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문 틈으로 힘차게 다리를 내뻗다

후안무치의 일상

by 아메바 라이팅

어느 지역의 마천루 같은 빌딩에서 가장 높은 층의 스카이라운지에서 겪은 일이다.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호출한 뒤 멍하니 서서, 층수를 일러주는 디스플레이 LED 패널에 두 눈을 고정했다. 3대의 엘리베이터 가운데 한 대가 상승 깜빡이를 힘차게 울리며 올라온다.


그리고 어느 중년의, 사십 대 중후반 정도의, 여인이 고급 모피 코트를 입고 엘리베이터 앞을 가로선다. 때마침 나는 스마트폰의 카카오톡이 울려 누군가 보낸 메시지를 읽었다.


왼쪽 눈의 왼편 가장자리에서 엘리베이터의 서스 광택이 갈라지는 반응을 느꼈다. 양쪽으로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간단히 카카오톡에 답을 끝낸 뒤 고개를 들었다. 내 옆을 지키던 중년의 여인이 어느새 엘리베이터 안에서 나와 두 눈을 맞주쳤다. 그리고 나는 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그 여인의 다급한 손가락 움직임이 급해지고 있음을 느꼈다.


이런 망할, 내가 타지 못하도록 그녀가 엘리베이터를 급히 닫고 있었다.



그 순간 복싱 운동을 하면서 그나마 민첩해진 발걸음으로 전진 스텝을 밟아 왼다리를 힘껏 내뻗었다. 엘리베이터 양문이 내 다리를 양쪽에서 삼키려다 놀라 후퇴했다. 그리고 내가 들어가고도 남을 만큼 크게 아가리를 벌였다.


나는 당당히 그녀의 옆으로 들어섰고 엘리베이터가 닫힐 때까지 가만히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두 손을 가슴에 포개 모아 한 숨을 크게 내쉬며 속에 담았어야 할 말을 멍청한 목소리로 소리 내었다. 나지막했지만 귀 밝은 나의 청력이 충분히 커버하고도 남았다.


어머, 놀래라. 무서워.



분노에 찬 눈을 치켜든 채, 나는 그녀의 정수리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나의 시선을 피해 뒤돌아선 그녀는 키가 작아 내 눈에서는 그녀의 정수리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 망할 여자를 어떻게 가르치나? 3초간 빠르게 생각했다. 그리고 결정한 내용대로 말과 행동을 옮겼다.


니가 더 무섭다. 이 사람아!


인간이 어떻게 먼저 기다리던 사람을 두고 죽어라 버튼을 누르냐?



돌아선 시선을 다시 바꿀 낌새가 없이 그녀는 온몸을 경직한 듯 엘리베이터 번호판 앞에 온 몸을 방어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꼴에 어찌 저러나, 어디 감히 저런 후안무치한 인간이 같은 하늘을 이고 있을까 내 인생이 한심했다. 다시 3초간 빠르게 생각한 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마지막 한 마디로 끝을 냈다.


여기서 내렸다가 나중에 다시 타시오.
그리고 집에 가서 거울 좀 보고 각성하시고.


나는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중간 5층 버튼을 눌렀고, 이내 멈춰 섰다. 문열림 버튼을 눌러 그녀가 빠른 종종걸음으로 나갈 때까지 수고스럽게 계속해 문을 개방시켜 주었다. 그녀가 복도로 걸음을 내딛자마자 나는 문 닫힘 버튼을 수십 초 전의 그녀처럼 빠르게 힘차게 연속해서 눌렀다. 빨리 문이 닫히기를 바라면서 두 눈에 그녀가 사라지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녀는 깊은 안도를 만끽하며 재빠르게 나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 글을 쓰기 전 목욕탕에서 뻐근한 감기 기운을 없애고 돌아왔다. 그런데 엘리베이터의 그녀에 대한 기억을 되살려주는 목욕탕 남자가 나타났다. 온탕에서 몸을 녹이며 잠시 잠이 들려는데, 높은 주파수의 귀를 애이는 재채기 소리가 연거푸 세 번 크게 들려 선잠을 깨웠다.


에이취~ 에이취! 에에에 에이취.



저 정신 나간 분은 또 뭔가, 라는 기이함이 엄습했다. 우한 폐렴으로 모두가 조심하는 이 시국에 정신 나간 저 사람은 커다란 재채기를 나팔 불던, 아니 색소폰 연주하듯이, 모두가 주목하도록 허공에 토해냈다.


고개를 좌우로 휘저으며 목욕탕의 모든 공기방울들이 그의 체액과 하나 되도록 버무리 듯했다.
불한당 같은 인간!


온탕에 들어온 모습도 보니 샤워도 하지 않았다. 저걸 그냥 어찌하나 또 3초간 생각하는데, 그 새를 참지 못하고 후안무치한 그 남자가 가래를 걸 하게 끌어올린 뒤 탕 밖 배수구에 던지듯 뱉었다. 이번에는 생각을 끝내지 않고 말과 행동으로 일어섰다.


야 이 XX새끼야, 이 XX가 짐승 우리에 가서 니혼자 지X을 하던가!
네 집에 가서 XX을 해!



비슷한 숙어와 문장으로 이루어진 칼침 달린 훈계를 10여 개 문장으로 늘어놓았다. 당황한 눈빛이 분노로 바뀌려던 찰나의 그를 알아본 나는, 분노가 성숙해지기 전에 선수를 쳤다.


이럴 때 선수 치는 방법은 아예 도전할 생각도 하지 못하게 짓누르는 것이다. 1여분 후 목욕탕은 평온을 되찾았고, 후안무치의 남자는 씻지 않고 탈의실로 빠져나갔다.


편치 않은 기분이지만 따뜻한 기운으로 몸이 편해져 다행이다, 생각하고 목욕탕 데스크에 키를 반납했다. 그 순간 여탕의 어느 중년 여성이 쏜살같이 다가와 데스크 여직원에게 자신의 키를 엄청난 목욕물을 그대로 묻혀 반납했다.


내 순서를 가로챈 것도 기분 나쁘지만, 자기의 더러운 육신을 거쳐간 목욕물을 털어내지도 않은 채 소중한 남의 집 귀한 딸에게 마구 던져 올리는 후안무치에 기분이 상스러워졌다.


3초간 생각한 뒤 그녀에게 오늘의 마지막 가르침을 안겨주었다.


당신 딸도 남의 집 아줌마가 씻은 더러운 목욕물에 손대며 사나?최소한 털어서 건네는 에티켓은 지켜야 하는거 아니오?
목욕탕 나오지 말고 집에서 샤워나 하소!



후안무치한 일상을 후안무치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참 이 세상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가 이런 분들 버르장머리 고치는 데 있지는 않나 가끔 정체성에 궁금증을 가진다. 내일은 또 어떤 후안무치들이 나의 기분을 상스럽게 조장할지.

어처구니없게도, 이제 내가 기대마저 하고 있다는 상황에 기가 찰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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