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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바 라이팅 Nov 24. 2019

동북아 3국에서 한국 남자가 제일 불쌍한 이유

지형학적 열세가 체형을 변화했다

십사 년 전, 중국에 처음 살았을 때였다. 지저분하고 무지하고 천편적으로 공산당이 우선하는 불평등 사회구조에 놀랐다. 그리고 촌스러운 남녀의 패션과 낙후한 위생개념이 우스웠다. 하지만 놀라 어안이 없었던 것이 또 하나 있었는데, 짧은 상체에 길고 날씬한 다리를 가진 여자들의 체형이었다.


당시에는 사업차 일본 출장도 잦아서, 일본 사업 친구들의 안내로 도쿄 밤거리를 오랫동안 깊숙이 배회했다. 앞니를 오물거리며 혀끝으로 탐미하는 것에 익숙한 일본인들의 습성이 뻐드렁이를 만들었고, 소화불량으로 왜소한 몸을 유전시켰다. 하지만 배 나온 남녀가 적고 큰 가슴의 일본 여자들이 거리를 활보하는게 특별했다.


한ㆍ중ㆍ일 삼국에서 한국 남자들이 제일 저주받았구나.



일본과 중국에서 술 한잔 거하게 농짙은 안주를 씹을 때면, 우리 한국 남자들이 깊은 한숨과 함께 뱉은 말이었다. 


왜 한국 여자는 중국 여자보다 다리가 짧고 일본 여자보다 가슴이 빈약할까?




#초식동물과 평야지대의 차이

유럽에서 고속도로를 달려본 사람이라면 느낄 것이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과 풍부한 수자원이 이색적이다. 수자원이 풍부하지만 대륙성 건조기후로 인해, 강한 태양과 그늘의 서늘함이 공존한다. 동물이나 풀이나 사람이나 참 살기 좋은 곳이다.


유럽에는 수많은 초식동물들이 탁 트인 평원에서 풍부한 풀과 물을 먹고 자랄 수 있었기 때문에, 개체수가 막대했고 생존 경재율이 높아 유전적으로 월등했다.


지중해와 대서양의 온대성 어류와 한대성 어류로 인해 서부와 남부 유럽은 육류와 해산물 요리가 더욱 풍부해질 수 있었다. 또한 영주 봉건제 체계에서 부족한 물자를 도저히 자급할 수 없었기 때문에, 중세 이전부터 상공업이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조그만 도시마저도 군주가 군림하던 시대를 수백년 겪으면서, 향략과 여유에 대한 경험치가 유럽 각지의 특산물을 전역에 퍼지게 만들었다. 따라서 육고기와 해산물 위주의 식자재가 천년 넘게 식탁을 차지했다.


그래서 유럽인은, 짧은 위장으로 인한 긴 하체가 두드러졌고 특정 시기를 견디기 위해 체지방을 따로 똥배 속에 보관할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서구인들은 배가 나와도 윗배나 배 전체가 나올 뿐이다. 올챙이배는 없다.



#중국인은 한민족과 다르다

송나라 통일 후 중국의 강남 지대가 개발되면서 해산물, 벼와 쌀, 조류, 육류 등의 음식 자원이 양적으로나 수적으로 급팽창했다. 중국인인 한족이라서 혹은 회족이라서 다리가 길거나 날씬한 게 아니다. 얼굴만 동양인일 뿐, 북방 중국인의 몸, 특히 여자들의 몸매, 은 북유럽 여자들과 다르지 않다.


전족을 통해 질근육을 높이고 성적 쾌감을 도모했던 중국인들에게 북방 여인은 긴 다리와 기마 습성으로 인한 후천적 몸매와 음부의 약근력이 큰 매력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우리 동양인의 신체ㆍ식습관 특징을 말하면서 중국인을 유사 범주에 포함시키는 것은 매우 무지한 간주이다.



#일본인은 한국인과 동일한 저주를 받았지만, 후천적 상공업으로 극복했다.

일본과 한국은 산악지대가 많고 평야가 적은데 해양성 고습한 기후까지 유사하다. 게다가 사시사철의 계절 변화가 뚜렷해 특정 작물을 단한번 농사지어야 하는 한계를 보였다. 우리가 어린 시절 아름다운 금수강산이라 배웠던 이러한 지역적 특색이 우리 민족에게 저주였다.


첫째, 벼농사 외에는 특별히 기후를 버터낼 작물 농사를 할 수 없었다.

둘째, 한 작물 위주로 연중 한 번만 농사를 지을 수 있어서 작물 식량이 부족했고 게다가 보릿고개처럼 이마저도 계절마다 공급량이 달랐다.

셋째, 부족한 평원과 풀초로 인해 초식동물의 종류와 개체수가 매우 적었다.

넷째, 부족한 초식동물로 인해 육식성 동물의 먹이사슬에 인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 사람은 초식동물의 고기를 먹을 뿐, 육식동물의 뼈와 고기는 먹지 못한다. 따라서 고기 구경이 매우 힘들었다.

다섯째, 험한 지세와 산맥으로 인해 해산물의 내륙 유입은 사실상 보편화될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저주받은 지역에서 저주받은 식생활로 수천 년 동안 불균형적인 식단에 고통받았다. 그런데 쌀 외에는 그나마 그 식사량도 적을 수밖에 없었다. 태부족한 식사량도 연중 공급이 불균형해서 보릿고개 등에는 추수시기에 배속에 저장해 둔 체지방을 때우며 견딜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한국인은 후천적 유전자 변이가 일어나, 비만의 초기 증상이 똥배라 불리는 아랫배가 튀어나오게 되었다.


유럽이나 중국 요리는 튀기기, 삶기, 찌기, 소스로 데치기, 등으로 원재료의 식감과 향을 느낄 수 있는 재료 자체의 음식이 많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전통요리는 천편일률적으로 국물과 수분이 과도하게 많은 음식뿐이다. 앞에서 말한 이유로 인해, 극히 부족한 식자원으로 많은 사람이 더 많은 끼니를 때우게 하기 위해서 물에 식자재를 우려내는 음식이 많았던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17세기  에도시대부터 지방봉건체계가 평화시기를 맞으면서 상공업, 운송업, 출판업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했다. 그래서 일본은 사실상 유럽처럼 각지의 특산물이 일반 서민에게까지 공급될 수 있었다. 특히 도쿄는 17세기 대화재로 인해 집안에 불씨를 두지 못하게 제도화하면서 매 끼니를 전문 음식점에서 사 먹었다. 그러니 당연히 식습관이 고르고 다양해질 수밖에 없었다.


예부터 가난이란 곧 배고픔이었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 못한다는 말은 거짓이다. 일본의 에도시대 사례를 보면 그렇다. 연암 박지원도 연암일기에서 중국 각 도시마다 거리를 두비는 수레를 동경했다. 그 넓은 중국 대륙이 수로와 수레에 의해 물자가 혈류처럼 빠르게 흘렀기 때문이다. 


태어나보니 금수저였던 유럽과 중국인, 후천적 제도로 배를 곪지 않았던 은수저 일본인, 이도 저도 아무것도 없던, 아니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던 한민족을 보면 애달프다.


나는 한겨울과 한여름 실리콘밸리에 도착할 때마다, 이런 말을 동료에게 던지곤 했다.


금수강산 아름다운 사계절은 개뿔.
사계절이 있다는 건 저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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