군가는 이 내용으로 학위 논문을 썼다는 인사말도 전했다.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인간의 본성을 힐난한 대목이다.


사람은 부모의 죽임은 용서해도 내 돈의 손해는 반드시 복수한다.



자율주행차가 교통사고율 0%를 구현하지 않는 이상, 물론 절대 불가능하다, 자율주행차 사업에 참여하는 기업들은 매일 밤, 매일 낮, 자율주행차의 동선이 깜빡이는 대형 전광판을 바라보며, 그들의 생사를 걱정해야 할 것이다. 기술과 이상과 인간은 같은 방향을 바라보지만 각자의 눈높이는 이기적으로 차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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