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세상의 모든 인간 말종들에게, <인간실격>을 읽어라

데카탕스가 뭔지 알려면 다자이 오사무를 읽어라

by 아메바 라이팅

제목만큼이나 작가의 막나가는 인생살이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또한 흑백사진의 작가에게서 제목에 걸맞은 절망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배려라는 감정이 티클만큼도 보이지 않을 만큼 냉소적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알 수 없지만, 무라카미 류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를 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을 읽었다. 두 작품 속에 흐르는 일본의 남성중심주의가 젊은이들의 절망과 처절함을 나타내는데 잘 이용되었다. 다자이 오사무가 사무라이적 인간 자존감을 회복하고자 자신을 죽이는 자살을 마지막 도구로 이용했듯이, 무라카미 류 또한 삶의 모든 것을 포기한 일본 남성의 절망을 죽음과 삶에 대한 무의미와 무관심으로 표출했다.

다자이 오사무가 그린 인간실격은 고급스러운 필체와 형식을 차용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살아갈 자격이나 필요가 있기는 한가? 에 대하여 생각하게 해 준다.


희대의 걸작이라 불리는 데는 그에 걸맞은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오사무가 주인공 ‘나’인 것처럼 포장했지만, 액자 방식의 내부 이야기 속 요조 오바가 허구적 다자이 오사무의 자전적 아바타 같은 존재라고 보면 읽기가 편하다.


요조 오바는 빈촌인 동북지방 아오모리에서 금융업을 주업으로 하는 대지주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자본적으로 부족함 없이 성장했다. 그리고 머리까지 뛰어나 수재 인양 치부되어 모두에게 주목받는 학창 시절을 보내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러한 내외적인 축복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자신에게 내재된 악마적 본성을 감춘 채 도깨비 그림처럼 자신과 다른 모습의 탈을 쓰고 살아간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도록.

수기 형식으로 쓴 액자 속 내부 이야기 가운데 1수기를 들여다 보면, 집안 내에서는 물론이고 학교에서도 익살스러운 모습으로 철저히 타인을 기만하면서 가식 어린 가면과 연기로 본성을 철저히 숨긴다.

2수기에서는, 중학교로 유학 간 요조가 1수기에서처럼 겉으로는 공부 잘하는 수재가 되어 주변 사람을 철저히 속인다. 하지만 그의 가식을 눈치챈 얼간이 다케이치를 포섭하면서 이윽고 요조는 도깨비 그림 속의 도깨비처럼 내면을 드러낸다.


또다시 도쿄로 고등학교 유학을 떠난 뒤에는, 도쿄 생활을 배우고자 호리키 마사오를 사귀면서 술, 여자, 그림 등에 빠져 지내게 된다. 그리고 교내 공산주의 마르크시즘 운동에도 열정적으로 심취한다. 이 시기 다케이치의 예언처럼 수려한 외모의 요조에게는 끊임없이 여자들이 생겼고, 요조는 그녀들과 문란한 성생활로 일상을 보냈다. 무미건조하게.


그다지 사랑이라는 감정 없이 여자를 품는 정도의 성생활이대부분이었지만, 유독 바의 접대부인 미망인 쓰네코에게만 사랑을 느꼈다.


대지주의 자식으로 태어났고 게다가 고리사채를 통한 금융업으로 큰돈을 벌어들인 집안의 일원이라는 죄의식이 요조를 괴롭혔다. 좌익운동에 심취했던 요조는 스스로를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족속’으로 여기며 동전 몇 푼 뿐이던 쓰네코에게 사랑을 느꼈다. 결국 둘이 함께 가미쿠라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을 시도했다. 하지만, 악마는 결과를 달리했다. 요조는 혼자 살아남아 자살방조죄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고 그는 다시 세상으로 내몰렸다.

3수기에서는, 넙치 아저씨 집에서 반강제로 구금당한 체 고향의 가족들로부터도 의절당한다. 냉담한 호리키 덕에 출판사 직원 시즈코를 만나면서 동거를 시작했다. 그리고 요조는 만화가로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해맑고 순수한 시즈코 모녀에게서 자신은 폐가 될 뿐이라는 자책감을 이기지 못했는데, 결국 스탠드바 마담 집에서 두 번째 정부로 얹혀사는 길을 택하며 그녀들을 자신으로부터 보호한다. 얼마 뒤 순수의 결정체인 담뱃가게 처녀 요시코와 결혼하게 되는데, 순수한 처녀라고 생각했던 요시코가 DIAL 수면제를 준비해 놓은 것을 목격한 뒤 요조는 자신이 입에 틀어넣어 자살을 하고자 기도했다. 그녀의 본심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마저 여의치 않아 모르핀 중독에 빠져 정신병원에 감금되기에 이른다. 요시코와 가족에 대한 배신감으로 그는 처절히 절망한다.

고향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큰형이 집안 어른으로서 요조를 정신병원에서 구출해 고향 근처 온천으로 옮겨 살게 한다. 그의 나이 이제 28살에 불과했다.

여기까지 엮인 3편의 수기는 스탠드바 마담에게 요조가 남긴 것이다. 수기 3편 외에도 인간실격의 가장 충격적인 3장의 사진이 함께 있었다.

첫 번째 사진은 1수기에 어울리는 사진인데, 실제 웃음 같지도 않은 가식적 익살을 부리는 원숭이를 닮은 어린 남자아이의 사진이었다.
두 번째 사진은 매우 잘 생긴 젊은 대학생처럼 보이는 남자의 사진이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 표정에서 본연의 모습과 다른 외면의 모습을 드러냈을 뿐임을 누구나 알 수 있었다.
세 번째 사진은 사십 대 정도로 보이는 흰머리의 특색 없는 한 남자가 무표정한 모습으로 찍힌 사진이었다. 3수기에서 온천 요양 중인 요조가 28살임에도 불구하고 백발이 되어 사십 대처럼 보이는 인간실격의 모습이었다.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지면서도 순수와 순박을 숭상하던 요조에게 시즈코 모녀와 처녀 요시코는 자신에게 구원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순수의 화신인 줄 알았던 요시코가 DIAL 수면제를 사두고 정신병원에 요조를 강제 입원시키는 행동에서 그녀의 배반이 완성되었다. 극도의 인간적 배신과 삶의 무의미에 절규하던 요조는, 단어 그대로 인간실격이 되어버렸음을 뼈저리게 느낀다.

제임스 딘이 미국 영상미학의 이콘이라면 일본 현대 젊음의 이콘은 단연 다자이 오사무의 요조다.



철저하게 망가지는 인간 실격자의 추락하는 모습에서 소위 데카당스파니 하는 어쭙잖은 일본식 문파가 생기기도 했지만,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죽음의 미학을 고풍스럽고 고급스러운 문체로 그려냈다는 사실에 다자이 오사무를 존경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를 비난하고 싶다면 다자이 오사무를 찾아라.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마부>를 읽고 막심 고리키를 비웃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