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메바 라이팅 Dec 06. 2019

외국어를 잘 한다는 것, 기능일 뿐 재능이 아니다.

우리가 그들에겐 외국인일 뿐이다.

나는 영어, 중국어, 일본어, 불어, 독어를 할 줄 안다. 한국어를 쳐 준다면 6개국 언어를 듣고, 읽고, 쓴다.


정확히 말하자면,

영어, 일어, 중국어, 불어, 독어는 말할 수 있다. 영어, 일어, 중국어, 불어는 읽을 수 있다. 그리고 영어, 일어, 중국어, 불어는 들을 수 있다. 물론 한국어는 모두 가능하다. 


나에겐 특별한 언어적 재능이 천부적이다. 단어를 쉽게 빨리, 그리고 한 번에 많이 잘 외운다. 그리고 여러 언어들의 공통된 점을 빨리 찾아내 깊이 기억한다.


영어를 배운 뒤 불어와 독어를 공부했는데, 세 언어의 비슷한 철자와 단어를 세트로 기억하면 수십 년이 지나도 잊지 않았다. 한국어를 기반으로 중국어와 일본어 단어의 발음을 한 세트로 외우니, 동북아 3개국의 어느 술집을 가서도 노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새로운 언어를 공부한다면, 구사 가능한 언어는 급속히 늘어날 것이다.


하늘이 천부적 재능을 줬는데, 현실은 나에게 평균 이하의 환경을 줬었다. 불어는 대학 1학년 방학 때 겉멋으로 한 달을 학원에서 배웠는데, 다니다 그만뒀다. 그때 7만원했던 불어 학원비를 부모님이 내어주지 않아서다. 불어가 대학 교과목이나 내게 그려진 장래와는 무관하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학교 경험이 없던 부모가 매우 불쾌해하며 내린 결정이었다.


더러워서 혼자 한다!



더러워서 혼자 공부했다. 대학 등록금도 내지 않는 사람들이 고작 그 한 번의 사치도 봐주지 않는 무식에 대한 반발이었다. 난 4개월 만에 프랑스 르 피가로와 르몽드를 읽었다. 당시 영어 타임지를 보듯이.


그다음 오륙 년 후 공부한 게 일본어였다. 결혼 뒤 대학원 박사과정 중에 독학했다. 당시에는 박사과정 수료 코스로 제2외국어를 합격해야 했다. 생활비를 아끼려고 독학했다. 3개월 공부하고 나니 시험 걱정을 잊었다. 그런데 더 공부해보고 싶어 3개월을 더 했다. 마이니치와 산케이를 한 달간 읽고 난 뒤, 더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이렇게 일본어와 한국어를 꿰뚫고 나자 다시 오륙 년 뒤 배운 중국어는 덤이 되었다.


사업이 한창 기를 펼칠 때. 중국에 진출한 국내 대기업을 따라 협력업체로 나도 따라나섰다. 우리나라로 치면 사업자등록증인 영업집조부터 시작해서 공장 부지선정, 공사계약, 공장 신축, 설비 인수, 시생산에 이르기까지 현장에서 꼬박 4개월을 지냈다. 한국에서 중국으로 출국하던 며칠 전. 포켓 중국어 회화책을 샀다. 수첩보다 작은 포켓 단어, 숙어, 문장집이었다.


난 중국어라곤 니, 어얼, 싼, 쓰, 까지만 알았다. 그리고 한족과 조선족 잡부들이 매일 사고 치는 신축 공장을 감독하면서, 두 달 후엔 조선족 통역 없이 혼자 욕설을 퍼붓고 난리 칠 지경이 되었다. 당시 외국인 투자자라면 지역 당서기들이 갖은 아양과 환대를 퍼부을 때였다. 우리 경제구의 당서기가 나에게 식사대접을 하면서 샥스핀과 수정방으로 낮술을 이었다. 그리고 나를 만날 때마다 말했다.


외국인이 이렇게 중국어를 빨리 배우는 사람은 처음이다. 총명하다.



조선족들이 쓰는 중국어는 학식 높은 한족이 쓰는 말과 달랐는데, 나는 한족들과 부대끼며 한족식 중국어를 익혔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쓰는 말에서 공산당식 언어구사가 보인다고 들었다.


한국어와 일본어에 해당되는 중국어를 들을 때마다 세트로 발음을 외우고 발음의 변형법을 찾아냈다. 그러다 보면, 언어는 암기가 아니라 분석의 지식 수집이 된다. 조금 더 지나면 수많은 단어, 숙어, 문장이 스펀지처럼 마구잡이로 머릿속에 저장되어 버린다.


그리고 이십 년 가까이 지나  가끔 일본어, 불어, 독어가 필요할 때 약간의 버퍼링 타임만 지나면 이십 년 전 기억이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몇 시간, 며칠이 지나면 나도 모르게 말하고 그들의 말이 들린다.



언어를 배우고 현지 파트너들과 대화하고 돈이 걸린 협상을 하다 보면, 좋은 말이 오가는 시간이 없다. 대화의 시작과 끝뿐이다. 싸우고 언성 높이고, 구슬리고 회유하는 대화가 전부다. 그러려면 그 사람을 알아야 하고 그 사람이 사는 사회, 문화, 환경을 알고 이해해야 한다.


그러면서 알았다. 언어는 수단일 뿐, 문제는 교양과 지식이었다.



미국의 파트너들은 대부분 변호사, 연구원, CEO,  Ph. D. 들이었다. 나는 유학파가 아니라서 사용하는 단어나 표현이 문어적이고 구식이다. 반면에 고급지고 교양 있으며 전문적이다. 그리고 미국 파트너들은 어리숙하고 무식하다. 전문 분야로는 고집이 있지만, 아집이라 여겨질 만큼 편협하다.


일본의 파트너들은 유식하고 다식하지만 전문성이 부족하다. 그래서 연애, 미디어, 책, 술, 격투기 등으로 잡학 다식한 대화를 많이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항상 표면적으로 결정하지 않는 못된 습성으로 인해, 대화로 일을 마무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럽 친구들은 촌스럽지만 세련된 매너가 이렇게 아이러니한 반어의 대치처럼 신기하다. 전문적이지만 박학하다. 킬링 타임이라는 전례를 이해하는 친구들이다. 물론 상대의 의도에 따라 다르겠지만, 부르주아들인 친구들이 귀족화 되려는 분투가 엿보인다.


외국어는 상대에게 화내고, 욕하고, 타이르고, 구슬릴 정도면 충분하다.
그 이상의 실력은 사족이다.

필요한 것은 상대를 사로잡을 수 있는 나의 품격과 상대에 대한 배려이다.



품격은 독서, 영화감상, 뉴스 이해로 쌓아 올려야 한다. 이렇게 고수의 향기를 드세우면 상대가 나의 품격에  위축되고 소위 주제를 일깨우게 된다.


하지만 배려는 나의 몫이다. 술 사주고 밥 사주고 용돈 주는 베풂은 동네 건달들의 저질 문화다. 배려가 아니라 매수다.


상대의 언어문화, 식습관, 에티켓, 사회관계 문화 등을 채집하는 노력과 함께 무조건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한다. 문화와 관습을 분석하려는 시도는, 못난 인간의 자기변명을 위한 사전 포석일 뿐이다.



십여 년 전인가? 해외 이민 후손들을, 아마도 1.5세대에서 3세대까지, 상대로 연설한 주내용이 있다. 난 그 소신에 아직도 변함이 없다.



유학 다녀왔다고 영어만 지껄이는 것들을 보면, 미국에서 내게 담배 한 대만 달라고 구걸하던 부랑자 애들이 떠오른다.



말은 길거리 부랑자가 자국어를 더 잘한다.  
중요한 것은 능숙하고 재빠른 언어구사가 아니라 언어로 표현하는 콘텐츠와 품격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마추어리즘의 극치로 태어난 테슬라 사이버트럭의 안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