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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바 라이팅 Feb 22. 2020

하느님이 너희에게 코로나 검역을 그리하라 말한 적 없다

예배와 집회를 계속하는 종교단체의 지도자를 즉각 구속하라

검역이라는 영어 단어에는 종교의 어리석음이 여실히 숨어있다. 영어 quarantine은 이탈리아어로 숫자 40을 뜻하는 quarantina에서 비롯됐다. 크림반도 카파를 출발해 제노바에 입항한 12척의 상선 선단에서 페스트가 전파되었기에, 유럽 곳곳은 입항하려는 외부 선박을 항구 멀찌감치 내쫓아 40일간 격리시킨 뒤 그제야 항만에 닿도록 허락했다. 그래서 quarantine이 검역이란 조치를 뜻하게 되었다.


기독교에서 40이란 숫자는 성경 여기저기에서 자주 등장한다.


노아의 홍수도 40일간 지속됐고, 출애굽한 이스라엘 신민들이 40년간 광야에서 약속의 땅을 향했고, 예수님께선 사막의 마귀로부터 40일간 유혹을 받으셨다.


그래서 40이란 숫자에는 고행, 고난, 역경이 담겨 있어서, 경건한 기도와 신앙으로 주님을 기억하며 감사하라고 가르친다.


우리나라에선 열흘 단위를 '순'이라고 해서 한 달을 두고도 상순, 중순, 하순으로 나누어 부르는데, 이 말에서 보듯이 사순절이란 부활절 이전 6번의 주일을 제외한 40일 동안을 일컫는다.


요지는 검역으로 40일간 격리시킨 데는 아무런 과학적, 정치적 계산이 없다. 종교가 지배하던 세상에서 그저 때려 넣은 고난의 보속으로 삼았을 뿐이다.


그런데 40일은 격리된 배를 오늘의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처럼 그야말로 '페스트 아일랜드'로 만들었다. 발 빠른 입항과 격리가 있었다면 살았을 사람들을 40일간 배 위에서 죽게 만들었다. 그래서 오히려 40일을 기다리다 감영되어 죽느니 몰래 도항하거나 빠져나가는 뱃사람들이 늘었다. 그리고 이는 곧 또 다른 페스트 확산의 원인이 되었다. 하나님이 없었다면, 죽지 않았을 사람들이 수천만 명 죽어갔다.


그리고 페스트가 사라진 후, 신권은 처참히 무너졌다.


하나님 앞에 기도한 사람들이 더 죽었다.
하나님이 있기는 한건가?

착찹한 마음에 카뮈의 역작 <페스트>를 다시 꺼내 읽었다. 페스트는, 중세 시대의 기독교가 자행했던 폐악과 반인류적 재앙인 페스트를 현대에 도입했다.


에이. 현대에 무슨 페스트야? 너무 억지다.

라고 우습게 접어간 한 장 한 장에서 나의 경망한 선입견을 비웃게 한 명작이다. 부정 속에 희망을 행동하는 인간들의 집단적 성찰을 통해 인간 승리와 구원을 그려내고 싶었다고 카뮈가 말했다, 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 뒤에 숨은 자연의 악마성이 영원할 것 같은 엄습함을 느꼈다.


유럽식 비극이 보통 5막 혹은 5장으로 구성되는데 <페스트>도 그렇다. 결말은 할리우드식 포옹과 만남으로 끝나는데 분명 비극이 맞다.


<페스트>에서 인간이 만든 종교의 악폐와 사회조직의 부조리가 태산같다. 희망을 잃지 않는 우리 주변의 히어로를 그렸지만, 분명 그 속에서 인간은 종교도 사회도 이겨내지 못했고 혁신하지도 못했다. 그저 거대한 거인의 발바닥 아래서 기어 나왔다고, 그리고 살아남았다고, 기뻐할 뿐이다.


인간 승리에 도취하지 않은 채 언제 다시 인간의 방심과 태만에서 기어 나올지 모를 저주스런 페스트에 대하여 항상 경계하라고 카뮈가 역설했다. 그러나 인간은 여전히 경계를 잊고 살았다.


인간이란, 세월이 지나도 참 변하지 않는다.



14세기 제노바를 통해 킵챠크한국에서 전파된 페스트가 전 유럽을 덮쳤을 때, 신성로마제국을 중심으로 그리고 해상 무역권으로 돈을 번 부르주아들에 의하여 신권이 크게 위기를 느낄 때였다. 때마침 황권을 견제하고 봉토를 늘일 최고의 적기라고 생각했던 교회는 '하나님의 꾸짖음이자 시험'이라고 외치며 '기도로 하나님께 구원을 받아라.'라고 주장했다.


통계가 엉망이던 당시 자료로 적게는 3천만 명에서 많게는 1억 3천만 명이 죽어나갔다. 이 모두 교회에서 숙식하며 '저는 살려주세요'라고 빌었던 어리석은 신도들과 야비하게 교부금과 봉토를 받는데 미쳐 날뛰던 사제들의 작품이었다.


그리고 7백 년이 지나, 우리나라에서는 야비함과 어리석음이 신천지를 비롯한 하나님 장사치들를 통해 재탕되고 삼탕 되었다. 지금을 사순절인양 착각한다. 시험 따위에 들게 하는 하나님이라면 거부해야 한다. 그 따위 신이라면 신으로서 인간에게 흠숭받을 자격이 없다. 그런데 하나님이란 신이 제정신인 이상 그럴 리가 없다.


문제는 신이 아니라 종교다.
그리고 신이 있다면 종교가 문제 될 리도 없다.
따라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


중세 시대. 결국 종교는 질병 앞에 무릎 꿇었고, 페스트는 하나님의 십자가를 속세의 땅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번 역사의 챗바퀴에 기대 본다.

아직도 정신없는 신천지나 전광훈과 같은 '하나의 교회'를 부르짖는 부조리의 종교 단체가, 코로나 앞에 무릎 꿇어 흔적 없이 처참히 사라지기를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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