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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바 라이팅 Nov 23. 2019

베르나르 뷔페는 자신의 장기를 해체해 죽음을 완성했다

정우철 도슨트와 함께 한 문화살롱

도슨트계의 신성으로 불리는 정우철 도슨트가 베르나르 뷔페에 대하여 문화살롱 행사를 가졌습니다. 내러티브형이 아니라 시네마스코프형 도슨트로 이름 붙여드리고 싶었습니다.


1928년 태어나 생각보다 많은 72세에, 즉 1999년에 많은 죽음을 클루를 남기고 자살했습니다. 애나벨과의 러브스토리도 좋지만, 이 글은 뷔페의 그림에 대해 느낀 점을 중심으로 하겠습니다. 물론 저의 느낀 점이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평이한 구도

뷔페의 걸작 중 하나인 1955년작 <와인 한잔과 여인>인데요, 어디선가 눈에 익은 구도가 눈에 띌 것입니다. 에드가 드가의 작품 속 여인이 좌우로 대칭된 모습이 떠오릅니다. 장 베로가 패러디한 드가의 작품은 뷔페와 거의 흡사한 구도를 보입니다. 단지 압생트가 와인이 바뀐 정도라고 봐야죠.


뷔페가 실험 정신이 한창 높던 1947년 그린 <꽃게와 남자>과 <닭을 들고 있는 여인>을 보면 세잔의 다중 시점 기법이 엿보입니다. 테이블이 다른 정물에 비해 시각이 완전히 다르죠.



저는 뷔페의 광대 시리즈를 볼 때마다, 얀 반 에이크의 플랑드르 르네상스 작품이 보였습니다. 새로운 희망과 두려움, 그리고 비애를 담은 광대의 모습과 플랑드르 부부가 닮지 않았나요?나만의 생각인가요?


추상표현주의가 아닌 구상미술이 가지는 원천적 한계가 이 같은 구도의 보편화라고 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죽음 시리즈 24편에 대한 잘못된 해석

파킨슨병과 오른손 골절로 죽음을 결심한 베르나르 뷔페가 죽음을 클루로 남기는 작품을 24편이나 남기고 자살합니다.


<부르타뉴의 폭풍>에서는 침몰하는 배와 흑까마귀를 그려 넣어서 대놓고 자살할 거라고 광고를 하는데요, 압권은 죽음 시리즈입니다. 심장, 위장, 태아 등을 내보이고 근육만 남기든가 하는데 뷔페 혼자만이 아니라 애나벨까지 등장시킵니다.


사람들은 빨간 심장만 보고서는, 생명에 대한 희망을 그렸다고 정형적 해석을 합니다만 제 생각에는 어불성설의 억지라고 봅니다.


사랑하는 애나벨과 회로한 뷔페가 죽음의 리튜얼 예식을 차곡차곡 준비하는 과정에서 남긴 죽음  시리즈는, 혹독한 죽음의 예식을 그렸다고 생각합니다.


장기 하나씩을 따로 그린 개별 작품들, 하늘로 올라가는 까마귀와 새들이 뷔페의 주변을 에워싸는 모습은 뷔페 자신을 하늘에게 맡기는 생명의 해체를 그린 것이라 봅니다.


사랑하는 애나벨이 태어난 적 없는 태아만을 품은 뱃속은 미래가 아닌 과거의 해체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을 달리 합니다.



베르나르 뷔페는 죽음을 앞두고 철저히 생명을 없애려고 마음 먹었고, 그래서 죽음 시리즈를 통해 자신과 애나벨의 장기를 해체하였습니다.



참고로  이 내용은 정우철 도슨트의 강연 내용과는 무관하며, 오로지 작가의 개인적 사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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