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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은 모두 나쁜 년들 뿐인가?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덤비지 마라

by 아메바 라이팅

1860년 출간된 이반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은, 사십 줄에 들어선 블로댜가 열여섯 어릴 적의 첫사랑에 대해 쓴 서정 소설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나 <독일인의 첫사랑>과 같은 미문의 서정 소설은 아니지만 애틋한 소년의 사랑을 심리적으로 잘 묘사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첫사랑>에서는 별다른 사회상이나 이에 대한 갈등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숨 막히는 짧은 호흡으로 깊이 더 깊이 글에 집중할 수 있다.


이상적 남성미와 인텔리겐차로서의 매력을 가진 아버지, 표토르 바실리치는 자식에게 무관심한 부인과 함께 모스크바의 교회 다챠로 아들 블라디미르 페트로비치와 이사한다. 어느 날 다챠 오른편 울타리 너머의 집으로 이사 온 자세킨 가문의 공작부인 자세키나와 스물한 살의 예쁜 딸 지나이다 알렉산드로브나를 만나게 된다. 한눈에 지나이다에게 반한 블로댜는 그녀의 마성에 빠져든다.

하지만 그녀는 주변의 성인 남성들에게 구애를 받으면서 그들과 자유분방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시간을 함께 하고 싶었던 블로댜는 그녀의 시동이 되어 그들과 함께 그녀를 숭상한다.

당대 러시아 인텔리겐차의 주류를 이루던 경기병 장교 벨롭조르프, 시인인 마이다노프, 의사 루신, 백작 말렙스키가 블로댜와 함께 그녀의 사랑을 구걸했다. 여성성으로 쌓아 올린 마성과 욕정적 권력에 굴복해, 남성들은 광기 어린 질투와 시기 속에 물신주의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나마 그 늪에서 빠져나가기를 바랐던 루신은 블로댜에게 정신 차리라고 다그치지만, 이미 지나이다에게 깊이 빠진 블로댜는 세상과 벽을 쌓아버렸다.

어느 날 블로댜는 지나이다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을 눈치 챈다. 그녀의 눈먼 사랑을 지켜보면서 블로댜는 불안, 초조, 시기, 질투에 괴로워한다.


언제나 블로댜를 어린 시동으로만 바라보는 지나이다로 인해 블로댜는 그녀에 대한 사랑이 그의 가슴에 독이 되어 퍼져갔다. 그녀가 사랑하는 남자를 칼로 습격해 죽이려는 광기를 보이던 블로댜는 어느 날 그 남자가 자신의 아버지, 표트르 바실리치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블로댜는 이 사실에 크게 좌절하지만 한편으로 지나이다의 사랑을 일방적으로 받고 있는 아버지를 더 크게 존경하게 되었다.

말렙스키의 투서로 인해 지나이다와 바실리치의 불륜을 알게 된 어머니 마리야 니콜라예브나는 페테르부르그로 이주해 이들의 관계를 정리시키려 들었다. 블로댜는 어느덧 그곳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성인이 되어 어느 극장에서 우연히 마이다노프를 만나 지나이다 소식을 전해 듣는데, 그녀는 결혼해 돌스카야 부인이 되었고 이후 사산하여 요절했다고 한다.

완벽한 이상적 성인 남성으로 그려진 아버지 표트르와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지나이다를 사이에 두고서 질투하고 시기하는 블로댜의 모습은, 나쓰메 소세키 <마음>의 주인공인 젊은 시절 선생님인 ‘나’의 내면과도 같다. 에고이즘과 내면 심리의 흐름을 잘 분석해 묘사하였고, 심리적인 갈등의 해체 과정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어린 시절 풋사랑과 어울리지 않을 마조히즘적 관능이 이야기를 쫄깃쫄깃하게 해 주는 도구로 활용되어 재미를 더한다. 아버지의 채찍질에 상처 입은 지나이다가 오히려 그녀의 팔에 고혹적인 키스를 날리는 장면은, 현대 웹툰으로 그려졌다면 시각적 상상력이 더한 흥미를 일으켰을 것이다.


지나이다의 황홀경과 그 모습에 욕정을 참지 못해 지나이다에게 달려가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황홀경은 절정을 이룬다.


그리고 이를 멀리서 지켜보며 눈물 흘리는 블로댜의 순수성이 더욱 대비를 이루면서, 첫사랑의 신파적 비극이 화려한 막을 드리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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