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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바 라이팅 Jan 26. 2020

택시의 보호 격벽 설치가 승객에게 오히려 독이 될 이유

택시가 싫지만 타다는 더 싫다

타다 논쟁에 격분한 택시 기사조합의 시위를 뉴스로 보면서, 드디어  밥그릇에 위협을 받았구나, 라는 측은한 연민이 들었다. 하지만 타다를 두고 혁신기업이니, 4차 산업혁명이니, 운운하는 1세대 벤처기업인들과 앞뒤 분간 능력 없는 정치인 몇을 보면서는 분노가 치솟았다.


타다는 혁신도, 기술도 없는 21세기 노동집약 산업체에 불과하다. 19세기 마르크스가 예언한 프롤레타리아 빈곤층만 양산하는 반동의 착취형 자본 사업이다.

반드시 규제되어 사라져야 할 산업이다.



그렇다고 택시의 현재 환경에 대해 조금도 지지를 보낼 수도 없다. 20대 후반부터 거의 택시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았던 나에게, 택시를 탄다는 것은 상당한 심적 용기를 내어 인내심으로 무장한 뒤 치러야 할 고역이다. 택시와 택시 기사들에 대한 기억은 트라우마에 가깝다. 대부분의 택시기사가 그런가? 나에게만 그런 부류가 걸리는 것인가?


고약한 골디락스 환경이 나를 반택시 항전 투쟁가로 만들었다.



#1. 고약한 냄새와 한숨 소리에 찌든 택시

수행기사가 연말 더 이상 예비군 훈련을 미루지 못해 사흘 종일 결근하게 되었다. 운전을 할까 택시를 부를까 잠시 고민하다 카카오 블랙을 호출했다. 빌어먹을 고급택시는 정작 출퇴근 시간이면 종적이 보이지 않는다. 하는 수없이 모범택시를 불러 1시간 이상 걸리는 지방을 향했다.



기사님. 한숨 좀 그만 쉬시면 안 됩니까? 출근길인데 너무 힘드네요.



하늘이 십만 번 무너졌는지? 3초마다 깊고 큰 한숨소리가 차 안의 삭막함을 채웠다. 삭막의 공기방울이 대포알 같은 한숨소리와 우울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산산이 부서졌다. 그리고 우울하고 암울한 부정의 기운이 내 몸을 둘러싼 공기를 무겁게 했다. 들은 체 만 체 하던 택시기사분은 30분 이상을 3초 간격으로 한숨을 쉬었고, 더는 참지 못해 언성을 높여 나무랐다.


이른 아침에, 혹은 중요한 자리에 앞서, 택시기사라는 직업을 떠나 이런 류의 사람과 1시간이나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은, 내 인생의 에너지와 생기를 부패시킨다. 4인만 들어가 고속의 리스크를 공유하는 밀폐공간의 호스트인 택시기사가 이럴 때면, 운없이 얻어걸린 내 운이 너무나 야속했다.



#2. 후안무치한 정신이상자를 만날 때.

내 기억의 택시기사 가운데 별일 없이 목적지까지 손님인 나를 내려준 분들이 절반이라면, 나머지 절반은 거의 정신이상자나 후안무치의 결정체였다.


수행기사를 늦은 밤 보내고 새벽까지 소주 한잔씩, 아마 사십 잔을 들이켠 후 혼자 새벽 택시를 탄 적 있다.


아이씨. 유턴해야는데. 길 건너 타야 해요.



순간 이 양반이 미쳤나, 라는 싸구려 정의감이 들었다. 알고 보니 이런 택시기사들이 흔하다고 들었지만, 그때는 정말 황당하기 이를 데 없었다.


직진하나 유턴하나 차는 앞으로 가는데 뭔 소립니까? 가는 길에 신호 받는 것도 똑같은데. 유턴해서 갑시다.


계속해서 술 취한 내 귀의 기능을 의심할 만큼, 욕설 담긴 궁시렁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용감하게 욕지거리하려면 나 보면서 큰소리로 해!



급기야 저급한 택시기사의 욕 섞인 궁시렁을 참지 못해 한마디 했다.


치겠네, 치겠어? 택시 안에 블랙박스 돌아간다. 병원비 벌고 함 쉬어볼까?


아, 이 자슥이 돈 냄새를 맡았나, 미친놈 골디락스에 또 걸렸구나, 라는 생각에 참고 말했다.


욕하는 거 같아 한마디 한 거니까 조용히 갑시다. 제 기사가 예비군 훈련이라 오랜만에 택시 타서 제가 잘 몰라서 그런가 봐요.


참자, 술 잘 마시고 사고 치지 말고 조용히 집에 가자, 라고 내면의 양심 항원이 거북한 바이러스를 멀리했다.


지랄들, 개나 소나 다 지들 기사 있대, 꼴같잖게.



 나는 112를 불러 경찰을 출동시켰내가 폭행범으로 처벌받았다. 택시기사는 자기가 얻어맞은 데 대해 합의금을  받기를 원했지만, 나는 모든 민형사 합의를 거부했다. 하나 빠짐없이 기소해 양쪽 모두를 처벌시키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택시 안 블랙박스를 통해 그 택시기사를 30일 운행 정지시켰고, 이후 두 차례 소송과 고소로 나름의 징벌을 가했다.


나중엔, 아마도 7개월쯤 지나서  일거다, 무릎 꿇고 울면서 제발 놓아달라고 택시기사가 내게 사죄했다. 하지만 나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두 차례 손글씨로 반성문과 사과문을 내게 가져왔지만 끝내 용서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그날 본 그 택시기사는 분명 누군가의 목숨을 앗아갈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이후 나는 후안무치한 택시기사에게는 일체의 연민도, 동정도, 이해도, 연대의식도 가지지 않기로 했다.


가시는 데가 저 건물이죠? 유턴해야는데 신호등 건너서 내리시죠?


내가 추운데 내려서 신호등 건너 한참 갈 거면 택시를 와 타요?
돈 다 주는데 왜들 갑갑한 소리들 하쇼!


이런 날은 그래도 양반이었다. 어느 날 그때도 블랙이 없어 모범을 탔는데 이상하게 이런 작은 차도 모범택시를 주는가, 싶은 차였다. 차 안에는 택시기사가 피운 담배냄새가 방향제 기능을 척결해 악취로 택시 내부를 장악했다. 코가 아프다는 게 그런 상황이었다.


야이 18년아. 운전 병신같이 할 거면 차 갖고 나오지 마!


차창을 비스듬히 연 채 다짜고짜 옆 차선의 승용차를 향해 소리치는 택시기사에게 내가 한마디 했다.


욕할 거면 창문 다 내리고 시원하게 하던가!
내 귀만 시끄럽잖소!
가서 잡아서 욕을 하던가!  
손님은 안중에 없소!



20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아무리 손꼽아도 30번도 타보지 않았던 택시 탑승들이 이다지도 비극적인 경험이다. 그래서 택시를 부를 때는 몇 번이고 고민한다. 택시가 지금 이 상황에서 최선인가?


오늘 다음 뉴스를 보았다. 택시 안에 격벽을 세우면서 택시기사들이 더욱 안전해졌다는 기사였다. 미국에서 동양인 여행객인 내가 위협이나 부당한 분위기를 느껴본 적이 없다. 일본에서도, 중국에서도, 유럽에서도. 러시아에서도.  한번도.


항상 인천공항에 길게 늘어선 모범택시에서만 험악한 무례함을 느꼈고, 그럴때면 내가 한국에 귀국했다는 사실을 절감하곤 했다. 그래서 수행기사에게 편의를 봐주는 아량을 점차 기피하기 시작했다. 늦어도 일러도 수행비서가 맞아주는게 정신 건강과 애국심 함양에 좋았다.


택시 내부에 세우는 격벽이 기사의 안전을 위한 것일지? 승객에 대한 택시 기사의 후안무치를 방조하는 장치가 될 것일지? 비웃음이 들었다. 격벽이 문제가 아니라, 싸구려 인성과 무책임한 직업윤리가 문제다.


후안무치한 기사들은 격벽 믿고, 더 무례해지겠구나.


격벽이 택시기사의 신변을 보호하게 될지, 아니면 애꿎은 승차 손님들이 불쾌한 대접을 상시적으로 더 많이 받게 만들지, 나는 재밌는 내기를 해본다. 물론 나는 후자에 베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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