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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와 사업가의 차이? 스타트업은? 백수지!

[사장은 아무나 하나요?]

by 아메바 라이팅

TV 보는걸 워낙 좋아해서인지 별 흥미 없는 채널의 재미없는 방송도 지켜보는 덕후질을 한다. 지상파 방송국에서 공영성을 띄었다고 보이려는 듯한 스타트업 창업경진대회 프로그램들을 몇 번 본 적 있다. 그때마다 오금이 저리는 창피함과 오글거리는 억지에 곧바로 다른 채널로 리모컨 버튼을 두드리곤 한다. 참 브로커, 부티크, 컨설턴트는 물론이고 진위를 알 수 없는 전문가란 사람들이 많은 이 동네가 스타트업 창업의 세계다. 성공한 선배 사업가라고 출연하는 이들 중에 내가 아는 성공한 사업가는 없다. "저런 사람이 성공한 사업가인 것처럼 멘토를 하니, 신성한 창업의 입문이 양들의 놀이터 앞에 설치된 게 아닌가", 라는 안타까움이 든다.





사업가와 기업가의 차이를 아세요? CEO는 그럼 또 뭘까요?



6년 전인가. 고등학교 모교에서 후배들을 위해 동문선배의 강연회에 정기적으로 개최하는데 사업하는 선배들 가운데 나를 동문회에서 추천했다고 연락 왔다. 과학고 출신이라는 특이점 때문에 기업을 경영하는 동안, 동문의 도움이란 걸 체감해 보지 못했던 나로서는 두 가지 이견이 나를 망설이게 했다. 하나는 나처럼 동문의 도움을 못 받을 운명을 가진 사업가를 또 만들게 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라는 점과 이제는 과학고 출신의 사업가들이 많으니 비슷한 어린 세대에게 구원의 횃불을 비춰주는 것도 좋지 않을까, 라는 상반이었다. 아내에게 잠깐의 고민을 말하자, 아내가 아주 쉽게 답안을 정리해 줬다. "그냥 지방에 맛있는 거 먹고 놀러 가는 길에 가자!", 그래서 모교에 전화해 일시를 정하고 그날 임시 휴가를 내어 가족과 함께 강연을 갔다. 아니 놀러 갔다.


나도 저 나이에 이렇게 어려 보였나, 싶은 아이들이 한 움큼 강당에 자리를 채웠다. 과학고라서 그런지 전교생이 모여 앉아도 강당의 3분의 1 밖에 채우지 못했다. 게다가 이제 남녀공학이 되어 여학생이 보이다 보니 더 어려 보였다. 다들 나의 기습적인 질문에 조용해지더니, 선배라는 친근함이 그들을 편하게 했는지 이내 몇 가지 대답들이 손을 든 학생들 사이에서 튀어나왔다. 귀엽구나, 이 놈들.


사업가는 영업을 중심으로 수익을 창출하는데 집중해 사업체를 운영하는 최고 책임자를 말하고, 기업가는 관리와 재무운영을 중심으로 법인체를 경영하는 사람으로 구분한다. 물론 이건 나의 구분법이다.


내가 이렇게 일반인들이나 이 바닥 종사자들이 구분 없이 혼용해서 사용하는 기업가, 사업가, CEO라는 명칭을 애써 차별하는 이유가 있다. 초기에 사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회사가 성장함에 따라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가는 것을 지켜보았고, 나 또한 그러한 정체성을 망각하다 큰 혼란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야 사업가와 기업가가 다르다는 점을 확실히 알게 됐다. 그리고 그때 나는 이미 사업가가 아니라 기업가이자 CEO임을 자각하게 되었다.


이십여 년 전 난 기업가를 꿈꾼 게 아니라 사업가를 꿈꿨는데 말이다. 20년 동안 한결 같이 같은 회사를 경영하며 같은 업종의 일을 해 왔는데 나는 정체성이 달라졌다. 사업가에서 기업가로 그리고 CEO로.


과거의 벤처기업이나 요즘의 스타트업이 매출 급신장을 이루어 회사를 키워나가는 성장기에는, 창업자이자 사장도 사업가로서 회사와 함께 성장한다. 사업 아이템을 창출해서 개발하고 연구해 매출까지 달성하고 있으니 당연하다. 그리고 그 기업이 성장해 조직을 갖추고 그렇게 시스템화 된 조직이 영업활동뿐만 아니라 재무활동 및 기업의 공공성 보장 활동을 해 나가기 시작할 때, 사장은 기업가로 변신해야 한다. 말 그대로 기업의 경영을 업으로 하는 전문가, 기업가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창업자들은 사업가에서 기업가로의 입지 변경에 대해 동일한 선상에서 생각한다. 그리고 그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고서, 기업가로 일하는 자신의 롤을 오인해 사업가처럼 행세하며 기업의 건전성을 해치는 오너쉽 리스크를 행하게 된다.


TV나 창업보육센터나 악셀러레이터 가운데, 기업가로서 성공하기는커녕 기업가 문턱에도 가본 적 없는 이들이 대부분 자리를 꿰차 앉아 있다. 구글 어디에 몇백억 원에 회사를 팔았다더라, 어디에 아이템을 얼마에 팔아서 현금이 얼마라더라, 라는 식으로 카지노 놀음판의 수익처럼 떠들며 사업가나 기업가 행세를 한다. 우리가 보면 참 고만 고만한 사람들이 어디서 양 놀음을 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혹자의 기업가 동료가 이런 말을 술자리에서 웃으며 한 적 있다. "실제로 걔들은 자기들이 성공한 사업가나 기업가라고 착각할 수도 있어.", 아마도 이분의 말이 맞을지 모른다. 자신들의 무지와 입지를 제대로 안다면 TV에 출연해, 어린 스타트업 창업가들에게 그렇게무책임한 조언을 하지는 않았겠지, 라고 자위했다.


사업가의 덕목으로, 아이템을 찾아 분석해 시장에 적용하는 추진력과 혜안을 1순위로 꼽는다. 그리고 그다음은 없다. 영업력이니 투자유치력이니 하는 것은 자신과 회사의 능력이 아니다. 1순위가 가시화되면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자연의 순응일 뿐, 사업가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이 1순위마저도 운이 9할이다. 상식적으로 경험도 천부적 자질도 없는 사업 초짜가 시장이 환호할 사업 아이템을 찾아내 완성할 수 있는 내재적 재능이 과연 있을까, 라고 반문해 보면 설득된다. 그래서 사업가는 운으로 태어나 운으로 망하는 존재다. 그가 천부적으로 지니고 후천적으로 노력한 얻은 자질은 사업을 성공시키는데 1할의 기회밖에 제공하지 못한다, 나머지 9할은 모두 운이다. 그러니 사업가들을 두고 그 운을 부러워할 뿐, 그 이상을 존경할 필요가 없다. 그들이 말하는 멘토링은 그들 역시 경험해 보지 못한 TV나 책에서 주워들은 추측에 불과하다.


영업 행위를 벗어나 재무관리, M&A, 투자, 기업공개 및 상장, 전략적 해외 진출 등이 본업을 유지하는데 핵심적 업무로 자리 잡을 때, 기업가가 태어난다. 창업자들 대부분 사업가로 성공한 뒤 기업가가 되는 롤러코스트를 탄다. 물론 자신들은 전혀 이를 인식하지 못하지만. 그런데도 기업가는 기업가의 일을 하고 사업가는 사업가로서의 일을 해야 한다. 사업가가 기업가 흉내를 내면 사기꾼이 되기 십상이고, 기업가가 사업가의 티를 벗지 않으면 무책임한 경영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럼 CEO는 또 무언가? 까마득한 동문 후배들 사이에서 키 크고 예쁘장한데 참 인상 좋아 보였던 한 아이가 말했다. "회사의 모든 업무에 책임 지는 사람 아닌가요?", 입꼬리가 귓가를 향한 채 내게 물었다. 으음. 잠시 골몰하는 듯 생각하는 사람의 흉내를 냈다. 그리고 내가 생각해 온 CEO의 정의를 입 밖으로 소리 내 보았다.


CEO란 기업가들이 책임을 지우는 임무를 위해 만든 직책일 뿐이야.


비슷한 생각의 역습에 당황했지만, 의미는 비슷했다. 책임지는 자리지만, 책임이 강요된 자리를 만들기 위해 CEO를 만들었다. 그래서 해외 창업자들 가운데 CEO 직책을 맡지 않는 비신사적인 사업가들이 많다. 국내에서도 이사회 의장이니 등으로 비겁한 행보를 보이는 창업자들을 볼 수 있다. 나 대신 내세울 바지가 있다면, CEO란 직책은 더할 나위 없이 사업가인 창업주에게 행복한 팁이다. 반면에 바보 같은 기업가들이 CEO에 스스로 앉는 우매한 책임감은 반대로 칭송과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함을 절대 잊어서는 안된다.


그럼 이 글의 말미에 요즘 핫하게 사업하려고 결심하는, 결심한, 혹은 이를 실행 중인 스타트업 창업자들에게 묻는다,



스타트업을 시작한 여러분들은 그럼 뭔가? 사업가인가? 기업가인가? CEO인가?



결론적으로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사업가도, 기업가도, CEO도 아니다. 만일 자기 방 문이나 명패에 CEO라고 새긴 글자가 있다면 오늘 바로 지우시길 바란다.

여러분들은 아직 아무것도 아니다. 무색무취 무책자에 불과하다. 색깔도 향기도 책임도 없고 이를 바라는 사람도 없다. 벌써 이에 도취되거나 강박감을 느낀다면, 지금이라도 빨리 스타트업을 접는 게 여러분 인생에서 가장 잘 한 결정이 될 것이다. 여러분은 아직 취준생이나 백수 생활자와 다를 바 없는 무적자다.


자신이 닮고 싶고 또한 되고 싶은 인물과 분야를 동경하고 공부하고 도전하는 사람일 뿐이다. 미리 설레발에 빠져 자신을 사업가나 기업가처럼 착각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라며, 도전이 성공해 가는 길에는 항상 자신도 몰랐던 퇴로와 갈래길이 있었다는 진리를 잊지 말기 바란다.


그래서 사업가가 된 후에도 다시 일반인으로 돌아갈 수 있고 기업가로 나아갈 수도 있다. 그리고 갈래길을 보지 못해 기업가의 길을 달리면서도 사업가 로드인 줄 착각할 수도 있다. 길을 잃을 수도 멈출 수도 갈래로 빠질 수도 있고, 아예 그 자리에 멈춰 쉴 수도 있다. 모든 결정은 여러분이 하시는 것이다. 여러분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할 순간을 맞이한다면, 전문가라고 떠드는 다른 사람의 말은 참고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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