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사람들 가운데 세 번째 췌장암 발병자가 나타났다. 축구 K리그의 인천 유나이티드 유상철 감독이 결국 췌장암 4기 진단을 받고투병 중이다. 불과 나와 두 살 차이인데. 선수들의 눈시울을 적시더니 황달로 시작된 건강 이상설이 오늘 그 정체를 드러냈다.
2002년엔 정말 우승했어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거예요.
십여 년 전 지인의 술자리에서 유 감독님을 만난 적이 있다. TV 속에서나 봤던 월드컵 영웅을 체취가 느껴질 정도의 지척에서 바라보는 즐거움이 뇌리에 남는다. 식상한 접대성 멘트였겠지만, 친절하게 2002년 기억을 나누어주는 따스함에 감동받았었다. 그리고 겸연쩍은 웃음과 조각처럼 새겨진 미소가 그라운드의 호랑이를 귀엽게까지 느끼게 했다.
나는 오랜 시간 동안 학교 생활을 하다 보니 이십 대를 항상 선배들과 지냈다. 더욱이 71년생 90학번들은 친구같이 지천에 널린 친구 같은 선배들이었고, 그 또래의 유감독도 그런 친근감이 참 좋았다. 세대의 공감이 그에게 빛이 났다. 그래서 오늘의 뉴스가 가슴이 아프다 못해 나의 아픔처럼 미어진다.
반드시 이겨내어 그라운드에 다시 서겠습니다.
폴란드 전에서의 유상철은 호랑이었다. 그리고 당대의 다혈질적인 우리 세대였고, 누구라도 덤비면 가만 두지 않겠다던 우리들의 의열이었다.
나는 일본 소설, 영화, 드라마 마니아다. 아마 삼십 년 이상된 마니아일 것이다. 일본의 중세 우키요에에 충격받아 일본 문화를 공부했고, 공부하면서 일본의 문학과 예술에 심취했었다. 그리고 지금 히가시노 게이고에서 아쿠타가와상과 나오키상을 받은 현대 소설도 손에서 놓지 않는다. 아쉬운 플롯에 살짝 빈정 상했었지만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스미노 요루의 책도 인상 깊었다. 난 아직 젊은가 보다,라고 나의 연애감정에 흡족해했다.
췌장암으로 예상되는 중병에 걸린 사쿠라의 췌장이 소재이자 이야기의 출발점이지만, 실제로는 췌장암으로 여주인공 사쿠라가 죽는 게 아니다. 제목에서 추측하는 것과 달리 남자 주인공을 만나러 달려오는 길에 '묻지마 살인'의 피해자로 죽음을 맞는 이야기다.
췌장을 대신해 먹어줄 수 없지만,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에서처럼 췌장이 아닌 결말이 전개되었으면 좋겠다. 사람 사는 인생사에서 말기암으로 시한부 인생이 점쳐진 사람에게, 묻지마 살인처럼 누구나 부지불식에 이유 없이 다가오는 변환점이 와류를 만드는 게 우리 인생이다.
'묻지마 살인'이 아닌 '묻지마 로또', '묻지마 사랑', '묻지마 행복'이 오지 말란 법이 없다.
남태평양 어느 섬의 원주민들은 나무를 절대로 톱이나 힘으로 쓰러뜨리지 않는다는 대목이 어느 소설에 등장한다. 매일 밤 동네 산등성 위에 사람들이 모여 나무를 향해 "죽어라, 죽어라, 쓰러져 죽어라"라고 큰 함성을 외치면 나무는 곧 병들고 뿌리의 힘이 빠져 쓰러지고 만다고 한다.
사람의 간절한 바람이 소리와 마음만으로도, 물리적 질서와 생명의 에너지를 이렇게 바꾸어 놓는다.
우리도 다 함께 상상의 산등성이에 올라 다 함께 두 손을 입에 모아 고래고래 소리 질러 보자.될 때까지 응원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