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를 2년 반째 다니다 보니, 이제 어지간한 산뛰기는 가뿐한 산책처럼 여겨진다. 거의 20분가량 쉬지 않고 걸어 오르다 보면 중학교 정문 직전에 여상의 교문이 먼저 눈에 띈다.
우리는 그렇다 쳐도 저 여상 애들은 저주받은 무시다리를 어찌 감당할까 측은하다. 짧은 다리를 가리는 긴 치마가 무시나리(표준어로는 무다리)를 도수 높은 돋보기처럼 확대해 보여준다.
무시다리들을 뚫고 5분을 더 오르면 산 정상과 멀지 않은 우리 중학교 교문이 보이고, 교문에서 교무실까지 깔린 유일한 시멘트 바닥이 이곳이 학교임을 나타낸다. 시멘트라는 문명이 있어서 그나마 학교처럼 보이는 폐건물이었다.
1층엔 1학년, 2층엔 2학년, 3층엔 3학년이 단조롭게 배치되었고, 매점 없는 학교라서 빵셔틀이나 컵라면을 구경할 수 없었다. 화장실은 운동장 반대편에 가건물로 형태만 서있는 브루쿠(표준어로는 블럭 벽돌)였다. 소변기나 변기 같은 건 없다. 또랑 같은 소변천에 오줌을 누고 구멍 뚫린 푸세식 화장실에서 정체모를 공기 속 불손한 가스 속에 항문과 고추를 드러내야 한다. 그래서 난 아직 화장실에서 대변을 본 적이 없다. 쭈그려 앉는 순간 똥통 속 귀신이 내 고추를 삼켜서 빨아들일 것 같은 걱정 때문이었다.
3학년 여름 방학을 마치고 등교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평소 내가 공부하는지, 어떤 참고서를 보는지 항상 궁금해하던 친구 녀석이 점심 도시락을 들고 우리 반에 왔다. 함께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수다와 허풍을 떨었다.
니? 과학고 입시 안 볼 끼가?
나는 생각 중이라고 말했다. 사실 아무 생각도 한 적이 없었다. 당연히 입시를 보긴 해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준비하고 어디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라서다. 내 친구는 몰래 과외를 받고 있다면서, 나만을 타깃으로 한 비밀정보를 나만 알고 있으라며 말해주었다. 속으로 생각했다.
돈이 남아도나? 과외를 받구로.
그날 저녁, 노점 일을 마치고 들어온 부모님께 의논을 가장해 나도 어른이 된 것처럼 공치사를 떨었다. 과학고를 지원할 건지 넌지시 물었다. 자랑스러운 나의 지적 수준을 향유하도록 내비쳤다.
과학고가 뭐고? 과학기술고등학교가?
내가 니 인문계도 못 보낼까 봐 그라나? 고마 치아라!
어? 이게 아닌데...고마 치아라, 소리만 반복하다 내일 날 밝으면 알아 보꾸마, 라는 내 인생 16년의 가장 듣기 싫은 답변이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날, 아버지가 과학고 가고 싶으면 시험 쳐 보라고 허락했다. 설레는 마음과 시험에 대한 걱정이 한숨으로 내 입 밖을 나왔다. 알고 보니 내가 의대를 가겠다고 할까 봐, 대학 등록금이나 큰돈이 들지 않는 과학자의 길을 얼른 반색한 것이라는 씁쓸한 사연을 먼 훗날 알게 되겠지만, 지금은 그지없이 좋았다.
그렇게 과학고 입시를 결정하고 다음날 담임에게 쉬는 시간 종이 울린 뒤 뛰어가 말했다. 그러자 깊은 패인 미간을 드러내며 짜증 섞인 쇤소리를 담임이 쏟아냈다.
미칬나? 서울 의대 가고도 남을낀대, 와 니까정 과학고 간다 카노? 지금 몇 년째 니 선배들부터 와 이카노?
니는 안된다. 올해 부텅 1등 하는 아~들을 절대 과학고 원서 안 써 줄기다! 선생은 내리 4년째 전교 1등만 과학고 입시를 치르며 입학하는 게 너무나 맘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고등학교 입학시험인 연합고사에 만점자가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그리고 엄마, 아빠 생각해서라도 서울 의대를 가라고 난리였다. 그날로부터 과학고 입학서류 신청 마지막 날까지 담임, 수학 선생, 물상 선생, 생물 선생, 국사 선생, 교감까지 돌아가며 반강제로 혼을 냈다.
유일하게 영어 선생 만이 내게 수업 시간 중에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과학자가 우리나라 미래다. 과학고 잘 생각했다. 아픈 사람들만 쳐다보는 의사는 아무나 해도 된다. 가거라.
유일하게 경기도에서 살아 표준말을 쓰던 선생의 격려였지만, 왠지 기운 빠지는 추임이었다. 세상의 시련과 풍파에 익숙해진 자포자기를 보였다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