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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메바 라이팅 Mar 13. 2020

어처구니, 트집, 그리고 뚱딴지

혼자만 열정을 누리는 우리들의 벌거벗은 임금님

두 사람의 말싸움이 점입가경이다. 한쪽만 말이 길고 소리가 높은 편이 아니다. 너나 할 것 없이 고음의 앙칼진 소리 날이 두 사람의 영혼을 사시미 썰 듯 얇게 도려낸다. 그러다 두 사람은 제정신을 잃은 듯하다. 아Q정전의 패러디 극장극에서 모사한 만남이었는데, 난 이런 류의 비논리적 말싸움을 본능적으로 싫어한다. 어려서부터 주변의 무식한 사람들과 하는 수 없이 살다 보니, 환경적으로 파블로프의 개가 되었나 보다. 경기가 일어난다.


어처구니가 없네. 열심히 하는데 왜 그래? 도와주진 못할 망정.
내가 트집 잡는 것 같애? 네가 논점을 흐리고 생트집으로 우기잖아.
넌 정말 뚱딴지같구나. 왜 거기서 그 말이 나와?



말싸움의 단골 레퍼토리는 단연 욕이다. 하지만 욕 다음으로 자주 쓰는 말이, 기선제압용으로 상대의 비논리성을 비하할 때 쓰는 세 단어가 핵심이다. 어처구니, 트집, 그리고 뚱딴지. 다소 어르신 세대의 단어이긴 해도, 아직 어린아이들도 쓸 만한 비하용 단어이긴 하다. 내 세대에는 충분히 통용될 수준으로 보편적이다.




어처구니란, 맷돌의 위 아랫 돌을 연결하는 중추적 막대를 뜻하는데 혹자는 맷돌의 손잡이를 말한다고도 한다. 대충 맷돌에 끼우는 나무 막대 모양의 중요한 부품을 두고 어처구니라고 하는 데는 이의가 없다. 그래서 어처구니가 없다, 라는 말을 할 때는 중요한 무언가가 빠져 기가 차고 황당하기 이를 데 없음을 이른다. 그래서 어처구니가 없어! 라고 말한다면, 너 하는 짓이 정말 말도 안 되는 거 알지? 라는 뜻이다. 아래 사진에서 상상해 보자. 어처구니가 둘이나 빠진 맷돌인 줄 모르고 잘 삶은 콩을 부은 후 영감님이 지을 표정을 말이다. 어이가 없다.


트집이란 고무나무나 옻나무의 액상을 추출할 목적으로 가로로 비스듬히 칼로 낸 생채기를 말한다. 그래서 생트집이라고 하면, 굳이 할 필요도 없는 생채기를 내어 옻이나 고무액을 뽑아내지도 못하는 바보짓을 이른다. 그래서 트집을 잡을 때는 이유가 있어서 하는 언동이지만, 생트집이라고 할 때는 억지로 짜 내는 난동질에 준한다. 그래서 상대를 비하할 때, 트집이란 단어보다 앞에 '생'을 붙여준다면 더욱 확실한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다. 아래 사진을 보면 굳이 저런 생트집이 필요한가 싶지 않나?


뚱딴지는 전신주에 흔히 보이는 애자, 즉 사기 세라믹으로 만든 절연체를 부르는 말이다. 잘 흐르는 전기가 애자에 이르면 절연되어 전기가 뚝 끊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뚱딴지맞네? 라고 누군가 나에게 말한다면, 대세를 따르지 않고 주류의 발목에 태클을 거는 이상한 존재? 정도로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욕보다 순하고 정서적인 단어지만, 속 뜻과 그 어원을 따라 붙인 의도는 차라리 흔한 십 원짜리 욕보다 상대를 더욱 비하시킬 수 있다. 욕도 비하용 단어도 알고 쓰면, 듣는 측보다 말을 던지는 쪽에서 더 큰 희열을 누릴 수 있다.



  


삐졌다고 속 좁은 티를 내고 싶었던 일본의 어리광 앞에 극일을 하자면 죽창가를 부르고, 재계와 중소기업의 수장들을 허구한 날 불러내 아이디어 라고 들들 던 우리들의 임금님. 무분별이 열정에 버무려져 아비규환의 혼란만을 가속했다. 하지만 혼자 열심히 뛰어다니며 극일을 주장하고 격려하며, 국산화를 해내자고 소리친다. 우리는 아는데. 지금이 얼마나 코미디인지. 석 달만 기다리면 지들이 두 손들 어리광에 저렇게 죽자고 덤빌까? 너무 세상 물정을 모른다, 싶어 안타깝지만 저리 열심히인 걸 보니 간단히 관종이라도 해야지 생각했다.


하지만 코로나가 덮친 3월. 벌거벗은 임금님은 투명 유리알 옷을 입고 '코로나를 이겨내자', '철저히 방역하고 차단하자'라며 광적으로 열심이다. 이젠 벌거벗은 임금님 앞에서 손뼉 치며 장난 맞춰주기도 힘들다. 나체 코스프레도 한두 번이지, 왜 저리 혼자만 모를까? 하긴 옷을 만든 재단사도, 비서도, 호위병도, 그 어느 누구도 임금님에게 임금님만 보지 못하는 것을 말해 주지 않았고, 임금님만 보이는 좁디좁은 열정에 쏠린 그 눈에 대해 아무도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 지랄하다가 나라 거덜나겠다, 싶어 벌거벗은 임금이 나체 코스프레를 이쯤에서 끝내게 해야겠다. 라고 결심했다.


오늘도 우리들의 벌거벗은 임금님이 무분별한 열정에 빠져 무개념의 어처구니없는 코로나 쇼를 벌이는걸 지켜 보면서 '생'이 빠진 트집을 잡고 싶다.
정말 저 인간 참 뚱딴지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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