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포인트 화면을 원격으로 넘겨주는 무선 포인터가 작동되지 않는다, 라며 노트북이 이상하다고 여자가 하소연이다. 멀찍이 와인의 붉은 맛에 입술을 다시던 중년 남자가 얼른 고개를 돌려 상황을 파악한다. 다가가 두어 번 포인터를 눌러보다 물끄러미 노트북의 사이드 잭을 살펴본다.
포인터 센서는 어디 뒀어? 그게 없잖어?
3초간 멍하니 남자를 바라보던 여자가, 이윽고 자지러지는 파안대소로 넓은 거실을 밀물처럼 채운다. 두어 번 더 큰 자지러짐으로 거실 구석구석이 맑은 웃음으로 채워졌다.
기계는 거짓말 안 해. 사람이 거짓말하는 거지.
여자의 웃음소리는 멈추고, 대신 여자와 함께 일하는 주변 사람들의 파안대소가 다시 공간을 채웠다. 가늘지만 하이톤의 숨 넘어가는 웃음과 참으려 노력했지만 작은 숨구멍을 통해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맥주 거품 같은, 웃음이 함께 들린다.
그녀는 그렇게 꽝손이다. 그래서 더 큰 웃음을 안겨준다. 그녀는 걸어 다니는 바이러스요, 살아 숨 쉬는 페스트다. 그녀가 손대면 전자기기는 발광을 하고, 그녀가 몇 번 클릭하면 프로그램은 자기 기능을 잃어버린다.
그리고 그녀는 항상 푸념한다. 주변의 모든 기계와 전자기기들 가운데 항상 제대로 작동하는 게 없다고. AS 받아야겠다고. 하지만 어느 하나 고장 나거나 오류를 일으킨 기계도 프로그램도 전혀 없다. 그저 그녀가 꽝손일 뿐이다.
내가 즐겨 만나는 부부의 이야기다. 너무나 기계적인 공학자 출신 남편과 너무나 치명적인 Working virus 꽝손녀가 이십 년 넘게 살아온 단면이다.
그런 꽝손녀가 가끔 마이더스의 손인양 희귀한 황금을 빚어낼 때가 있다. 눈 씻고 다시 보면 꽝손녀의 무모한 워킹인데, 왠지 연금술사처럼 황금을 빚어낼 듯하다.
천재와 백치가 종이 한 장 차이라더니, 꽝손이 웬일이지?
이십 년 동안 신나게 육아와 취미생활에만 집중했던 꽝손녀가 문화살롱에 이어, 퍼스널 브랜딩으로 사업체를 세우더니, 컬러 세러피라는 분야까지 연달아 론칭했다.
"난 남편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어요."
컬러 세러피를 처음 론칭한 날. 퍼스널 이미지 브랜딩 고객에게 시도한 컬러 세러피가 눈물바다를 만들었다. 아무 생각 없이 웃으며 몇 가지 컬러를 고르던 여성을 앞에 두고, 그녀의 동료가 개인의 자아를 풀이하자 벌어진 일이다. 프로이트의 자연 연상법에 쓰이던 단어 선택법을 컬러로 바꾼 것이다. 단어를 선택할 때는 사회적 지위와 교육에 의해 자제되거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경향이 높아 해석 결과에 오류를 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컬러는 사회적 지위, 교육 수준, 타인의 시선에 제약받지 않는 매개체라서 자아를 분석하기에 더 훌륭한 툴이다.
연이은 론칭이 성공하자, 이제는 이런 콘텐츠를 유튜브 사업으로 열었다. 정교하거나 세밀하지도 않은 몇 번의 기획을 하다가 얼렁뚱땅 저질렀는데 어느덧 반응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