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상위 10%의 지성이 인류의 90%를 위하는 방법

상위 10%가 아닌 하위 90%를 위하여 생각하다

by 아메바 라이팅

섭씨 40도가 넘는 뙤약볕 아래 장장 5킬로미터가 넘는 붉은 흙길을 걸어오는 소녀와 소년. 소년의 키가 소녀에 비해 머리 두 개 정도보다 더 높은 것을 보면 여동생을 데리고 길을 걷는 소년 가장의 모습이 연상된다.


무스타파는 누군가 수십 년 전 기름통으로 사용했던 플라스틱 통 두 개를 양손에 들고서, 8살 살리나의 앞을 열어준다. 붉은 흙먼지가 무스타파의 눈과 코를 괴롭히지만 살리나에게 전달될 여분이 없도록, 무스타파의 폐가 먼지들을 정화한다. 살리나는 머리에 플라스틱 대야를 이고 있다.


두 남매 모두 마을 밖 우물에서 매일 아침 물을 길어오는 것이 중요한 하루 일과다. 우물엔 각종 유충과 흙탕물이 범벅이지만, H2O로 구성된 수자원은 그 마을에 이 뿐이다. 그래서 두 남매는 집안에 있는 모든 물 길을 통과 대야를 동원해 이고 지고 들어 나른다. 힘이 모자란 살리라는 집으로 오는 길에 대야의 절반을 머리 아래로 흘리지만 좀 더 나이가 들어 힘이 생기기를 바랄 뿐, 두 남매와 그들의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이남 지역, 남동아시아 일부 지역, 중남미의 할렘 지역에는 수많은 전쟁과 부정부패로 인해 난민이 넘치고 최악의 빈곤에 허덕이는 아이들이 고통받고 있다. 장 지글러에 의하면 약 5억 명 이상의 아이들이 기근, 학대, 노동,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이곳의 아이들은 정부가 손 쓰지 못하는 인프라의 부재가 심각하다. 그중에서도 식수 결원은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수십 년 동안 각종 NGO 단체, 선진국가 기관, 빌 게이츠 등과 같은 대부호 등의 기부활동으로 새로운 시도가 계속되어 왔지만 근본적인 해결이나 변화는 정착되지 못했다. 그래서 무스타파와 살리나는 그들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했던 것처럼 2019년 오늘날에도 부모의 유년기와 똑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첫 번째 재능 기부

그런데 최근 한스 핸드릭스라는 디자이너가 1994년 디자인한 드럼을 구호품으로 무스타파에게 전달되면서, 남매의 일상이 달라졌다. 살리나는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되었고 집안의 가장인 무스타파는 기존보다 3배 더 많은 물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실어 나르게 되었다. 그래서 나머지 이틀은 무스타파도 학교에 나갈 수 있게 되었다. 한 번에 75리터의 생활용수를 담아 타이어 굴리듯이 끌고 올 수 있게 만든 큐 드럼 덕택이다.




#. 두 번째 재능 기부

무스타파가 하루 75리터라는 엄청난 물을 길어오지만, 많은 물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다는 고민이 생겼다. 예전처럼 식구들이 씻고 빨래할 정도의 용수에도 미치지 못할 때는 생각지도 못했다. 워낙 더럽고 오염된 물이다 보니, 식수와 음식을 만드는 데 사용할 수 없다. 정말 갈증을 해소할 정도의 적은 양으로 팔팔 끓여 낸 뒤 찌거리 침전물을 다시 들어내야만 먹고 마실 수 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는 또다시 연료비와 노동이라는 난제가 소요되고 등장한다.


그런데 베스터가르드 프란센 그룹이라는 곳에서 '라이프 스트로'라는 플라스틱 빨대를 기부품으로 나누어줬다. 불과 2달러도 되지 않는 원가로 제조되도록 유명 디자이너 빅터 파파넥이 개발했다. 99.99% 이상의 박테리아, 미세 침전물 등을 걸러내는 뛰어난 성능으로 아이들의 2차 감염을 막아주고 있다. 이런 뛰어난 성능 대비 싼 구호 가격 탓에 아프리카와 티모르 등의 지역에 널리 퍼진 라이프 스트로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마을의 많은 사람들이 빨대로 물을 빨아먹는 모습을 흔하게 만들었다.



# 세 번째 재능 기부

많은 양의 생활용수를 운반할 수 있고 이 물을 식수로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무스타파와 가족의 생활은 크게 변화했다. 그리고 아이들의 가사노동 시간은 학습시간으로 바뀌었고, 이제 언젠가 상급학교로의 진학과 대도시로의 탈출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무스타파와 같이 사실상의 소년 가장들이 우물이나 지하수가 있는 수원에서 너무나 긴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고충은 사라지지 않았다.


전기시설이나 배터리 등을 동원한 전자 펌프가 지난 수십 년 동안 몇 번이나 설치되었지만 험한 기후와 사용자들의 무리한 이용 탓에, 작동되는 시간보다 멈춰 선 시간이 더 많았다. 그때마다 다시 땅을 파서 더럽게 오염된 물을 바구니로 퍼 올려야 했다. 75리터를 담으려면 무스파타가 반나절을 고스란히 바구니로 물을 퍼 올리는데 할애해야 했다.


빅터 파파넥은 아이들이 놀이가구를 타고 놀면서 생기는 에너지를 펌프의 원동력으로 전환시키는 '플레이 펌프'를 개발해 전기 동력이 아닌 아이들의 놀이를 통해 조달하도록 개발했다. 삭막한 환경에서 본 적 없는 놀이기구를 타고 노는 아이들에게는, 아이답게 놀이할 수 있는 기회와 공간을 제공하였다. 그리고 생활용수를 담는 아이들의 큐 드럼통에는 이 아이들이 먹고 마실 물을 빠르게 공급하는 일석이조의 아이디어다.




# 네 번째 재능 기부

필리핀이나 중남미 지역에서는 뜨거운 태양과 긴 일조시간에도 불구하고 전기공급 시설과 능력이 여의치 않아 대낮에도 어두운 슬라브 집안에서 웅크린 채 지내는 가족들이 태반이다. 아이들은 집에서 공부도 할 수 없고, 침침하고 습기 찬 환경으로 인해 각종 질병에 시달린다. 그리고 음식은 자주 상하고 빨래는 항상 축축해 비위생적이다.


Illac Diaz라는 필리핀 학생의 보급운동으로 시작된 스마트 워터가 보급되면서 60와트 백열등 부럽지 않은 조명등 역할을 해주고 있다. 그런데 보급된 것은 조명등 제품이 아니라 아이디어였다.


콜라병 같은 플러스틱 병에 물과 미생물을 없애는 표백제를 약간만 채운 뒤, 지붕에 구멍을 내어 이 플라스틱 병을 고정해 붙이기만 하면 그만이다. 햇빛이 플라스틱 통 속에 채워진 물에 반사되고 증폭되어 60와트 백열등처럼 집안을 환하게 비춰준다. 고장 날 염려도 없고 언제 어느 때던 다시 만들어 지붕에 장착할 수 있다.


오육 년 전, 빌 게이츠와 엘론 머스크가 빈곤층과 빈곤국가에 대한 기부와 지원에 대해 설전을 벌인 적 있다.


언제까지 식료품, 배터리, 생수통을 기부하면서 그들의 자생력을 방해할 것인가? 그 돈으로 무료 인터넷을 보급하고 무료 재생에너지를 공급해 빈곤국가와 빈곤층이 자력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야 한다.


엘론 머스크의 강한 주장과 제프 베조스의 지원사격에도 불구하고, 빌 게이츠는 냉담하게 반응했다.


그럼 지금 당장 그 구호품도 없으면 당장 죽을 사람이 몇 천만명인 줄은 아는가?




구호와 기부가 빈곤국가와 빈곤층에게 자생력이 생성될 기회마저 차단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러한 구호품으로 인해 자생력을 가질 삶의 기회를 연장해 가는 것일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거창한 구호와 이에 대한 인적, 경제적, 자원적 효용성 등을 비판하기에 앞서, 간단한 아이디어가 수십억 달러의 기부금을 대체할 수 있다라는 사실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프랑스의 이완용이라 불리는 코코 샤넬의 추잡한 민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