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알콜러 술꾼을 아내로 두면 생기는 일

이젠 그러려니...

by 아메바 라이팅

아내가 밤 10시부터 거실에서 사라졌다. 급히 작성해 보내줘야 할 문서 작업을 끝내니 11시가 다 되었다. 한 시간이나 흔적 없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은 우리 그녀는 어디로 사라졌나? 몇 군데 흩어보다, 설마? 하는 생각에 안방 등을 켰다.


역시 꼬알라였군. 어쩐지.


한때 처갓집 한구석을 점령했던 늙은 치와와가 있었다. 그 녀석은 곤히 잠들 때마다 낮고 가는 진동음으로 공기를 때렸다. 그런데 지금 똑같은 소리가 나의 두 귀를 잡아당겼다. 우리 그녀의 코 고는 소리다. 이제는 늙은 우리 그녀가 안방의 뜨끈한 공기를 고무줄처럼 위아래로 진동시키고 있다.


저러다 숨 넘어가겠다, 싶어 다가가는데 내가 곧 할 행동을 무의식의 그녀가 알아챘는지 금세 고요의 무거운 침묵을 보란 듯이 내렸다.


아내가 "눈썹하고 온다", 라는 기이한 말을 남긴고 다시 돌아왔다. 얼핏 그녀의 눈동자, 냄새, 목소리만 들어도, 그녀가 프로의 세계에 입맞춤을 했는지 나는 금세 알 수 있다.


그렇다! 우리 마누라는 상습적으로 만취하는 프로 알콜러다.



명함이 필요하다면 양각으로 크게 새겨주고 싶다. 무연봉 프로 알콜러 ○○○.


한때 우리 그녀는 프로 알콜러로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던 업적을 수없이 수립했다. 아마 그 기간도 길어서 전성기를 꽤 길게 장수했다. 그래서 술이 보이면 에틸알콜 분자가 모조리 전멸당하는 대학살 술판을 자주 그렸다. 요즘은 쇠로기에 접어들어 전성기만 못하다. 그리고 열정도 예전만 못하다


예전에 상습 만취녀였는데, 요즘은 열정이 떨어져 농땡이를 자주 부린다. 프로 의식이 사라졌다.


하지만 프로는 프로인지, 조금만 마셔도 금세 알콜러의 기본자세를 적확히 드러낸다.


우선 눈동자의 검은 부분이 힘을 뺀다, 더러 눈이 풀렸다고 일반인들이 말하는 모습 같지만, 우리 그녀는 최고의 경지에 오른 천재 운동선수들이나 한다는 '몸에 힘빼기'의 시작일 가뿐히 했을 뿐이다. 절대 술에 취해 눈이 풀린 게 아니다.


두 번째 표징은 아내의 혀 꼬이는 말씨다. 우리 그녀가 아무리 와인 한잔만 마셨다고 생떼를 써도 나는 안다. 그녀의 몸이 프로의 세계를 기억한다. 특히 우리 그녀의 혀는 거의 이반 파블로프 실험견의 혀와 같다.


내가 (한 템포 쉬고) 걸어오다가 (또 한 템포 쉬고).. .



오늘도 혀 꼬인 소리와 힘을 뺀 눈동자로 거실에 난입해 휘청거렸다. 또 술 먹었지? 나의 감탄 어린 흠슝에 우리 그녀가 별거 아니라고 무관심을 살포시 던진다.


술 안 먹었어. 와인 반 병이 술이야? 안 먹었어!



단어마다 혀가 쉼을 거칠게 가진다. 어절과 문장이 끝날 즈음엔 혀가 작동을 멈추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비밀을 알아챈다.


오늘 또 취했구만.



지금 새벽 1시다. 처음 시청하는 미스터 트롯을 보는데, 갑자기 우리 그녀가 눈을 뜨더니 두 문장쯤으로 들리는 무언가를 내게 말했다.


미스? 트롯? 남자? ....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갑자기 그녀가 씨익 웃더니, 다시 눈을 감는다. 그리고 늙은 치와와에게서 들었던 "ㅋ ㅋ 킁...ㅋ ㅎㅎ흥" 콧소리로 자기가 무슨 말을 떠들었는지 알지 말라고 내게 경고한다.


또 술주정이었구나...잘 자~~


이렇게 오늘의 일과를 마치고 아내는 내일의 알콜러로 다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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